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모이는 것을 통제하고 영업을 규제하지만 해방이후 번진 콜레라는 엄청난 사망자와 혼란을 만들었다.
식량난까지 겹쳐 고통의 크기는 상상하기 어려웠으며 당시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미군에 의한 행정이 이루어졌고 경찰은 조병옥과 장택상이 수뇌부에 있었으나 다수는 일제때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국군이전 경비대가 있었고 경찰의 하부조직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북한체제에서 억압받고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 중 이남으로 내려와 입대한 이들도 있었지만 각 지역에서 일어난 시위와 폭동을 이들이 진압했고 그 과정은 참혹했다.
미군정은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는데 나서긴 했지만 남쪽의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사회불안은 갈등을 촉발시켰고 시위대와 경찰과의 싸움은 큰 희생을 불렀으며 폭력은 사회의 안전망을 붕괴시켰다.
당시 콜레라가 걸린 이들을 호열자라고 했는데 그 고통은 이름처럼 호랑이가 할퀴고 간 고통만 큼 크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인데 조선 후기에도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백성을 힘들게 했던 질병으로 다수의 사망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한여름에도 호열자들은 오한에 시달렸고 당시 빈약한 의료체계로는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기근과 질병 그리고 사회적 불만 ... 이런 것이 쌓이고 이것을 해결하고 안정시킬 대책이 부족했던 미군정과 새롭게 출발하려는 대한민국은 약했다.
그리고 몇 년후 참혹한 전쟁이 발생하여 전국토는 잿더미가 된다.
시간이 흘러 지금도 괴질로 인해 사람들의 일상이 제한을 당하고 있지만 해방이후의 상황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고 제반 여건이 안정되어있다.
올해는 안정되어 편안한 일상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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