역사이야기 296

미군들이 바라본 한국정치인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해방이 되었다. 당시 소련군은 미군보다 일찍 북한을 점령 했고 남쪽의 정치인 중 여운형은 일본의 패망에 대비하여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당시 총독부와 협의를 하고 일본인들과의 관계가 파국이나 폭력으로 가지 않기 위해 조치하려 했다. 그러나 맥아더가 일본에 주둔하면서 남한까지 관리함을 선포하고 점령군임을 분명히 했다. 군정을 실시하기 위해 미군은 하지 중장을 대표로 보내고 그 아래 미군 2개의 사단이 들어오며 북에는 12개의 소련군 사단이 들어온다. 당시 2개의 사단으로 남한을 점령하고 관리 하는데 무리가 따르자 미군을 보조하는 경찰을 활성화 하는데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하고 당시 복잡한 정국을 내다볼 수 있는 인물을 임명하는데 그가 바로 '유석 조병옥'으로 미군들에겐 '닥터 조'..

역사이야기 2020.12.07

70년대나 지금이나

예나 지금이나 아파트의 구입목적은 살림을 하기 위한 경우도 있지만 재산을 불리기 위한 것 같다 77년도 서울의 13평짜리 주공아파트가 200만원에서 450만원으로 올랐다고 하며 30평짜리는 1600만원정도라고 했다. 77년도 우표값이 20원인 걸 감안히면 450만원일 경우 현재 8000만원에서 9000만원인데 요즘 13평 아파트가 이 정도 하는 곳은 찾기 힘들 것이다. 당시 월 9만원 정도가 도시가구의 평균소득이었다고 하는데 1000만원 넘는 아파트를 사려면 안쓰고 몇 년을 모아야 할지 힘들어 보인다. 지금도 대부분은 은행대출을 받거나 물려받은 재산을 팔아 아파트를 산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도 아파트 투기로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당국도 해결책 마련을 위해 힘을 쓰고 언론도 집중하여 문제를 지적했지만 부동..

역사이야기 2020.12.05

통일행진곡이라는 노래

통일행진곡이라는 노래이다. 만들어진 시기가 6.25쯤으로 알려진 것 같고 많이 불렀다고 하며 군에서도 많이 불렀다고 한다. 작곡을 전국취주악연맹이라고 하는데 어떤 곳에서는 나운영 선생이 작곡을 했다고 한다. 작사가는 '김광섭'이라는 분인데 이분의 신상을 파악하기 위해 또는 저작권문제 때문에 자료를 편집하는 기관에서 수소문을 하는 공고문도 있었다. 시인중에도 '김광섭'이란 분이 있긴한데 흔한 이름이다. 사실 이 노래는 개사되어 '시위현장'특히 80년대 중후반 대학가에서 많이 불렀다. 당시는 누가 만들었는지 힘차고 가사 또한 '쪽발이, 양키놈 그리고 매판파쇼'같은 단어가 있어 전형적인 '시위전문' 가요인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날 국군방송에서 예전방식으로 노래하는 것을 보고 귀를 의심했었다. 야! 이게 원래 ..

역사이야기 2020.11.30

고우영화백의 연재만화

고 고우영화백의 만화는 고전을 토대로 자신의 철학과 가치를 담아낸 것들이 많다. 임꺽정, 수호지, 삼국지, 초한지, 서유기, 열국지, 일지매, 십팔사략,가루지기전, 조선오백년등 국어시간이나 한문시간 심지어는 드라마에서 다룬 것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봤고 전쟁전 태어난 곳이 만주의 본계호란 곳이며 광복후 귀국 서울에 살면서 전쟁을 경험하였고 중학교 시절 부터 만화계에 데뷔했다. 당시 비슷한 시기 활동한 인물중엔 기타리스트 신중현, 소설가 황석영 그리고 만화가 고 신동우 화백이 있는데 이들의 작품을 보면 북방의 대륙이나 산악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서 그럴까? 시야가 넓고 진취적이며 개방적인 느낌이 든다. 학과공부만 하고 입시에만 시달리는 오늘날의 청소년들과는 달리 다양한 문화요소와 함께 시대를 직접 경험해서인지..

역사이야기 2020.11.27

주택복권에 대하여

지금은 로또를 사지만 70~80년대엔 주택복권을 샀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라고 하면 활에 걸린 화살이 회전하는 번호판을 맞추면 그 번호의 조합을 통해 확인된 숫자가 복권과 일치하면 900만원이라는 돈을 1등에게 주었다. 900만원이 당시 집한채를 살 수 있는 큰 돈이었다고 하며 80년대가 지나고 인플레가 발생 당첨금은 계속 올랐다고 한다. 복권의 당첨도 당첨이지만 복권에 나오는 각종 사진들이 눈에 들어온다. 각종 문화재와 민속놀이 특히 조선의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이 인상적이고 명승고적과 우리나라의 발전상이 담긴 흔적을 볼 수 있다. 복권의 사진들은 그냥 막 올린 것이 아니고 당시 관심사가 무언지 알 수 있고 당첨금의 액수를 보고 당시 물가를 알 수 있고 경제상황을 알 수 있다. 올림픽이 ..

역사이야기 2020.11.16

잘못된 사진의 인용과 설명

간혹 신문기사를 읽다 보면 문법이 틀린 경우(있을 수 있다.)가 있거나 남이 써놓은 것만 직접 가보지 않고 인용한 경우가 있다. 멀어서 그럴 수 있고 바빠서 그럴 수 있지만 기자는 직업이며 사명감이 있어야 하며 발로 뛰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사진이나 그림 지도 같은 경우는 제공을 받거나 누군가의 것을 인용할 경우 설명이 정확해야 한다. 광주학생의거가 일어난지 90여년 가까이 된다. 이 사건을 뒤에서 주도한 이는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출신의 '장재성 선생'으로 1929년 당시에는 일본 유학을 했던 인물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한자로 모표에 대학이라고 써있는 데 ' 광주보통학교'라고 하면 안되며 사실과 다를 땐 정정을 바로 해야 하며 그것이 어려울 땐 ' 바로 잡는다!'는 설명이 있어야..

역사이야기 2020.11.04

박완서작가

교과서에 소개된 소설을 보면 많은 양을 소개할 수 없어 일부만 소개를 한다. 그 일부라고 하지만 공부하는 학생에겐 큰 부담이다. 작품이 소개된 작가의 입장에서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인생을 결정짓는 시험의 한부분에 나온다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으리라. 과거엔 황순원이나 김동리 그리고 이효석, 김동리, 오영수, 김유정 등의 작품이 있었고 지금도 비슷하긴 하나 전후 소설이나 일제강점기의 소설이 등장하며 채만식이나 윤흥길 하근찬 박완서등의 작품이 나온다. 특히 박완서작가의 작품은 일제강점기와 6.25의 체험을 자전적 소설로 만들었는데 그 작품이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다. 그 여자네 집도 자주 나와 학생들이 잘 알고 있고 돌아가기 전 발표한 '그 남자네 집' 은 교과서에서 볼..

역사이야기 2020.10.23

고인에 대한 예우

현충원을 가면 장군 그리고 장교와 사병, 경찰, 독립유공자등이 구분되어 모셔져 있다. 장군과 독립유공자는 묘소의 크기가 크며 화장을 하지 않고 만들며 대다수의 묘소는 화장을 한 후 작은 자리에 만든다. 현충원의 시작이 원래 국군묘지에서 시작되었고 계급을 강조하는 특성상 구분을 했던 건 이해가 간다. 과거 힘있던 인물이 가게 되면 벼슬을 비석에 적고 업적을 넣고 족보에도 기록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돌아간 날을 쓰고 이름 아니면 본관을 넣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그리고 이젠 이런 것도 줄어들며 화장을 하여 납골당에 작게 모셔진다. 아마 현충원도 그렇게 갈 것이다. 현충원 뿐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 돌아가신 분들의 묘소도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조성될 것이라 생각한다. 외국은 어떤지 모르지만 ..

역사이야기 2020.10.09

권 율 장군에 대한 시각

권 율장군의 초상을 보면 (실제가 아니고 상상한 것임) 무장의 느낌이 강하지만 실제는 문신출신이며 요즘으로 보면 행정고시를 늦게 준비하여 합격하고 행정관이 된 사람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광주목사로 지역을 다스리기 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자신의 지역 뿐 아니라 경기도와 한양 인근에 올라와 의주로 도망간 왕이 다시 내려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투를 했고 초기 용인전투의 패배를 교훈 삼아 독산성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뒷날 행주대첩에서 승리를 한다. 광주목사를 시작으로 나주목사 전장에서 관군과 의병을 잘 통솔하여 전라감사가 되고 당시 지상의 전투를 총괄하는 도원수에 이르니 대단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또한 옆집의 개구장이 도령이었던 오성 이항복을 사위로 삼았고 그가 병조판서일 때 하급자..

역사이야기 2020.09.13

경기남부의 읍락들

수도권엔 인구가 많이 증가하고 성장한 곳도 있으나 과거에 비해 위축되고 조용해진 곳도 있다. 서울의 인구가 증가하고 80년대 부터는 역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서울의 남쪽에 많은 인구가 모였다. 성남은 70년도 초 광주에서 분리가 되고 안산같은 경우엔 80년대 반월출장소라는 이름으로 당시 시흥군 화성군의 땅이 합쳐져 만들어지며 80년대 말 군포, 의왕, 과천은 시가 된다. 용인도 급속 팽창하지만 기흥이나 수지같은 경부선 라인과 이곳을 벗어난 동쪽 지역은 사는 형편이 달랐지만 인구의 변화 또한 달랐다. 아무튼 과거엔 지금의 기초자치 단체 정도의 관청이 있던 경기 남부의 지역은 면으로 축소되거나 이름 또한 잊혀진다. 지역민들의 정체성이 약화되고 사는 형편은 타지역에 비해 다소 위축이 될..

역사이야기 2020.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