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서울의 중심

lkjfdc 2022. 1. 14. 11:34



서울의 중심은 종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물론 중구가 있긴 하나 서울 토박이들이 거주하고 궁궐과 함께 관청 그리고 관료들 중인들이 거주를 하고 상인들이 장사를 하며 4대문을 아침 저녁 통제하고 종을 쳐 시간을 알리는 종각이 있고 남산의 봉화를 바라보는 것 또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정기시장인 남대문시장도 있었지만 최초의 상설시장은 종로의 광장시장(배오개장)으로 알고 있고 휴전 이후 약도매상(보령약국)과 대형책방 (종로서적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 각종 기계관련 업체(장사동)가 밀집한 공간과 전자산업의 시작(세운상가 부근)도 종로이고 일본인들이 정착하여 자신들의 상권을 만들고 본정(혼마치)니 명치좌니 해서 진고개 근처에 만든 명동과는 달리 조선인의 상권이 만들어지고 친일논란이 있긴하나 해방 후에 우리 경제에 많은 영향을 끼친 박승직의 박승직 상점( 두산그룹) , 박흥식의 화신백화점등이 이곳에 있었다.


동대문 시장이나 평화시장등 우리나라 의류도매업과 관련산업(창신동 봉제공장)이 발달했고 유명한 양복점 또한 종로에 많았고 우미관 단성사 같은 영화 1번지도 이곳이며 낙원상가는 악기상가의 대명사이다.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음악감상실의 대표격이었던 르네상스 음악다실(장수출신 박용찬) 도 대구에서 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화려한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고 3.1운동이 촉발되어 시작된 곳도 종로의 탑골공원이고 우리나라에 외국의 스포츠가 소개되고 독립운동과 시민운동이 시작되고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YMCA도 이곳에 있고 부당한 노동현실에 대한 자각과 함께 사회문제로 부각을 시킨 전태일 열사의 활동공간 또한 종로였다.


일제강점기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해방이후 대립의 상징들과 6.25당시 파괴되어 다시 살아나고 그 과정에서 보여진 번영과 그 뒤에 보여준 어두움의 모습 또한 종로에 많다.


행정수도가 세종으로 가고 경제의 축이 강남이나 여의도로 갔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곳은 종로이며 4대문 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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