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95

안양과 경향서점

경기도 안양은 친구와의 인연으로 10년을 살았었다. 30대를 대부분 이곳에서 보냈다. 이사를 가기전 부터 먼저 알게 된 곳이 당시 안양 장내동 성당 인근의 경향서점이었고 이곳은 오가며 들리는 곳이었으며 지금 집에 보관하고 있는 책의 상당부분은 이곳에서 샀다. 90년대 초 부터 들렸으며 당시에는 고 한상동님이 운영을 하셨는데 원래 서울 금호동에서 시작을 했었고 (고구마라는 서점도 이곳에서 여러해를 하다 지금은 화성의 발안인근에 있다.) 안양역 아래 지하상가에서 하다 임대료와 리모델링 때문에 낡은 한옥으로 자리를 바꾸는데 그 시기 엄청난 양의 책을 갖고 있었으며 많은 책들은 찾아오는 손님들로 부터 사기 보다는 신문의 부고(주로 학계나 전문가)를 보고 방문하여 책과 자료를 매입 책을 순환시켰다. 당시엔 경향서..

나의 이야기 2022.07.17

탑 건 '매버릭'

오랜만에 영화관엘 다녀왔다. 일요일 저녁 덥기도 하고 시원한 영화관에 가니 관객들도 별로 없고 마트도 쉬는날이다 보니 주차장도 많이 비어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볼만한 영화가 마땅치 않아 영화 '탑건 매버릭'을 보았는데 보통 영화가 나오면 전단지가 비치되지만 그런 것이 전혀 없고 유튜브나 방송에서 엄청난 광고와 함께 영화평이 올라와 있었다. 탑건 1편은 86년에 상영이 되었었고 당시에도 Danger Zone같은 음악을 앞세워 해군이 운용하는 함재기 F14(톰캣)를 등장시키고 F14와 대응하는 스카이 호크가 가상적기 (aggressor)로 등장했었다. 당시에도 천부적인 해군조종사로 나왔던 피트 미첼(탐크루즈)은 세월이 흘러 다른 이들은 제독이 되고 전역을 했으나 우리나라 말로 '장포대(장군을 포기한 대령)..

나의 이야기 2022.07.13

꼭 유명제과회사가 아니더라도!

과자는 중소기업이 만들어도 잘 만들 수 있다. 과거엔 중소기업의 제품이 다양하게 있었고 지역에만 팔던 과자들도 있었고 빵도 있었으며 아이스바도 음료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 어디에나 대기업제품이고 대동소이 하다. 특히 포장만 요란하고 내용물이 적고 가격은 비싸서 백반 한끼 가격의 과자를 사도 먹을 것이 없다. 물가가 올라서 그런 것 보다는 광고비와 유통마진을 남겨야 하기에 기업입장에서 어쩔 수 없다. 가격이 오르면 양을 줄이고 아니면 질소를 주입하고 비닐봉지에 추가로 종이상자가 있다보니 포장비도 만만치 않다. 식자재가게를 가보니 대기업에서 나오는 제품과 비슷한 것이 큰 봉지에 들어 있어 그냥 사왔다. 맛도 비슷하고 모양도 비슷하며 무엇보다 양이 많았다. 과자가 몸에 좋을 순 없고 심심할 때 먹는 ..

나의 이야기 2022.07.12

위험한 장맛비

지난주 금요일 자가용을 타고 모처럼 출근을 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시간당 50mm 라는 이야기도 들리고 하수도로 배출되지 못하는 물은 마치 갯벌의 밀물처럼 도로로 파고 들고 자칫 차량이 침수되면 중간에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수원 고색동을 지날 쯤 가니 이건 도로가 보이지 않고 경부선 아래 지하도의 편도 4차선의 2개 차선엔 물이 가득차 차들은 이를 피해가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용인시 경계를 지나 잘 달리나 싶더니 상하터널 지나 산에서 내려온 토사로 2개 차선은 쓸수가 없었다. 자동차 전용도로는 차가 가기라도 하지 영동고속도로 광교터널은 트레일러가 넘어져 1개의 차선만 사용하고 차량을 조치하느라 여러 작업차량이 들어가고 터널안의 차들은 갇혀 있었다고..

나의 이야기 2022.07.04

쓰던 가구를 내 놓으며

가구점에서 사는 가구는 디자인은 좋은지 모르나 내구성이 떨어지고 내가 원하는 모양이나 어떤 방이나 공간에 놓기가 어렵고 무겁다 보니 이동하기가 힘들다. 서울살 때 방에 알맞는 가구를 사러 갔으나 앞과 뒤가 다른 가구의 질과 특히 표면의 흠집이 날까 조심을 할 수 밖에 없는 불편함 때문에 동네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분께 방 크기에 맞는 책꽂이와 수납장을 해달라고 하니 사진에 나오는 모양의 작은 수납장을 여러개 연결하고 책꽂이 까지 일체형 처럼 설치하여 사용했었다. 그러나 이사를 오면서 갑자기 해체하고 다시 조합을 했으나 몇 몇 개는 따로 떨어져 나오고 이젠 사용할 수 없게되어 내놓게 되었다. 흠짐이 날까? 망가질까? 걱정하기 보다는 아이들의 장난과 낙서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생기는 흔적을 보며 사용했었다..

나의 이야기 2022.06.25

채소로 된 급식

요즘은 학교급식이나 군대급식이나 중국집의 음식처럼 튀긴 것이나 단 것 그리고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것들이 나오며 도라지나 고사리나 더덕이나 취나물 같은 것은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손이 많이 가고 일단은 먹어 본적이 없다보니 먹는데 주저할 것이다. 그리고 자칫하면 학생들 여론을 반영하여 담당자가 그만둘 수 있다. 특히 군대급식은 빨리 대량으로 조리해야 하기에 다듬고 무치고 할 겨를이 없기에 쉽지 않다. 아들녀석들도 치킨이나 탕수육 피자를 좋아하거나 기름에 볶은 것 , 라면을 좋아하지 저푸른 초원을 장식하던 풀로 만든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어릴 때 그런 부분은 있었지만 그래도 산이나 밭에서 채취한 것들을 좋아했었고 살았던 지역에 고사리 더덕 도라지 취나물 다래순 등이 있어 먹을 수 있었고 ..

나의 이야기 2022.05.23

전기밥솥의 다양함

TV나 냉장고, 세탁기 , 진공청소기, 전기밥솥등 가전제품의 품질은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고 기능도 다양해 졌다. 70년대엔 이런 가전제품이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비쌌으며 국산이 만들어져 이런 것을 사기 위해 마을에서는 계를 조직하기도 일시불로 사기엔 어려워 월부로 구입을 했었으며 집에 들어 오는 날 자랑을 했고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일제를 좋아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구하려 노력했다. 지금은 국산이 일제가전제품보다 싸고 크기가 커서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그중 밥솥은 코끼리가 그려진 것을 사려는 이들이 있었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밥솥이 좋다고 하며 가격도 천차 만별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밥의 맛을 결정하는 건 쌀의 품질인 것 같고 언제 도정을 했느냐..

나의 이야기 2022.04.23

저작물이나 출판물에 특혜는 없다.

나는 학계 전문가도 아니며 학교의 교사도 아니며 현재 학원을 운영하면서 수업을 하는 강사이다. 운영에는 내가 봐도 능력이 없고 누굴 가르친다고 하지만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큰 돈을 벌어 본 적도 없고 재산도 도시 중산층 보다 적으며 누구처럼 인맥이 넓은 사람도 아니다. 때문에 오라는 곳이나 모임에 참석할 일도 드물며 돌아가신 아버지나 어머니가 한지역에 사시며 주거나 받은 것 때문에 큰 부담을 느낄 이유도 없기에 그쪽에선 자유롭다. 앞서 말했듯 학계전문가나 교사가 아니다 보니 내가 뭔가 알고 수업을 하려면 내 돈을 가지고 마련해야 하며 어디서 협조를 받거나 공짜로 받지 않는다. 만약 공짜로 받는다면 그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지 않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자료나 내가 모아온 것 중에 그 단체나 ..

나의 이야기 2022.04.11

과거 민방위 훈련

지금은 40살까지 민방위교육이 있는 것으로 안다. 과거엔 50살까지 였던 것으로 아는데 예비군 훈련을 받을 나이 때 기회가 있어 일찍 민방위 교육을 가본적이 있었다. 도시지역은 민방위 교육장인 큰 교육장에서 강사들이 나와 교통 안전교육이나 응급처치 같은 것을 하고 특히 시장이 나와서 도시현안 문제나 자신의 치적을 알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참석인원이 적은 편이었고 산불예방이라든가 불법소각 문제 같은 것을 교육하는 강사들도 있었지만 실무자나 면사무소 직원이 나와서 재미있고 따분하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고 좁은 지역이다 보니 공통적인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당시엔 50살까지 참여하다 보니(90년대 중후반 느꼈던 40대 후반 아저씨들은 나이가 들어 보였다.) 연령층이 다양..

나의 이야기 2022.04.10

지난시절이 좋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 특히 일부 유투버의 80년대 이야기를 듣고 80년대가 생필품도 싸고 이웃간의 관계도 좋아 살기 좋았고 열심히 일한 도시 근로자 월급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지금도 서울 그리고 대도시 일부 땅값이 비싼 지역의 고층아파트나 고급빌라는 불가능 하겠지만 낮은 층의 아파트나 당시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작은 평수의 집은 지금도 살 수 있다. 80년대 중 후반 6평 정도의 방의 월세가 5만원 정도 (이 돈도 10개월치를 선불로 지불을 해야 했다.) 당시 읍단위 이상 중학교의 1기분 수업료가 4~5만원 내외 단 면단위는 절반이니 2만원 내외였다 . 고등학교 1기분 수업료가 7만원 내외 대학교 1학기 등록금은 국공립이 50만원 내외 사립이 60~70만원 정도 ..

나의 이야기 2022.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