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수업을 하다 보면 본인의 집안이 양반집안이냐? 묻는 분들이 있다.
글쎄요? 하면서 양반이라는 지위 그리고 성격을 이야기 하며 우리나라에서 신분제도가 법적으로 사라진 것이 1894년 갑오개혁이며 실질적으로 없어진 건 6.25지만 여전히 시골에서는 과거 지향적인 분들이 가문과 집안을 강조할 거란 이야기를 한다.
법적 제도적인 것이 바뀌어도 사람들의 문화적 인식이 바뀌고 생활에 정착되는 건 수많은 시행착오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도 과거 양반의 권위나 체통을 강조하며 지금도 강조를 한다면 일종의 '문화지체'가 되고 이런 문제로 인하여 아노미 현상이 발생하고 행동에 있어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양반을 요즘의 기준으로 본다면 고등고시를 통과한 고위공직자나 군대의 고급장교에 오른 사람들인데 지금도 그렇지만 대물림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노력이 있어야 하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조선 후기 납속책이나 공명첩 매입을 통해 명예직으로 양반을 하는 사람들이 늘기도 하고 유력한 집안의 족보에 편입이 되기도 하며 양자로 들어가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가 되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음에도 돈있는 이들은 비싼 돈을 주고 양반가문에 편입되고자 하는 경우도 있고 몰락한 가문이지만 양반의 가문과 또는 세도가 집안과 사돈이 되어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고 하는데 지금도 이러한 부분은 존재한다.(소설 삼대나 태평천하를 보면 일제 강점기 양반에 대한 집착이 등장)
자칫 허세와 함께 남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집안은 세도가나 양반이었다는 확증편향을 갖을 수 있고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왕조국가가 아닌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으며 법적으로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
서양처럼 신분철폐 단계에서 많은 피를 흘리고 종교와 정치 권력에 대한 도전이 오랜 세월 크게 작용하여 스며들지 않았고 나라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외세에 크게 저항한 이들도 있지만 그들에게 작위를 받고 금품을 받은 수많은 왕족과 양반관료 그리고 지역 토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자랑스러워 할 것도 아니라 본다.
신분에 걸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 그 자리의 품위와 권위는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며 비판의 대상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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