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경무대의 실세

lkjfdc 2022. 3. 21. 02:45

우리 역사를 보면 대통령의 측근으로 있다가 벼락 출세를 하여 권력을 잡고 떵떵거리다 비극에 간 인물들이 있다.

대부분은 박정희를 경호하던 차지철을 생각할 것인데 차지철은 군사적인 경력과 정치적 행보를 걷다가 경호실의 수장이 되었고 당시 청와대와 관계한 장군들과 비슷한 연배이거나 선배였다.

물론 권력을 휘두르고 많은 이들의 분노를 유발한 인사로 고인이 된 상황에서도 비난을 받았다.


청와대가 있기전 경무대가 있었으며 이승만 정권 당시 부 부통령이란 별명을 갖고 있던 '곽영주'는 차지철 못지 않은 비판을 받고 5.16 이후 사형이 집행되는데 그가 사형당한 이유엔' 4.19 당시 경무대 앞 발포명령자, 당시 이정재와 유지광 같은 정치깡패를 비호, 대통령 측근에 있으면서 독재 권력의 하수인이 되고 부정축재등이 원인이었다.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상경하여 기술학교를 나와 일본군에 지원(징병이 아닌 자발적)하여 일본 헌병이 되며 해방이후엔 고향 선배인 이정재의 영향으로 수도경찰학교를 수료 1947년 순경으로 임용 얼마 후 경사가 되고 경무대 경호계에서 근무를 하며 명사수로 이름이 높았고 1950년엔 경위 그리고 1952년엔 경감 1954년엔 총경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 들어 빠른 진급을 하는데 아무리 전시에 위기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이해가 될 수 없고 전방에서 격전을 치룬 사관학교 출신 장교도 이렇지 못했다.

6.25 당시 중위였던 육사 8기 생들이 전후방을 누비며 수많은 이들이 전사를 했음에도 1960년 즈음 중령으로 근무하고 그보다 높은 5기생이 대령에서 준장이 되는데 비해 곽영주의 출세는 너무 빨랐다.

1957년 경찰의 별 경무관이 되는데 경무관이 되기전 경감 시절 부터 조직폭력배 두목 이정재의 도움을 받고 경무관이 되어선 경무대 실세로 천하를 호령했고 민간기업을 상대로 '고리대금업' 을 하기도 한다.

부정선거로 인해 학생들과 시민들이 시위를 하자 조직폭력배들이 폭력을 행사 하자 경찰이 잡아갔고 경찰서에 폭언을 하여 폭력배들을 풀어주기도 했다.

군사정부가 들어서며 잠잠해 졌지만 청와대로 바꿘 경호실을 책임진 이들의 권력은 또 막강해 졌고 그 영향력은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되어 우리 정치에 문제를 일으킨다.


권력의 근처에서 휘두르던 힘이 자신을 망치고 역사의 죄인이 되는 이런 상황은 다시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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