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293

양평 몽양기념관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엘 가면 몽양 여운형 선생의 복원된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주말이나 행락철엔 많은 차량으로 막히기 때문에 가기 어렵고 평일 오전에 가면 방문이 수월하다 .몽양 여운형은 해방전에도 후에도 우리나라에 있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 체육인, 언론인 으로 다재다능한 인물이며 극단적인 부분 보다는 솔직하고 포용적인 측면이 강해 특정 진영이나 이념에 치우친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고 위협을 받았으나 그의 솔직함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받고 지도자로서 지지도 또한 다른 유명 정치인 보다 높았다.평생을 대한 독립과 함께 통일조국을 위해 몸을 바쳤으나 그 뜻을 이루기 전에 죽음을 당했다.몽양기념관엔 그의 어린시절 부터 그의 집안 배경, 동학 , 애국계몽운동과 기독교도의 입문, 외국 유학과 함께 독립운동가..

역사이야기 2024.12.19

충격적인 계엄령과 계엄군의 출동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다.전란이 많고 호환이 많던 우리 나라는 아침 인사가 이러했고 밥을 먹었냐? 가 인사였다.그만큼 어렵고 힘든 날들이었다는 것이다.그런데 4일 새벽인지 밤인지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출동시켰다는 소식을 접하고 밤새 안녕이 아닐 수 있는 일이 일어났음을 알았다.처음에는 가짜뉴스가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재난문자 하나 없이 갑작스런 조치를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국회의 요구로 계엄은 해제 되었는데 70년대 말과 80년대 초가 생각났고 특히 1공수여단의 국회의사당 진입을 보면서 12.12 사태가 생각 났다.여러 복합적인 문제로 계엄령을 선포 한것 같은데 이유를 모르겠고 외신은 앞 다투워 이번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중요한 건 정부의 잘못된 운영이나 정책을 정..

역사이야기 2024.12.05

길에서 발견한 신문

길을 가는데 30년전 신문한장이 길에 떨어져 있다. 1993년이면 김영삼 정부가 출발한 첫해이다. 국민일보의 사회면과 정치면 그리고 당시 유행한 대우의 승용차 프라이드가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문민정부가 탄생했는데 당시는 한총련이 앞장을 섰으며 폭력시위가 극성이고 김영삼정부는 화났다! 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김종인의원도 눈에 들어오고 경우회에 60억 뇌물을 준 사건도 있다. 4칸의 만화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골프가 중요한 모임의 수단이고 고위공무원들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다.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 척결, 일제 잔재 청산,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했으나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흔들린다. IMF체제가 오기전 대우는 승승장구하는 것 같다. 30년이 지났으니 강산이..

역사이야기 2024.11.10

군국주의 국가 일본의 기념엽서

일본이 강력한 군국주의 국가였다는 건 다 아는 것이고 이들은 자신들의 힘과 조직 그리고 이들이 실시하는 군사적 행동을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1921년(대정 10년)에도 군사적인 연습을 행하고 알리는데 대본영을 시작으로 육군은 참모총장 그리고 서군 사령관 그리고 동군사령관등이 중심으로 육군특별대연습을 실시하기 위해 통감부가 설치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우편엽서도 발행이 된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이해 못할 부분도 있는데 자신들의 군사적 준비 태세와 실력을 국내 뿐 아니라 주변의 국가에게 알리려는 목적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다분하다. 엽서의 사진을 보면 우리에게도 낮설지 않은 얼굴의 일본의 덴노가 보이고 모두 군예복을 입고 있는데 후지산을 배경으로 왼쪽에 있는 것이 1921년 일본의 최고 통..

역사이야기 2024.09.25

크림빵에 대한 기억

과거에 나왔던 제품이 지금도 계속 나오는 건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과점에서 살 수 있는 케잌이나 고급진 빵도 있지만 이러한 빵들은 포장이 견고해야 하고 멀리 갈 때 갖고 가기 어렵다. 그러나 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빵은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모양을 유지 한채 멀리 가지고 갈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 보관하면 상하여 먹을 수 없다. 과거 공장에 다니던 근로자들에게 간식으로 빵을 주었는데 고향의 동생이나 어른들에게 주기 위해 먹지 않고 보관을 했다가 상하는 바람에 버릴 수 밖에 없었고 빵을 그날 그날 한사람에게 몰아 주어 고향의 가족들에게 빨리 전달되게 했다는 사실도 있다. 당시 유행했던 빵이 바로 크림빵이고 나중에 보름달빵인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가게에 가면 가끔 볼 수 있..

역사이야기 2024.09.13

그림으로 파악하는 옛날

토요일 동네 식당의 벽에 걸린 한국화 한점의 장면이 눈에 들어 온다. 결혼을 마치고 시집으로 오는 장면으로 마을의 사람들은 말을 탄 신랑과 가마를 타고 오는 신부를 바라보고 있다. 과거 결혼식은 낮과 밤이 만나는 저녁에 신부의 집에서 이루어 졌다. 혼인날짜는 신부측에서 잡았는데 낮은 양이고 밤은 음이며 낮과 밤이 어울리는 시간 결혼식을 하고 마을사람들과 잔치를 했는데 사람들은 각종 음식재료를 가지고 오기도 했고 일을 거들었다. 음양의 조화는 의미를 둔 것이고 실제로는 일하고 난 후 동네사람들과 함께 즐기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신랑은 처가에 오래 머물러 있기도 했지만 조선후기가 되면서 신부는 시집에서 시부모 밑에서 생활을 하고 가끔 친정 식구들이 보고 싶으면 중간에서 만나기도 하고(반보기) 장터나 읍내..

역사이야기 2024.08.02

전투력이 강한 민족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화를 사랑하고 순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또한 싸움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평상시엔 잘 들어나지 않는다. 이 싸움은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닌 정신이 그 만큼 뒷받침되어야 한다. 몸싸움, 칼싸움, 활싸움, 총싸움으로 올림픽 초반전을 주름 잡고 있다. 인근의 중국과 일본도 만만치 않은데 마지막에 이기는 것을 보면 엘리트 스포츠니 밀어주는 놈만 밀어주니 해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이 모인 곳에서 결승까지 진출 살 떨리는 싸움 특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양궁이나 사격에서 막판에서 점수를 내는 건 보통 정신력이 아니다. 괜히 추모(동명성왕)의 후예가 아니고 그냥 활의 나라가 아니며 고려말 조선초 부터 발달한 화약무기에서 발달한 총포의 사용에서도 이러..

역사이야기 2024.07.31

트럼프 전 대통령 저격사건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 저격을 당했으나 무사하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총기의 사용이 자유롭고 나라가 세워질 때 부터 총과는 떨어질 수 없는 나라다 보니 이와 관련된 사망 사건은 정치적인 정적이나 요인을 암살할 때 종종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총을 맞고 사망한 대통령이 있었고 북한에 의해 폭탄테러를 당했으나 정부요인들만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자유당 때는 총으로 암살을 시도 하다 실패하여 관련자들이 구속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아니지만 거물급 인사가 총에 의해 살해된 경우 또한 여러번 있었다. 특히 대통령을 경호하는 조직은 우리나라도 적지 않으며 퇴임 후에도 경호를 해준다. 한 사람의 인물이 정치적 문제로 살해되고 갈등이 폭발할 때 만들어진 결과는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고 결과가 큰 파장을 ..

역사이야기 2024.07.17

성균관대 심산 김창숙선생 동상

보통 동상이나 사람에 대한 기념물은 돌아간 후에 존경의 의미로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든다. 아니면 우상화를 하기 위해 아랫사람들이 아부를 하기 위해 큰 규모로 만들어 자신들의 세력을 규합하고 또는 그 과정에서 투입되는 돈을 누군가 횡령하기 위해 만들고 추진과정에서 이익을 보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개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균관대학교 교내에 세워진 심산 김창숙선생의 동상의 경우는 그 의미가 다르다. 시골의 유생이었지만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고 가족은 큰 피해를 보았으며 해방된 나라에서 성균관대학을 다시 만들고 독재자인 이승만 정권과 싸우다 투옥이 되기도 한다. 이승만을 추억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은 공이 어쩌고 과가 어쩌고 하는데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이 조직을 만들어 암살을 시도하고 온..

역사이야기 2024.05.25

비쌀 수 밖에 없던 양복

지금은 국산 섬유가 좋아서 기성복을 사서 입었을 때 떨어지거나 약해서 버리는 옷들이 잘 없다. 또한 집에 있는 옷들의 종류가 많으니 돌아가면서 입게되고 덜 마모되고 손실된다. 간혹 오래된 이월상품의 옷을 샀을 때 실이 약해져서 터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못입을 만큼 훼손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엔 집에 보관한 옷이 많지 않아 어디 면접을 보러가거나 잔치를 갈 때 세탁소에서 빌려 입기도 하고 어떤 신인 가수는 자신의 양복이 없어 아버지 옷을 입고 가기도 하고 아가씨들의 경우 옷 때문에 자매들끼리 다투기도 했다. 작업장에서 일을 많이 하는 어른들의 경우 회사에서 통일된 작업복을 입다보니 옷을 많이 가질 필요도 없었고 어쩌다 양복이 필요할 수 있어 결혼을 할 때 신부측이 마련해준 옷감을 양복점에 주고 재단을 ..

역사이야기 2024.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