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문벌귀족 사회였다. 일단 '벌'이 들어가니 패거리 중심이었으며 무신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가문끼리 연결이 되어 고려의 지배층이 되었다고 보면되고 특히 왕의 외척이 되면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문벌 귀족 사회였던 당시 거란족의 나라였던 요의 침입이 있었다.
그리고 여진족의 나라였던 금의 침입이 그리고 몽골의 침입이 있었다.
고려는 대규모 침입을 많이 받았고 후기엔 왜구와 홍건족의 침입도 받았다.
우리가 보통 3대첩을 이야기 할 때 고구려의 살수대첩, 고려의 귀주대첩, 조선의 한산대첩을 이야기 하는데 역사를 바꿨고 이것을 이긴 장군들은 무인의 기질도 뛰어 났지만 지략이 대단했다.
또한 이 장군들의 시호와 이름을 따서 거리의 이름도 부여하고 훈장에도 붙였다.
충무나 을지 그리고 인헌이 그러하다.
다음으로 내전이 아닌 외부의 침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간혹 삼국통일을 한 김유신 장군이 폄하되는 경우가 있는데 통일의 완성은 당나라 세력을 우리땅에서 내 쫒은 것이고 화랑의 역할이 컸고 그래서 그런지 화랑무공훈장도 있다.
아무튼 거란족을 격멸한 인헌 강감찬 장군의 사당 안국사는 관악산 줄기 아래 낙성대 공원안에 있으며 낙성대 역에서 600m 정도 거리에 있고 봄꽃이 멋지고 도심에서 가까우니 둘러 보면 좋다.
특히 역동적인 강감찬 장군의 동상이 멋있다.
그리고 작지만 거란의 침입을 설명하고 장군의 일대기를 정리한 박물관이 있고 사당 아래엔 오래된 탑이 있다.
그리고 사당안에는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있고 기록화도 있다.
실제 얼굴이라기 보다는 상상한 것인데 문신이었지만 강한 기백이 있던 장군을 형상화 한 것 같다.
귀주대첩은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바꾸었고 이후 고려는 국경의 방비를 철저히 한다.
가급적이면 싸우지 않고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을 하는 것이 좋은데 외부의 침략을 당했을 땐 자국민의 피해가 없거나 적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교적 노력과 함께 스스로 지켜내려는 의지가 힘있는 사람들 부터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약자들이 나가서 목숨을 거는 일을 반복하고 전후에 이익은 힘있는 사람들이 챙겼다.
강대국의 역사를 보면 왜 지도층이 존경을 받고 애국을 한 사람들을 대하는 문화가 다르고 특별하다.
전쟁영웅은 특별히 잘나고 힘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며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
이들을 대우 해주고 이들의 후손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힘있고 높은 사람들 보다 이들을 존경해야 한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외버스 요금의 인상과 줄어든 노선 (0) | 2024.04.12 |
---|---|
남양주의 실학박물관 (0) | 2024.04.09 |
관악산 아래 봉천동 (2) | 2024.04.01 |
대로상의 농로 (0) | 2024.03.30 |
대전에 다녀오던 날 (1) | 2024.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