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74

관악산 아래 봉천동

봉천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법정동 중에 하나로 봉천11동까지 있었고 지금은 별도의 이름을 지어 따로 불린다. 관악구 인구의 약 절반이 봉천동이며 나머지는 신림동이며 남현동이 일부이다. 인구가 20만이 넘으며 지역에 따로 독립해 놓으면 오산시 정도의 인구이다 . 과거엔 금주 또는 금천으로 불리기도 했고 일제 땐 과천에 소속 되었다. 시흥에 소속 된 적도 있었다 관악산 아래 신림동과 펼쳐진 곳으로 서울의 대표적인 주택가이다. 서울에 있지만 대규모 빌딩이 모이거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곳이 아니며 예전에는 토착민들이 살기도 하던 곳이며 4대문 안이나 근처에 살던 이들이 이사를 오기도 하고 전국 각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산다. 얕은 산과 비탈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조금만 벗어나면 산을 볼 수 ..

여행 이야기 2024.04.01

대로상의 농로

경기도 화성시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는 신도시 (동탄, 봉담, 향남)부터 일반적인 농촌 ,공업지역 어촌(조암, 서신), 낙농업까지 있는 다양한 성격이 있는 지역이며 경기 남서부에서 가장 넓고 수원, 안산, 오산 , 평택과 붙어 있고 여러 섬들과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도시를 조금 벗어나면 시골이고 사는 모습과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도 인구가 계속 늘고 있고(100만) 교통로를 확장하고 있으며 고속전철과 일반전철도 새로 설치 하고 있다. 인구는 여전히 늘고 있으나 대중교통이 부족하고 특히 도시와의 접경지역은 도로의 병목현상이 심하고 흐름이 원할하지 못하다.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교대 시간 길이 막히거나 가기 어려우면 좁은 농로를 통하기도 하고 집들이 모여 있는 좁은 길을 가는데 상당히 위험할 수..

여행 이야기 2024.03.30

대전에 다녀오던 날

19일에는 낮에 잠깐 대전을 다녀왔다. 생각보다 차를 잘 연결하면 가까운 곳이고 고속도로에서 밀리면 시간을 기약할 수 없다. 일단 가면 다른 도시도 좋은 곳이 있지만 대전은 마음이 편안하다. 20대 때 이곳을 거쳐 휴가를 나오고 유성에서 동학사를 가기도 했고 신탄진에 지인이 있어 가기도 했고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께서 대전현충원에 계신다. 그리고 군시절 사고로 먼저간 후임도 대전 현충원에 있다. 가끔 대구나 부산을 다녀오다가 들려 중앙시장을 다녀오기도 하고 어떨 땐 대전 지하철도 그냥 타보고 대전역 근처 허름한 고깃집에서 술도 한잔하고 시장구경도 했었다. 또한 헌책방도 들리고 음악사도 들려 서울에서 못 구하는 것들도 살 수 있어 좋았다. 지금은 KTX전철로 더 빨라졌지만 난 과거의 통일호 비슷한 ..

여행 이야기 2024.03.26

대규모 관광단지의 몰락

과거 우리나라 관광지의 대표적인 곳은 설악산과 경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제주도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학생들 단체관광은 어렵고 돈이 있어야 마음 먹고 가는 곳이었다. 설악산의 경우 바다와 산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더 올라가면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그리고 더 아래로 내려와 강릉의 오죽헌과 경포대를 그리고 아래의 울진 성류굴과 동해안을 따라 포항과 울산의 산업단지를 그리고 클라이막스로 살핀 곳이 경주의 불국사 부터 석굴암 그리고 황룡사 터 천마총등 한번씩만 보고 와도 많은 것을 기억하고 평생 남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대규모 숙박시설의 부실한 환경과 부실한 음식 거기에 바가지 요금 또한 세월호 사건 그리고 경주의 대규모 지진등으로 인해 숙박단지는 문을 닫고 대규모 시설들은 흉물처럼 방치되어 있다. 외국인들..

여행 이야기 2024.01.30

지구본과 지리의 이해

지도는 땅이 넓을 수록 정확하게 줄여서 만들기 어렵다. 이유는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펼쳤을 때 완전한 평면이 나올 수 없다. 좁은 지역은 항공기로 넓은 지역은 인공위성을 통하여 지도를 만들기 편해졌다고 하는데 과거엔 일일이 다녀보고 측정을 하여 귀한 지도를 만들었고 눈썰미가 좋은 이를 몰래보내 이웃나라를 조사하여 지도를 만들었다. 조선초기까지도 우리는 중국 다음으로 큰 나라로 알았고 일본은 우리 보다 작다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그들의 국력도 작고 조선을 처들어 올거란 생각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의 형편을 알기 위해 간자들을 파견했고 여러 정보를 조사하여 대륙을 치고 이를 통해 인도까지 갈 생각을 했다고 한다. 보통 지구본은 지도에 비해 면적이 정확하여 분포도를 만들거나 ..

여행 이야기 2024.01.26

우리나라에도 갈 곳이 많다

이웃인 일본이나 중국을 가도 윗동네 사람들 중에는 강원도 남부나 내륙 특히 아랫동네인 전라남도의 나주나 구례 또는 광주나 대도시인 부산이나 경남 창원을 못가본 이들이 많다. 반대로 아랫동네 사람들 중에는 서울이외에 안가본 경기도 북부나 충북 내륙 충남 내륙을 안가본 경우도 많을 것이다. 대도시이고 대부분 상업이나 써비스업에 종사를 하는데 서울이나 수도권의 대도시 사는 이들 중에는 아랫녘의 사람들이 시골에 살고 부산 같은 대도시는 바다가 무척 가깝고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해서 먹고 사는 줄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강원도는 산골에서 감자와 옥수수를 재배하고 도시생활과 거리가 먼줄 알지만 대부분은 춘천, 원주, 강릉, 속초, 동해, 태백 같은 도시에 살고 그 아래 경북도 비슷하다.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여행 이야기 2024.01.25

관광산업으로 돈을 벌기

일본이 관광으로 돈을 많이 버는 이유는 특유의 상술이나 볼거리도 중요하지만 휴대가 간편하고 지역마다 독특한 도시락 같은 먹거리라고 생각한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들은 자신의 밥상을 그대로 작은 공간에 담아 휴대하기 쉽게 만든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런 것이 있으나 대식가들이 많다 보니 양을 많이 하여 광주리나 대나무 함에 담아 가지고 나들이를 갔으며 과거에는 집에 있는 작은 솥이나 그릇을 보자기(우리나라의 특이한 문화)에 싸서 가지고 간다. 심지어는 전쟁터에서도 솥 걸어 놓고 밥 해먹다가 발각되어 습격을 당해 죽기도 하고 소를 사서 통째로 조리해서 먹고 갑작스런 과식으로 죽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청어나 양미리 오징어를 말려 휴대하기도 하고 엿이나 미숫가루, 주먹밥 또는 김 또는 양념한 고추장이나 된장을 가져..

여행 이야기 2024.01.18

사투리의 치밀한 구사

요즘 충남 부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나온다. 89년을 배경으로 아산의 학생이 부여로 전학을 가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이 배우의 사투리를 보면서 이 사투리가 무슨 부여냐? 우리 부여선 저런말 안한다. 또 한쪽에선 전라도 사투리 같은데 까지 말들이 많다.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 놓은 지역에 대한 것은 사실과 비슷한 것도 있지만 정작 그 지역을 표현하는 건 많이 어렵다. 과거 작가들은 자신의 고향을 드라마에 등장시켜 이미지를 남기기도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청자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특히 사투리는 지역에서 실제 구사하는 것을 표현하기 어렵고 그 지역사람들은 자신들이 광역화 된 지역(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등)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고 경기도나 서울 그리고 강원도 영서 사람들은 자신들은 표준..

여행 이야기 2023.12.17

펄벅 기념관을 다녀와서

부천의 남쪽 성주산 부근 주택가엘 가면 펄벅 기념관이 있다. 펄벅 그러면 소설 '대지'와 함께 메뚜기 떼 그리고 중국을 생각한다.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여류작가로 기억을 한다. 미국인인 펄벅은 부천과 무슨 관련이 있어 여기에 기념관이 왜 있을까? 펄벅은 미국인이지만 어릴적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와 살았고 공부했으며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당시 펄벅은 우리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컸고 우리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 머무르며 작품을 쓰고 사회사업활동을 시작한다. 사회복지 재단인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1965년 만들었으며 해방전 부터 알고 있던 독립운동가 유한양행 대표 류일한 박사에게 1967년 부천 심곡리의 공장부지를 매입 '소사 희..

여행 이야기 2023.11.27

동대문운동장기념관

동대문 역사 공원 안에는 동대문 운동장 기념관이 동대문 역사관 바로 옆에 있다. 이 기념관은 80여년이 넘게 운영 되다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의 흔적을 남기고 기록했다.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둘러보면 의미있는 것들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성운동장으로 만들어져 각종 운동경기가 열렸고 해방후 좌우대립의 모습이 이 운동장에서 나타났고 동란 이후에는 동대문 일대에 모인 실향민들과 도시로 나온 이주민들의 생활 터전이 되었고 2007년 사라질 때 까지 우리나라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한 이곳은 역사의 상징이었다. 경성운동장으로 불리던 당시 특설링을 만들어 서정권 선수가 권투경기를 하고 손기정 선수는 금메달을 딴다. 서울과 평양의 선수들이 경기를 한 '경평전' 또한 이곳에서 이루어 졌고 열기가 대단했었다. 그..

여행 이야기 2023.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