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74

장충단 공원의 여러 모습들

장충단 공원은 남산아래에 있고 바로 위가 동국대학교이며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국립극장이 있으며 남산타워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걸어서 가도 좋고 시내버스가 자주 다닌다. 도심안에 숲이 있고 접근하기 좋은데 서울 살면서 일하느라 바빠서 못가본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아마 시골에서 단체관광을 오거나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 곳일 수 있다. 장충단 공원 안에는 3.1운동 이후 전국의 유생들이 연대를 하여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문서를 올렸다. 일본은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탄압하고 고통을 준다. 평화적인 운동을 총칼로 밟은 당시의 사건을 보고도 일제의 통치를 옹호하는 자들은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장충단 공원 남서쪽엔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었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고인이 된 '이..

여행 이야기 2024.05.29

장충단과 장충동

장충동은 장충단이라는 곳이 있어 생긴 동네이름이다. 을미사변 당시 궁궐을 수비하고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고 희생된 장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곳이 장충단이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낭인이라는 명칭의 약간 깡패같은 무리들이 궁궐에 난입한 것으로 보여주지만 당시 투입된 자들은 민간인들이 아니고 특수교육을 받은 군인들로 일본정부의 도움과 철저히 훈련된 자들이 저지른 악행이며 궁궐을 수비하는 군대와 일본군들이 교전을 했고 이들은 침입을 한다. 이 사건에 희생된 장졸들과 대신들을 제사하기 위해 단을 만들고 비석의 앞면엔 순종의 글씨가 뒷면엔 민영환의 글을 남긴다. 1910년 비석을 뽑히고 이곳에 공원이 일제에 의해 만들어 지고 남산 북쪽에도 다양한 시설과 공원이 만들어진다. 해방이후 비석을 다시 위치 시켜 ..

여행 이야기 2024.05.28

우리나라 대표적 지하상가

서울의 회현지하상가는 우리나라 지하상가에서 취미우표나 LP, 카메라 등을 파는 곳으로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일반지하상가가 옷이나 꽃 아니면 구두를 파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고 바로 옆은 미도파 백화점 그리고 남대문 시장이다 보니 다양한 것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구매가 활성화 되다 보니 이곳도 장사가 그전 같지 않고 주인은 전화번호만 공지하고 자리에 없는 경우가 있고 근처 남대문 시장의 수입상가 만년필 가게에도 전화번호만 남겨놓은 경우가 있다. 인터넷으로 사면 배달까지 해주고 편안한 부분도 있지만 실물을 보고 (우표가게의 진열된 액자나 우표는 실물도 있지만 상할 수 있기에 정교하게 복제한 것이 많다.)사는 것이 좋고 사장님들이 전문가라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LP점도 마찬가지..

여행 이야기 2024.05.26

부여를 다녀오다.

어제는 일이 있어 익산을 가는길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아산에서 공주시내를 거치지 않고 청양지나 부여를 통하여 차를 달렸다. 부여라는 이름은 원래 만주에 있던 국가이며 백제의 왕족들의 성씨가 부여씨였다. 부여군의 옛이름은 사비였고 이웃인 공주는 웅진이었다. 금강을 경계로 아래는 전라북도이며 금강의 지류인 백마강이 있다. 지금은 이쪽 지역도 고속도로가 잘 만들어져 편리해 졌지만 과거엔 공주를 통하거나 대전을 통해서 외지로 나갔었다. 고려말 때는 왜구들의 침입이 있었고 큰 싸움도 있었으며 이곳에서 공을 세운 장군들의 권력 또한 강대해져서 세력 다툼을 한다. 인근 논산과도 가깝고 강아래 익산과는 예전 배를 이용해 교류했고 지금도 금강주변에는 나룻터의 흔적이 있다. 부여읍은 시가지가 말끔하고 인근에는 각종 고분과..

여행 이야기 2024.05.03

인사동의 통문관

우리나라에서 우리 국민들이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을 사거나 보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인사동이다.주변에 조계사도 있고 종로거리도 있어 볼 것이 다양하고 사진을 찍을 곳도 많고 술집과 찻집도 많다.그리고 먹을 것을 파는 곳도 크게 비싸거나 출입하는데 제한이 많지 않다.기념품 가게 들도 많지만 가장 오래된 서점인 통문관이 인상적이다.일제 강점기 일본인 운영하던 것을 이겸로선생이 어린나이에 인수 지금은 그의 손자가 운영을 하는 고서점 전문서점이다.과거엔 주변 을지로와 연결되어 많은 고서점이 있었으나 관광의 형태가 바뀌면서 대부분 사라졌고 지금 하나 남아 있는 것이 버티는 건 가업을 넘어 전국에도 몇 개 없는 특수한 업종이고 자손의  '고문서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생각한다.돈을 생각했다면 ..

여행 이야기 2024.04.27

지나다 본 풍경

지난 휴일 처가를 다녀왔다. 오는 길 가는 길 차들이 많아 국도를 타거나 지방도를 타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동네 앞 길을 지나기도 했다. 큰 길과는 달리 차들의 통행이 없었고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가끔 지나다 들리는 진천의 미선나무 자생지엘 갔지만 꽃이 아직 피지 않았다.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고속도로가 있고 휴일엔 주차장으로 변하지만 예전 다니던 국도나 지방도는 쓸쓸하고 시간에 쫒겨 다닐 필요가 없다. 시간이 더 있다면 충북과 경북의 경계인 괴산군 청천면 송면과 상주시 화북면(꽃핀 가로수 길이 좋음)을 가보고 싶지만 일정에 쫒겨 다니다 보니 가볼 수 없었다. 접경지역인 천안과 진천 사이의 엽돈재나 안성과 천안사이의 이티재를 요즘 지나면 꽂핀 모습을 잘 볼 수 있고 더 많은 모습을 보고 싶..

여행 이야기 2024.04.22

서울도심의 다양한 볼거리

요즘 예전의 것을 경험하고 구하려면 시골보다 서울 도심 한 가운데로 가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 뿐 아니라 외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도 서울 4대문 안이나 강남의 번화가인데 특히 4대문안은 70~80년대 있던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다른 도시에도 이런 곳들이 있긴 하지만 서울을 따라갈 수 없고 규모의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서울이 특히 잘 되어 있다고 보긴 어렵고 이곳도 보는 이에 따라선 지저분 하고 부실한 부분도 있고 어떤 곳은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특히 뒷골목의 음식물 쓰레기 문제와 주차장 문제는 서울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고 방문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주 가는 사람들은 이해 할 수 있겠지만 어쩌다 가는 이들에겐 불쾌하고 불편하다. 잘 정리하면 인사동 골목 처럼 될 수 있겠..

여행 이야기 2024.04.17

시외버스 요금의 인상과 줄어든 노선

코로나 그리고 지역 인구의 감소 특히 촌락의 인구 감소로 인해 시외버스의 운행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수도권이야 왠만한 시군구에 전철이 들어가 있지만 다른 지역은 여전히 도로에 의존하고 있어 대중교통으로 시외버스는 중요하다. 그러나 승객이 있어야 수익이 나고 버스를 운행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내가 사는 안산은 그나마 각지역으로 가는 시외버스 교통편이 많이 있지만 비슷한 규모의 도시 중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터미널 영업이 중단 된 경우도 있다. 자가용이 있는 사람이야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차가 없는 사람 특히 노인들이나 청소년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이들이 어딘가 ? 간다는 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특히 시골의 경우는 이웃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쉬운일이 아니고 만약에 ..

여행 이야기 2024.04.12

남양주의 실학박물관

남양주에 가면 다산신도시가 있다. 그러나 다산신도시와 다산 정약용의 출생지이자 말년에 여생을 보낸 능내리 마재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능내 마현은 뒤에 얕은 산이 있고 뒤에는 운길산이 버티고 있으며 과거엔 광주 땅이었고 군소재지였던 남한산성과 가깝고 현재 시청이 있는 경안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 더 가면 광지원이고 영남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강을 이용하면 서울도 잠깐이었고 춘천이나 여주 원주가 멀지 않았던 곳이며 지금은 육상교통의 발달로 쇠퇴했다. 양수리에서 만난 강이 넓어져 서울로 접어 드는데 과거엔 여느 강처럼 흘렀었다. 다산 정약용은 마재에 집이 있었고 아버지 정재원은 첫째 부인이 죽고 두번째 부인을 얻는데 정약용은 두번째 부인인 윤씨의 소생이며 정약용이 어릴 때 병사하고 계모인 김씨가 시집을 와 ..

여행 이야기 2024.04.09

강감찬 장군을 모신 안국사

고려는 문벌귀족 사회였다. 일단 '벌'이 들어가니 패거리 중심이었으며 무신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가문끼리 연결이 되어 고려의 지배층이 되었다고 보면되고 특히 왕의 외척이 되면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문벌 귀족 사회였던 당시 거란족의 나라였던 요의 침입이 있었다. 그리고 여진족의 나라였던 금의 침입이 그리고 몽골의 침입이 있었다. 고려는 대규모 침입을 많이 받았고 후기엔 왜구와 홍건족의 침입도 받았다. 우리가 보통 3대첩을 이야기 할 때 고구려의 살수대첩, 고려의 귀주대첩, 조선의 한산대첩을 이야기 하는데 역사를 바꿨고 이것을 이긴 장군들은 무인의 기질도 뛰어 났지만 지략이 대단했다. 또한 이 장군들의 시호와 이름을 따서 거리의 이름도 부여하고 훈장에도 붙였다. 충무나 을지 그리고 ..

여행 이야기 2024.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