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59

지나다 본 풍경

지난 휴일 처가를 다녀왔다. 오는 길 가는 길 차들이 많아 국도를 타거나 지방도를 타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동네 앞 길을 지나기도 했다. 큰 길과는 달리 차들의 통행이 없었고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가끔 지나다 들리는 진천의 미선나무 자생지엘 갔지만 꽃이 아직 피지 않았다.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고속도로가 있고 휴일엔 주차장으로 변하지만 예전 다니던 국도나 지방도는 쓸쓸하고 시간에 쫒겨 다닐 필요가 없다. 시간이 더 있다면 충북과 경북의 경계인 괴산군 청천면 송면과 상주시 화북면(꽃핀 가로수 길이 좋음)을 가보고 싶지만 일정에 쫒겨 다니다 보니 가볼 수 없었다. 접경지역인 천안과 진천 사이의 엽돈재나 안성과 천안사이의 이티재를 요즘 지나면 꽂핀 모습을 잘 볼 수 있고 더 많은 모습을 보고 싶..

여행 이야기 2024.04.22

서울도심의 다양한 볼거리

요즘 예전의 것을 경험하고 구하려면 시골보다 서울 도심 한 가운데로 가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 뿐 아니라 외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도 서울 4대문 안이나 강남의 번화가인데 특히 4대문안은 70~80년대 있던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다른 도시에도 이런 곳들이 있긴 하지만 서울을 따라갈 수 없고 규모의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서울이 특히 잘 되어 있다고 보긴 어렵고 이곳도 보는 이에 따라선 지저분 하고 부실한 부분도 있고 어떤 곳은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특히 뒷골목의 음식물 쓰레기 문제와 주차장 문제는 서울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고 방문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주 가는 사람들은 이해 할 수 있겠지만 어쩌다 가는 이들에겐 불쾌하고 불편하다. 잘 정리하면 인사동 골목 처럼 될 수 있겠..

여행 이야기 2024.04.17

시외버스 요금의 인상과 줄어든 노선

코로나 그리고 지역 인구의 감소 특히 촌락의 인구 감소로 인해 시외버스의 운행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수도권이야 왠만한 시군구에 전철이 들어가 있지만 다른 지역은 여전히 도로에 의존하고 있어 대중교통으로 시외버스는 중요하다. 그러나 승객이 있어야 수익이 나고 버스를 운행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내가 사는 안산은 그나마 각지역으로 가는 시외버스 교통편이 많이 있지만 비슷한 규모의 도시 중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터미널 영업이 중단 된 경우도 있다. 자가용이 있는 사람이야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차가 없는 사람 특히 노인들이나 청소년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이들이 어딘가 ? 간다는 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특히 시골의 경우는 이웃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쉬운일이 아니고 만약에 ..

여행 이야기 2024.04.12

남양주의 실학박물관

남양주에 가면 다산신도시가 있다. 그러나 다산신도시와 다산 정약용의 출생지이자 말년에 여생을 보낸 능내리 마재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능내 마현은 뒤에 얕은 산이 있고 뒤에는 운길산이 버티고 있으며 과거엔 광주 땅이었고 군소재지였던 남한산성과 가깝고 현재 시청이 있는 경안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 더 가면 광지원이고 영남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강을 이용하면 서울도 잠깐이었고 춘천이나 여주 원주가 멀지 않았던 곳이며 지금은 육상교통의 발달로 쇠퇴했다. 양수리에서 만난 강이 넓어져 서울로 접어 드는데 과거엔 여느 강처럼 흘렀었다. 다산 정약용은 마재에 집이 있었고 아버지 정재원은 첫째 부인이 죽고 두번째 부인을 얻는데 정약용은 두번째 부인인 윤씨의 소생이며 정약용이 어릴 때 병사하고 계모인 김씨가 시집을 와 ..

여행 이야기 2024.04.09

강감찬 장군을 모신 안국사

고려는 문벌귀족 사회였다. 일단 '벌'이 들어가니 패거리 중심이었으며 무신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가문끼리 연결이 되어 고려의 지배층이 되었다고 보면되고 특히 왕의 외척이 되면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문벌 귀족 사회였던 당시 거란족의 나라였던 요의 침입이 있었다. 그리고 여진족의 나라였던 금의 침입이 그리고 몽골의 침입이 있었다. 고려는 대규모 침입을 많이 받았고 후기엔 왜구와 홍건족의 침입도 받았다. 우리가 보통 3대첩을 이야기 할 때 고구려의 살수대첩, 고려의 귀주대첩, 조선의 한산대첩을 이야기 하는데 역사를 바꿨고 이것을 이긴 장군들은 무인의 기질도 뛰어 났지만 지략이 대단했다. 또한 이 장군들의 시호와 이름을 따서 거리의 이름도 부여하고 훈장에도 붙였다. 충무나 을지 그리고 ..

여행 이야기 2024.04.02

관악산 아래 봉천동

봉천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법정동 중에 하나로 봉천11동까지 있었고 지금은 별도의 이름을 지어 따로 불린다. 관악구 인구의 약 절반이 봉천동이며 나머지는 신림동이며 남현동이 일부이다. 인구가 20만이 넘으며 지역에 따로 독립해 놓으면 오산시 정도의 인구이다 . 과거엔 금주 또는 금천으로 불리기도 했고 일제 땐 과천에 소속 되었다. 시흥에 소속 된 적도 있었다 관악산 아래 신림동과 펼쳐진 곳으로 서울의 대표적인 주택가이다. 서울에 있지만 대규모 빌딩이 모이거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곳이 아니며 예전에는 토착민들이 살기도 하던 곳이며 4대문 안이나 근처에 살던 이들이 이사를 오기도 하고 전국 각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산다. 얕은 산과 비탈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조금만 벗어나면 산을 볼 수 ..

여행 이야기 2024.04.01

대로상의 농로

경기도 화성시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는 신도시 (동탄, 봉담, 향남)부터 일반적인 농촌 ,공업지역 어촌(조암, 서신), 낙농업까지 있는 다양한 성격이 있는 지역이며 경기 남서부에서 가장 넓고 수원, 안산, 오산 , 평택과 붙어 있고 여러 섬들과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도시를 조금 벗어나면 시골이고 사는 모습과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도 인구가 계속 늘고 있고(100만) 교통로를 확장하고 있으며 고속전철과 일반전철도 새로 설치 하고 있다. 인구는 여전히 늘고 있으나 대중교통이 부족하고 특히 도시와의 접경지역은 도로의 병목현상이 심하고 흐름이 원할하지 못하다.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교대 시간 길이 막히거나 가기 어려우면 좁은 농로를 통하기도 하고 집들이 모여 있는 좁은 길을 가는데 상당히 위험할 수..

여행 이야기 2024.03.30

대전에 다녀오던 날

19일에는 낮에 잠깐 대전을 다녀왔다. 생각보다 차를 잘 연결하면 가까운 곳이고 고속도로에서 밀리면 시간을 기약할 수 없다. 일단 가면 다른 도시도 좋은 곳이 있지만 대전은 마음이 편안하다. 20대 때 이곳을 거쳐 휴가를 나오고 유성에서 동학사를 가기도 했고 신탄진에 지인이 있어 가기도 했고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께서 대전현충원에 계신다. 그리고 군시절 사고로 먼저간 후임도 대전 현충원에 있다. 가끔 대구나 부산을 다녀오다가 들려 중앙시장을 다녀오기도 하고 어떨 땐 대전 지하철도 그냥 타보고 대전역 근처 허름한 고깃집에서 술도 한잔하고 시장구경도 했었다. 또한 헌책방도 들리고 음악사도 들려 서울에서 못 구하는 것들도 살 수 있어 좋았다. 지금은 KTX전철로 더 빨라졌지만 난 과거의 통일호 비슷한 ..

여행 이야기 2024.03.26

대규모 관광단지의 몰락

과거 우리나라 관광지의 대표적인 곳은 설악산과 경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제주도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학생들 단체관광은 어렵고 돈이 있어야 마음 먹고 가는 곳이었다. 설악산의 경우 바다와 산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더 올라가면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그리고 더 아래로 내려와 강릉의 오죽헌과 경포대를 그리고 아래의 울진 성류굴과 동해안을 따라 포항과 울산의 산업단지를 그리고 클라이막스로 살핀 곳이 경주의 불국사 부터 석굴암 그리고 황룡사 터 천마총등 한번씩만 보고 와도 많은 것을 기억하고 평생 남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대규모 숙박시설의 부실한 환경과 부실한 음식 거기에 바가지 요금 또한 세월호 사건 그리고 경주의 대규모 지진등으로 인해 숙박단지는 문을 닫고 대규모 시설들은 흉물처럼 방치되어 있다. 외국인들..

여행 이야기 2024.01.30

지구본과 지리의 이해

지도는 땅이 넓을 수록 정확하게 줄여서 만들기 어렵다. 이유는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펼쳤을 때 완전한 평면이 나올 수 없다. 좁은 지역은 항공기로 넓은 지역은 인공위성을 통하여 지도를 만들기 편해졌다고 하는데 과거엔 일일이 다녀보고 측정을 하여 귀한 지도를 만들었고 눈썰미가 좋은 이를 몰래보내 이웃나라를 조사하여 지도를 만들었다. 조선초기까지도 우리는 중국 다음으로 큰 나라로 알았고 일본은 우리 보다 작다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그들의 국력도 작고 조선을 처들어 올거란 생각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의 형편을 알기 위해 간자들을 파견했고 여러 정보를 조사하여 대륙을 치고 이를 통해 인도까지 갈 생각을 했다고 한다. 보통 지구본은 지도에 비해 면적이 정확하여 분포도를 만들거나 ..

여행 이야기 2024.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