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296

80년대 대한민국 전도

80년대 후반 부터 90년대 초 쓰인 지도이다. 사회도 변화고 지역도 변화고 90년대 부터는 균형개발을 실시하며 지방자치제가 실시된다. 도농통합시가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며 서해안 고속도로가 계획중이고 강원도와 충북 경북을 지나는 중앙고속도로 그리고 대전 진주( 통영으로 바뀐다)간 고속도로도 계획중인데 당시 삼천포는 사천으로 바뀐다. 서해안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당진이나 서산 홍성을 가려면 천안을 거쳤고 서천같은 경우 군산을 통해 갔으며 방조제가 없어 배를 타고 건넜다. 또한 2차선 고속도로인 88올림픽고속도로가 생겼으며 중부고속도로도 생겨서 대전과 서울을 오가는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었으며 서울의 동마장터미널 대신 강변터미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남양주시라는 이름 전에 미금시라는 이름도 존재했고 ..

역사이야기 2021.08.03

비단 한필의 개념

빨간 비단 한필을 구했다. 펼치지 않아 모르겠으나 꽤 많은 양인 것 같다. 과거 집에서 짠 거라면 큰 노력과 애씀이 있었을 거라 본다. 초기 개항을 했을 때 일본을 통해 들어온 물건중에 영국산 면직물이나 모직물이 있었다고 했다. 이 원료들은 영국에서도 획득했겠지만 인도나 미국 아니면 호주에서 대량으로 확보하여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정교하게 만들어 인구가 많은 나라에 팔았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 이 지역엔 공장이 생겼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초기 공업에서 방적과 방직공업이 차지 하는 비중이 높았고 80년대 말까지 마산이나 대구 대전 청주 안양 같은 도시에서 발달하였으나 90년대가 지나면서 다른 나라로 많은 공장들이 이전을 했다. 특히 명주실을 얻으려면 그 고생이 엄청났을 것이고 일제 강점기 때엔 군수품으로 공급..

역사이야기 2021.07.25

배상열의 조선 건국 잔혹사

조선의 건국과정은 정도전의 계획하에 장군이었던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면서 개성을 점령 과전법을 실시하여 기존 권문세족인 친원파의 재산과 권력을 빼앗아 신진사대부 중 훈구파에 의해 세워졌다. 배상열작가의 조선건국잔혹사는 교과서나 사극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었던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사망 원인에 '이방원이 개입되어 죽였다는 사실'이 사실이 아니라는 의심과 함께 당시의 상황을 풀어 증명하고자 한다. 이성계의 부인 한씨소생의 아들들 그리고 강씨소생의 아들들 사이에 벌어진 왕자의 난! 그리고 권력에서 멀어지는 태조 이성계... 개인적으로 정몽주의 죽음에 이방원이 관련되고 안되고를 떠나 망해가는 고려와 새롭게 세워지는 조선을 대하는 명나라 주원장의 태도와 명나라에 간 사신이 의복을 입는 문제로 죽음을 당하는..

역사이야기 2021.07.07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책들

우리나라엔 다양한 박물관과 기념관이 있고 전시물을 전시만 하는게 아니라 외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월보도 만들며 연구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자료수집 부터 대외활동 그리고 교육등 다양한 것이 있는데 다른 곳도 잘하지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서울 세종대로 광화문 앞에 위치)의 모습은 더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의 건평이나 전시공간이 넓은 곳도 있으나 이곳의 경우 실물의 전시가 더 충실하다고 본다. 물론 현대사 유물이 고대나 중세보다 흔하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연구한 것들을 책으로 내놓는데 가격은 15000원으로 일정하며 다양한 학계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묶어서 내놓은 것으로 뉴라이트니 건국절 문제로 논란이 있긴 했지만 다양한 소재를 토대로 내놓았다. 다른 박물관이나 역사관의 경우 비매품인 경우가 ..

역사이야기 2021.07.07

거문도와 분단

분단의 책임은 제국주의 강대국 그리고 이웃인 일본에게도 있지만 이 틈바구니에서 분열되고 화합하지 못하고 상대를 죽이기 위해 외세를 끌어드린 우리 내부에 있었고 특히 큰 것에 의존하는 사대주의도 있었다. 금나라(여진족)가 강할 땐 금나라에 의존하려고 하고 원나라(몽골)이 강할 때는 권문세족들이 명이 강할 때는 친명파들이 그러다 후금에서 발전한 청이 강할 땐 청의 눈치를 그러다가 러시아가 남하하자 일본에서 가져온 황쭌센의 '조선책략'을 보고 눈치를 본다. 러시아가 바로 위에서 남하하니 친중국(중국과 친하게) 연미국(미국과 연합) 결일본(일본과 결합)하자는 주장에 지방의 유생들과 백성들은 들고 일어 나지만 잠자고 있던 사람들에겐 대책이 없었다. 유학을 보내면 공부를 해서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한다는 이들도 있..

역사이야기 2021.06.26

시골극장과 순행

지금은 기초자치단체인 군지역에 극장이 거의 없지만 80년대 까지 극장이 있었다. 극장은 영화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TV방송이 유행하기전 가수와 배우들이 공연을 하고 마당극이나 판소리를 무대에 올려 보여주기도 하는데 요즘은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하는 전국 순회공연을 과거엔 읍면까지 가서 했고 차차 영화와 공연을 함께 보여주기도 하고 요즘 시사회처럼 나와서 인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영화의 한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노래도 했다고 한다. 극장에서 웅변대회도 하고 졸업식이나 집회도 하였고 심지어는 투견대회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TV의 보급으로 연예인들은 방송국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지역으로 쇼단과 함께 가서 순회하는 것이 사라졌으며 극장에선 영화상영이 주로 이루워 졌고 이 마져도 80년대에서 90년대 쇠퇴..

역사이야기 2021.06.10

연예인들의 핏줄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른 들의 직업은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대를 이어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연예계도 그러한 경우가 있으며 그 영향력은 적지 않다. 배우 양택조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의 명배우 양백명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문정복으로 가족을 두고 해방이후 북으로 간다. 원래 고향이 평안도 선천이었으며 문정복은 인민배우가 되며 그녀의 여동생은 배우 문정숙으로 이만희 감독과 활동을 하여 동란 후 한국 영화계를 주름 잡는다. 이만희 감독은 일찍 고인이 되었고 그의 딸이 배우 이혜영이다. 분단은 가족의 이별 이후 다시 만날 수 없는 고통을 낳았으며 한쪽을 선택한 이들은 나름의 삶을 살아야 했다. 다음으로 터프한 연기와 함께 코믹한 그러나 우습게 보이지 않는 배우 최민수의 가족사 또한 사연이 많..

역사이야기 2021.06.08

투이호아 블루스, 황색탄환

김형배화백은 70년대 유명했던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 V와 황금날개를 만화책으로 만든 이다. 당시 만들어진 만화책들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동호인들이 다시 발간하여 판매를 했으나 이것 또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되었다. 고상하고 수준 높은 것을 추구하는 사회전반의 분위기 아니면 심오하고 학술적인 것을 높이 쳐주는 것 때문에 그런지 만화는 수난의 길을 걸으며 뒤늦게 그 가치를 발견하고 찾아 나서지만 이미 늦은 것이 되버린 것이다. 김형배화백의 만화는 동작에 충실하고 이것을 재현하기 위해 모형총기 같은 걸 미리 써보고 그렸으니 태권V의 역동적인 모습을 충실히 했다. 일본의 것을 본 따서 왜색이니 뭐니 하지만 순수한 우리 것은 없다. 80년대 중 후반 만들어진 투이호아블루스는 베트남전쟁의 뒷모습을 그..

역사이야기 2021.05.29

홍성원의 '남과 북'

70년대 방송에서는 6.25와 관련 대작의 드라마를 많이 제작했었고 군부대의 협조도 받았으며 리얼리티가 2000년대 이후 나온 영화에 비해 떨어지긴 했으나 배우들의 연기는 대단했다. 특히 셑트장과 야외를 오가며 촬영을 하였으며 이동식 카메라가 아닌 장비로 촬영을 하고 영화필름을 사용했는데 필름이 비싸다 보니 지우고 다시 썼다는 소문도 있고 자료로 남아 있는 것이 많이 없다고 한다. 당시 KBS 대하드라마 6.25는 고 홍성원의 '남과 북'을 각색하여 만들었고 큰틀은 유지되나 제작상의 제한 때문에 외국인 기자나 미군이 등장하는 건 제외 시켰고 가상의 무대인 버드네(유천)의 경우 작품에서는 수원근교의 농촌이나 드라마에선 충청남도의 어느 시골로 묘사된다. 그리고 북에서 월남한 한상혁은 지주에 야구선수 출신의 ..

역사이야기 2021.05.01

언어의 역사성과 사회성

언어에는 사회성과 역사성 변동성이 있다고 한다. 사회성은 여러 사람이 약속을 하여 사용하고 역사성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며 변동성은 변화 한다고 보면 되겠다. 지금은 잘 쓰지 않으며 내가 어릴적 살던 곳에서만 쓰던 말일 수 있는데 과거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는 어린이들이 적었다. 부모가 재력이 있거나 교회나 성당을 다니거나 읍내이상의 도회지에 살 경우 유치원을 다닐 수 있었고 그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내가 살던 곳에서도 유치원 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70년대 초반 길에서 어른들이 '몇 학년?'이냐 물어보면 초등학교 1학년은 '1학년' 이라고 했지만 미취학 어린이는 '영'학년도 '공'학년도 아니고 '빵' 학년이라고 했다. 하긴 '영점' 이나 '공'점 보다는 '빵'점이라고 하면 팍팍 느..

역사이야기 2021.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