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296

양반의 개념

간혹 수업을 하다 보면 본인의 집안이 양반집안이냐? 묻는 분들이 있다. 글쎄요? 하면서 양반이라는 지위 그리고 성격을 이야기 하며 우리나라에서 신분제도가 법적으로 사라진 것이 1894년 갑오개혁이며 실질적으로 없어진 건 6.25지만 여전히 시골에서는 과거 지향적인 분들이 가문과 집안을 강조할 거란 이야기를 한다. 법적 제도적인 것이 바뀌어도 사람들의 문화적 인식이 바뀌고 생활에 정착되는 건 수많은 시행착오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도 과거 양반의 권위나 체통을 강조하며 지금도 강조를 한다면 일종의 '문화지체'가 되고 이런 문제로 인하여 아노미 현상이 발생하고 행동에 있어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양반을 요즘의 기준으로 본다면 고등고시를 통과한 고위공직자나 군대의 고급..

역사이야기 2021.12.17

한국과 일본의 상품

과거 일본 무사들을 보면 칼을 두자루 차고 다녔다. 뭐 칼의 나라다 보니 그런가? 그들의 정교한 칼을 칭찬하고 우리나라의 칼에 열등감이 있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왜 칼을 두자루 차고 다니는지 (이도류)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깨질 염려가 있어 여분으로 가지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세하고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것은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좋은 철을 뽑고 제련을 할 수 있을 만큼 철의 질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칼 자체보다 칼집이나 칼자루 또는 다른 부분에 특별한 가죽을 쓰고 신경을 쓰고 멋을 냈던 것 같다. 과거 시골에서 쓰던 조선낫과 철물점에서 팔던 왜낫을 보면 그 차이를 느끼는데 우리의 것은 투박하고 정교함이 덜했지만 견고한 편이었다. 포장을 하고 ..

역사이야기 2021.12.01

재일 한국인 역도산

일본의 패전 이후 절망하던 일본인들에게 강한 이미지로 TV에 비친 프로레슬링 선수이자 프로모션 그리고 만능엔터테이너로 사업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던 거대한 인물이 연말 술에 취해 야쿠자 조직원과의 다툼에서 칼에 찔려 병원에서 치료를 하다 사망을 했다. 그의 죽음은 칼에 의한 상처보다 다른 치료중 의료사고라는 설도 있고 그의 행보를 부담스러워 하던 세력이 개입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역도산... 일본식 발음으로는 리키도잔, 별명이었고 , 일본이름 '모모타 마츠히로'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이 고향이며 3남3녀의 막내로 본명은 '김신락' 집안의 형제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인근에서 알아주는 장사였고 씨름대회에서 그의 형은 소를 여러번 받아왔고 신락 또한 씨름을 하여 성인들이 나오는 조선일보 주최 씨름대회에서 어린나이..

역사이야기 2021.11.16

철도건설 반대 투쟁?

고을 주자가 들어가는 평야나 분지의 주민들 사이에는 일제 강점기가 되기전 철도건설을 놓고 지방의 양반들이 반대가 극심해 정부와 일본이 철도건설을 피하고 다른 곳에서 시행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공주 사람들도 그랬다고 하고 전주사람들도 그랬다고 하며 충주사람들 또한 반대했다고 하며 충북선이 지나가는 증평 인근의 청안양반들이 반대해 철도가 동네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술자리에서 '반대투쟁설'을 전개한다. 나라를 외세에 빼앗기고 물질문명이 침투하니 그럴 것이다. 라는 추측도 해보지만 애초에 이런 교통시설을 만들 땐 공사기간과 공사비 그리고 난이도를 보고 치밀하게 고려하고 했을 것이며 누구의 반대와 찬성에 대한 논쟁이 있었겠지만 오늘날 처럼 시위나 조직적 반대는 불가능했다고 본다. 일본의 목적은 중국 뿐 아니라 대..

역사이야기 2021.10.14

바른생활 책에 나오는 '이인호소령'

60년대 초등학교 바른생활 5학년 교과서엔 공중도덕도 있었지만 현실에 대한 만족, 정직한 생활, 바른 국가관, 역사적 인물의 숨겨진 이야기 등이 있었고 이 내용의 일부는 70년대 교과서로 그대로 전달된다. 판문점 자유의 집이나 일본에서 북으로 간 교포들 이야기 부터 동란시기 부상을 입은 상이군경이야기, 백마고지 전투의 3용사 이야기, 그리고 베트남 파병시 국군의 이미지를 좋게 하여 전과를 올린 투이호아지역의 '추수보호작전이야기', 다음으로 위험에 처한 전선의 병력들에게 신호를 보내 목숨을 구한 이야기 등도 있다. 특히 분단과 전쟁에 대한 부분과 함께 당시 사회가 가야할 방향을 이야기 하고 그 대안을 학생들에게 묻는 내용이 요즘과 다른 부분이다. 그리고 육군의 '강재구 소령'이야기가 있었다면 해병대에서 부..

역사이야기 2021.10.10

70년대의 승공관

그저께 70년대 초등학교 바른생활책을 소개했었다. 바른생활이라고 하면 윤리 즉 철학적인 부분이 강하지만 휴전 이후 우리 사회는 북한과의 대결과 갈등 안보상황을 강조했고 실제 무장공비를 침투시켰으며 상호 무력충돌과 함께 선전물의 살포등 지금과 많이 달랐고 반공을 국가 생존의 이슈로 봤었다. 때문에 반공을 표면적으로 내세운 각종 단체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유총연맹이라는 이름을 쓰는 한국반공연맹으로 휴전이후 이승만정부와 대만(중화민국)의 장개석 정부의 연대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두정부 다 공산국가와의 대결을 강조하고 상호 교류를 했고 임시정부시절 중국정부와 관련 있던 인사들은 당시 대만으로 가 대사를 역임하고 우리군의 장교와 장성들도 대만의 군대에 가서 교육을 받거나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특히 심리전..

역사이야기 2021.09.28

70년대 바른생활 교과서

7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 교과서의 종이는 지금의 보안지(눈을 보호하는 색깔을 넣어 하얗지 않고 약한 노란색)가 아니었고 갱지에 가까운 종이로 만들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도덕이라는 말보다는 바른생활이란 과목명을 넣었는데 윤리부분도 있지만 당시의 사건사고 중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것들을 넣었는데 개정을 자주하여 배포를 했으며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교과서를 다시 수거하여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있다보니 책에 낙서나 줄을 긋으면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바른생활책은 개정을 자주하는 편이라서 학생에게 나눠준 후 수거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저학년의 책은 컬러였고 고학년의 책은 흑백이었으며 가끔은 다른 과목과 유사한 내용을 담았고 국민교육헌장을 풀이한 책과 닮아 있었다. 우리나라의 변화상..

역사이야기 2021.09.25

아프간 난민과 베트남 난민

70년대 중 후반 약을 팔러 다니던 약장사들 사이에 공연을 보여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사회자가 소개 하기를 베트남을 탈출한 보트피플이라 했던 것 같은데 나무로 된 술통을 발로 돌리는 묘기를 선보였던 아낙네는 말이 없었고 그저 웃기만 했었다. 당시 극장에서 상영하는 대한뉴스에도 보트피플이 소개되고 베트남을 탈출한 사람들의 마을이 부산에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라를 잃으면 사는게 처량하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화면으로 보면서 왜 미국이 도와주고 용감한 따이한이 갔음에도 망했는지 그들의 국민성을 이야기 했고 우리도 대비해야 한다는 말들을 했었다. 그리고 80년대 초반 공개된 베트남의 미대사관 탈출장면과 영화 킬링피드를 보면서 미국이나 제3국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과 이뤄 놓은 재산이나 명예도 순식..

역사이야기 2021.09.02

아프가니스탄의 비극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이 무장탈레반들에 의해 넘어가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은 세력을 규합 오랜 시간 정부군과 이들을 지원한 미군과 싸워왔다. 과거 베트남을 보는 것 같고 해방직후 우리의 모습도 느껴진다. 종교와 정치가 하나인 이슬람 국가는 친서방국가나 동아시아의 국가와 달리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강한 신념과 조직력 그리고 외세에 배타적인 역사를 이루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우리나라도 독립운동을 하던 세력들 중에 특히 무장투쟁을 하는 군대중에는 천도교나 대종교 천주교 개신교도들이 있었지만 현재 탈레반 같이 폭력적이고 배타적이지 않았다. 무장독립투쟁은 일반인들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해야 하여 이들속에 스며들어야 하며 이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폭력성은 강대국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닌..

역사이야기 2021.08.18

홍범도 장군의 현충원 안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비행기로 운반 우리나라에 왔고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다. 이남 출신인 김좌진장군에 비해 덜 알려졌었고 청산리 대첩이 일어나는 원인, 봉오동전투를 재조명하기전까지는 소규모 군대를 지휘한 사냥꾼 출신의 총 잘 쏘는 의병장으로 알려진 인사였다. 그러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100주년을 기념하고 무장 독립운동사가 알려지면서 장군의 공로는 크고 대단했음이 알려졌다. 최초의 의병이 을미의병(1895년), 그리고 외교권이 박탈된 시기 발생한 을사의병(1905년), 군대가 해산된 시기 발생한 정미의병(1907년)이 있었고 장군은 사냥꾼들을 규합 강원도와 함경도를 누비며 일본의 군경을 공포에 몰아 넣었고 국권피탈 이후에는 한만국경과 연해주 인근으로 전장을 옮겨 더 조직적으로 일본의..

역사이야기 202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