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 27

사회복지 보수교육에 대한 유감

사회복지사는 주기적으로 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이루어 지는데 특정한 날 특정시간에 자신의 집과 가깝고 편한 시간을 잡기 위해 신청을 하는데 마치 경매시간이 임박한 사람들 처럼 모여서 경쟁을 한다.작년에도 이런 것을 보면서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지금까지 해온 것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눈치다.문제는 인력이 부족한(부족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중간관리자 및 운영자)현장에서 업무시간에는 빠져서 갈 수 없고 따로 쉬는 날짜에 맞춰서 정해진 기간 신청한 보수교육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온라인으로 진행을 해도 가능한 것들이 많음에도 현장에 강사를 모셔 실시하는 것은 비용을 내고 듣는 복지사들이 있어야 수입을 유지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학원에 근무할 때 연수가 있긴..

나의 이야기 2025.02.28

일제 강점기의 언론 통제 2

일제는 언론을 통제하는데 있어 많은 압박을 했는데 삼천리니 3.1, 근화(무궁화)같은 제목을 삭제하였으며 40년 민족지라고 불리던 동아나 조선일보도 폐간을 하는데 이 민족지라는 신문들도 일본왕에게 아부를 해 보았지만 더 버틸 수 없었다.아무튼 총독부의 지시 중에 어제에 이어 내린 지침을 살피겠다.연호가.일한병합 후 기술한 문장에는 원칙적으로 황기, 또는 명치, 대정, 소화의 연호를 사용하고 서력 및 중국력은 보충적으로 사용할 것.나 단기, 불기, 공기, 포덕 등의 연호는 정치적 의미가 없는 것에 한하여 각 종교파벌에 따라 이를 사용함을 인정함.다. 서력은 정치 역사적 의미가 없는 것과 세계적 기사에 한하여 사용할 것 4. 총독퇴진에 관한 기사는 조선통치에 영향하는 바가 큰 만큼 함부로 이를 다루지 말..

역사이야기 2025.02.27

일제 강점기의 언론 통제1

과거 이승만독재나 유신독재 그리고 전두환 독재시기에도 그랬지만 1939년 총독부 경무국은 언론과 출판물에 관한 주의사항 "편집에 관한 희망 및 주의사항"을 지시했다.1.황실의 존엄을 모독할 염려가 있는 기사나 사진을 다루지 말 것.기사나 사진을 다룰 때에는 특히 정중히 다루어야 하며 문자에 오식이 없도록 주의 할 것2.왕공족에 관한 기사, '일한병합'후 기술한 문장에는 다음 점에 주의할 것가.조선역사 왕의 호에는 성상, 금상의 자구를 사용하지 말 것.단 태조, 순조, 철종 동비, 민비에 대한 추존은 무방하다.나.고종, 순종 동비에 대해서 황제, 황후를 사용치 말 것.다. 왕실기사에는 순종이후(일한병합이후)의 기사까지 이것을 기입할 것.3.조선통치정신에 배판(비판의 오기 아님)하는 기사(1)역사에 관해가...

역사이야기 2025.02.26

비싼 과일도 있지만...

귤이 끝물인지 비싸고 그전 같으면 비싸서 구경만 하던 포도를 사서 맛 보았다.외국산 포도 보다도 더 싸게 팔리는 경우도 있고 일반 포도의 재배를 그만 두고 샤인머스켓을 재배한 이들의 마음은 편치 않을 것이다.요즘엔 귤 종류도 가격이 다양해져 외국산 오렌지에 비해 가격차이가 크지 않은데 그러다 보니 새로운 품종의 귤들이 계속 재배를 시도하고 있다.팔리지 않아 상하는 과일들이 가게에 구석에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좀 그랬다.포도나 귤종류는 냉장기술이 발달해도 사과나 배같은 과일과 달리 오래 보관하는데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생산이 수요보다 많을 경우 싼 값에 내놓아야 하는데 농가입장에서는 판로를 조절하는 것도 어렵고 해오던 작물을 바꾸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인삼이나 담배처럼 공사에서 매입을 하고 판로와..

나의 이야기 2025.02.25

바람직한 육사인

육군사관학교는 지금도 공릉동(태릉)에 있으며 원래 일본군 훈련소가 있던 곳이다.불암산이 있고 창설 당시는 양주군이었고 6.25 당시 문을 닫았다 다시 진해에서 개교를 하는데 사람들은 진해에서 육사가 운영되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한다.6.25당시 많은 피를 뿌린 육사의 깃수는 1기 ~ 10기 즉 생도1기까지 였으며 생도 6.25전 입교한지 얼마 안된 상태에서 전쟁을 겪고 생도1와 많은 희생을 치루었으나 생도1기가 소위로 임관을 한 반면 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생도2기는 보병학교 생도와 여러 출신들이 모인 육군 종합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전선에 투입이 된다.전쟁이 교착상태에 있을 때 다시 출발한 육군사관학교는 진해에서 육사11기를 받아 그간 이루지 못했던 정규대학 수준의 교과와 추가 되는 ..

군대이야기 2025.02.24

퇴사 후에도 계속되는 만남

보통 직장을 그만두면 다시 찾거나 그쪽의 직원들이나 운영자를 만나지 않는다.나올 때 욕하고 싸우고 원수가 되는 경우도 봤었다.30여년전 본격적인 학원강사를 하기 위해 안양 인근의 신도시 학원에 시강과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합격이 되어 다니고 있었다.경력이 짧으니 허드렛일을 하고 불만도 생길 때 즈음 신입강사들이 들어왔는데 그 중 한명은 유학파로 원어민과의 대화도 되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았고 또 한명은 캐나다 교포였다.그 후 또 다른 신입강사가 들어오고 연배도 비슷하니 일이 끝나면 모여서 술자리가 많았고 좋은 이야기도 있었지만 학원에 대한 불만을 토로 했었다.당시엔 경기도의 술집 영업시간이 제한된 시기라 가까운 서울의 시흥동이나 사당역으로 가기도 했고 근처 여관을 잡거나 동네 저수지로 가서 ..

나의 이야기 2025.02.23

직장 선임이 주신 선물

일하는 곳의 분위기는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한달 가량은 선임자가 업무를 하나 둘 지도해 준다.전 시설에서도 선임자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혼자 시행착오를 겪으며 일을 배웠는데 이곳은 같이 일하는 이들과 손발을 맞춰야 하기에 혼자 잘할 때는 문제가 없겠지만 못하게 되면 어려워 진다.선임자는 다른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이곳에 왔는데 신입이 올 때 마다 업무를 지도해주고 문제를 지적해 준다.초기에 그만 두는 경우가 많은 이일의 특성상 빨리 적응을 하겠끔 해야 하고 적응을 넘어 숙달하게 해야 한다.빨리 하려가 보면 실수가 생기고 그럴 수록 더 당황하게 됨으로 차근차근 일을 하도록 한다.외워야 할 것도 많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은데 외우려고 할수록 더 까먹을 수 있다.얼마전 카카오톡을 통해 힘내라며 선임자..

나의 이야기 2025.02.22

독립신문에 나온 안창호 선생 연설문

독립신문은 독립협회에서 발행하던 것이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고 다음으로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것도 알려져 있는데 매일 나오던 것은 아니고 수,목,토 발행을 했다.외국 땅에서 신문을 한글과 한문을 섞어 편집을 하고 출판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우며 여기에 들인 공은 엄청나다고 본다.이 신문에서 활약했던 이가 춘원 이광수였으며 그는 후에 180°방향을 바꿔 친일행위에 적극 가담한다.아무튼 당시 독립신문에는 안창호 선생이 민주주의에 대한 연설문이 기록되어 있으며 대략적인 내용은 인민(인민이란 말은 해방 후 유진오가 헌법을 기초할 때도 쓰던 용어) 주권에 대한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하였으며 인민 개개인은 황제이며 내각을 구성하는 총리나 공무원은 노복이라 했다.노복을 부리는 데 있어 나라 마다 특징이 있음을 미국여성..

역사이야기 2025.02.21

잉크를 사서 다시 써본다.

간만에 안쓰던 만년필을 꺼냈다.장애인 시설에 근무하면서 TV를 보는 것 그나마 뉴스정도를 보았고 가끔 조용한 밤 책 몇자를 볼 여유가 있을 뿐 무엇을 쓰거나 적는 일은 거의 없었다.대부분 사진을 찍어 보고하고 카카오톡을 통해 문자를 보냈다.새로 옮긴 곳은 보고서나 일지가 많은데 대부분 컴퓨터를 이용하다 보니 볼펜으로 사인을 할 뿐 뭔가 적거나 쓸 시간이나 여유는 없다.다만 근무가 끝나면 빨리 집에 와서 잠을 자든 안하던 공부를 하든 태세를 전환하기 쉬워졌다.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학위를 따는 이들을 보면 대단하다고 느끼는데 특히 주야간 돌아 가면서 근무하는 경우 틈을 내서 뭔가를 한다는 건 쉽지 않고 되도록 취업을 하기전 이루워 놓아야 직장에서도 별 무리가 없다는 것을 이번에 더 느꼈..

문구이야기 2025.02.20

과거 군장병의 교통비 할인

지금은 군장병의 교통비 할인혜택이 없지만 89년까지는 버스를 탔을 때 할인을 해주었고 기차는 별도의 군용칸이 있어 휴가증이나 공용증 같은 것이 있으면 탈 수 있었다.그러나 기차의 경우 군인들이 모여있는 공간에 휴가 가는 병력들은 가급적 승차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이유는 부대 안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휴가가는 공간에서 받기 싫었던 것도 있고 군용열차는 주요노선에 가끔 운영을 할 수 밖에 없으니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서 상황에 맞는 교통수단을 택했다.90년대 중후반으로 넘어 가면서 당시 신세대 병력들은 택시를 1/n로 나눠 전방의 읍내에서 서울까지 편하게 나오기도 했는데 가급적이면 택시 안에서 부대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었다고 한다.70년대 중 후반 고속도로를 이용한 고속버스가 편리해 지면서 휴가시..

군대이야기 2025.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