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249

국군포병의 시작.2

왜 서북청년단이 초기 포병의 주력이 되느냐?는 당시의 일어난 4.3사건과 여순사건 등으로 숙군작업이 일어났고 군내부에서는 사상검증이 뜨거운 사안이 되었고 특히 포병은 일정 정도의 학교교육을 받은 병력이 필요했는데 서북청년단의 청년들은 남한의 청년들 보다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고 당시 지휘부가 짧은 기간 교육을 하여 실사격을 하고 전방에 배치할 수 있는 있었으며 같은 동향이었기에 지휘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서북청년단과 그 가족들은 당시 새로운 남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생계수단이 필요했던 것이 결정적 이유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측면의 해결이 당시 사회의 급선무 였고 이념 이런 것 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관건이며 지금도 이것의 해결 없이 나라를 이끌기 어..

군대이야기 2018.12.04

국군포병의 시작.1

지금의 지상군 전력에서 포병전력이 차지하는 부분은 높아졌다. 그 원인은 북한의 위력적인 지상화력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때문이다. 그 시작은 동란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는데 당시 북한군의 경우 미 육군(생각보다 미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병력들을 제대 시킨다.) 보다 훈련이 잘 되어 있었고 다만 사단 화력을 증원하고 보충할 군단포병이나 기타 중 폭격기 같은 것이 빈약했다. 또한 이러한 군사력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많은 돈과 시간이 있어야 조성이 되는 것이라 본다. 한국군의 경우 동란시기 상대적으로 약했던 북한과의 지상군 화력 대결에서 차이를 보인 것도 있고 북한은 북한 나름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군의 빈약한 화력을 증원해 줬던 악몽? 을 잊기 위해 구소련의 화력체계를 본 따 양적으로는..

군대이야기 2018.12.04

M101 105mm 곡사포 모형

M101 105mm는 6.25 이후 국군의 포병을 지금까지 대표하는 장비이며 지금도 가장 문수가 많이 장비된 곡사견인포입니다. 탄종을 다양하게 쓸 수 있고 전방의 보병대대를 지원하는 직접지원포병은 상당수가 이 포이며 6.25가 터졌을 때 이 대포는 국군에게 없었으며 미군이 상륙하여 오산 죽미령에서 투입이 되어 첫 사격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군은 이 포를 미군으로 부터 인수 받아 마르고 닳도록 썻으며 박정희 대통령 시절 포병 장비 중 가장 먼저 복제한 장비가 이 장비가 아닐까 합니다. 11000m가량의 최대사거리를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보병화기인 4.2"박격포와 155mm곡사포의 중간 사거리를 담당하며 장차 보병부대로 넘겨 운용한다고 하지만 소속이 보병연대 예하로 가더라도 전포요원과 사필요원 지휘자 ..

군대이야기 2018.11.25

육군, 해군 , 공군지 그리고

과거엔 많은 사실과 정보들이 책을 통해 전달되었고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TV가 있지만 대부분의 영내병력들은 뉴스나 국가대표의 운동경기나 세계적인 타이틀을 건 경기 이외엔 보기 어려웠고 말년병장이나 부동자세로 대기하고 있는 대기병 아니면 전입온지 얼마 안되는 신병이 내무반에서 드라마 (9시 뉴스 시작전 한마디로 점호준비 바로전 30여분 정도)를 보는 것 이외에 라디오는 청취하는게 개인은 불가 했고 간혹 Tape이나 Record판을 사가지고 와서 듣는데 이것도 오디오가 있는 본부내무반 정도 가능하고 수시로 교체하는 소초나 분초같는 소총소대 병력들의 경우 내무반에 이런 고가?의 기계는 관리하기 어려운 물자였다. 나의 경우는 작지만 행정반이 갖춰진 독립부대라 이런 체제가 있어 각종 혜택?을 기행부대의 병력들..

군대이야기 2018.10.19

예전 계급장

군국주의 국가들의 군복을 보면 맞춤복처럼 만들어 장교들이 착용을 하고 계급장과 훈장등이 화려하다. 주로 이들이 입고 다니는 것은 정복이나 예복이며 전투복 에서도 우리군이나 미군보다 특히 장교들은 눈에 띄고 권총을 휴대하다 보니 어깨에 걸린 가죽띠가 눈에 들어온다. 또한 계급장의 경우 별을 많이 쓴다. 우리군이나 미군의 경우도 부사관 중에서 특별한 경우 별을 추가하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그런 것이 덜하지만 일반하사 이하의 병력들과 그 이상이 입는 전투복의 재질은 달랐었다. 사관생도와 학군장교후보생의 전투복재질도 잠깐 동안 다르다가 같아졌다. 과거 포로를 잡는 과정에서 장교를 찾아 내기 위해 혈안이 된 인민군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계급장을 떼어 버리고 또 임관이 되었다는 명령서는 있었지만 계급장..

군대이야기 2018.07.19

기무사와 계엄선포

국군기무사가 탄핵정국 당시 계엄령 선포를 계획 했다는 사실이 들어나 파장이 일고 있다. 또 어떤 의원은 탄핵이 기각되면 혼란이 올 수 있어 그러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말로 기무사를 두둔했다. 만약이라는 말을 꺼내서는 안되지만 우리나라가 40여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고 전두환이 쿠테타로 권력을 잡던 기억이 떠오른다. 촛불정국 당시 지금 여당인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이 계엄령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고 사람들은 설마 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우리군 특히 고위직 장교나 군생활을 오래한 군인들을 보면 다는 아니지만 시위를 하거나 집회를 하는 걸 종북 또는 불순분자의 행위이며 나라를 망하게 하는 행동으로 보고 자신들만 나라를 위하고 지키며 애국한다는 그릇되고 편..

군대이야기 2018.07.08

백두산함과 대한해협해전

어제는 6.25가 발발한지 68년 되는 날이었다. 막강한 지상군과 항공기로 선제공격을 한 이 전쟁에서 초기 대응에 있어 당시 정부는 속수무책이었고 한강이북의 병력들은 후퇴할 수 있는 퇴로마져 차단당한다. 이는 병력들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훗날 도강파냐 비도강파냐 논란이 생기고 갈등을 만들어 낸다. 그런 사건이 있기전 대한민국 해군은 1949년 미국에서 백두산 함이라는 최초의 전투함을 사고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에서 3인치 포를 장착 1050년 4월 진해에 입항하며 당시 주요도시를 순방한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배이기도 했지만 미 해양대의 실습선으로 쓰였는데 Ensign Whitehead라는 해군장교의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었고 우리군이 지은 백두이라는 이름의 뜻이 같았다. 당시 해군장..

군대이야기 2018.06.26

일본에서 판다는 우리국군의 음식

일본의 어느 식당에서 우리나라 군의 식사라며 '군대정식'이라는 이름의 음식을 판다고 한다. 6500엔이면 우리돈으로 6500원 정도로 보통 밥집에서 먹을 수 있는 백반이 이정도 할 것이다. 가격을 떠나 사진에 나오는 음식은 식판의 형식만 빌렸을 뿐 국군의 식단과는 다르다. 일단 국의 색깔 부터 계란후라이까지 전혀 우리군의 상황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국은 된장을 넣는데 보기는 그래도 군대된장을 넣고 끓인 국이 많았고 무우나 두부를 많이 넣었었다. 여름엔 두부의 표면을 튀긴 생양의 형태로 보통은 그냥 두부로 ... 미역국도 많이 나왔는데 마른형태가 아닌 염장미역이었고 경우에 따라 쇠고기 또는 닭고기를 넣었었다. 그리고 쇠고기 무우국도 가끔씩 나왔었다. 그리고 복음이나 찜 종류로 돼지나 쇠고기 닭고기 또는 ..

군대이야기 2018.06.25

30여년 전 군의 명예선언

벌써 30여년 가까이 되는 사건이다. 89년과 그리고 92년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초급장교들이 군의 선거개입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가 파면되고 이등병으로 전역을 했다. 난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군대에서 해본적은 없다. 이유는 그 기간 동안 선거가 없었다. 선거를 해본건 말년에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를 해봤고 당시 지휘관은 어떤 정신교육이나 언질도 없었다. 또한 정치나 종교적인 것을 강조하거나 그런 것으로 정신교육을 한적도 없었다. 아마 선거비중이 크지 않아 그럴 수도 있고 지휘관의 성격일 수도 있었다. 당시 공산주의 7대 비밀이니 해서 정신교육시간에 교육이 있었으나 자신이 직접 교육을 한적도 없었고 부대원 중 몇몇이 지명되어 공부한 것을 발표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었다. 89년 92년 대..

군대이야기 2018.06.13

군 부상자에 대한 예우

작년 8월 철원의 사격장에서 K9자주포가 사격을 실시하던 중 약실에 불이 붙어 훈련중이던 포반원이 두명 사망하고 여러명 부상을 입었다. 그 중 이찬호 병장(당시 상병)은 심한 화상을 입고 방치 되었다가 뒤늦게 수도통합병원에 후송되어 치료를 했으나 전문병원이 아니고 전문인력이 없어 민간병원에 이송하여 치료를 했으나 지원인력도 끊어지고 치료비나 간병을 감당하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법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있는 것이지만 무슨 사고가 나면 후속조처가 미흡하고 안 그래도 고통을 받는데 그에 대한 대책은 늘 뒷북 아니면 모르쇠였다. 언론이 조금 시끄럽게 하면 위에서 나서고 책임자가 움직이고 부대에선 성금을 거두어 의지를 보이고 분위기를 띄었다. 정부가 바뀌고 지켜보는 국민이 있고 없고 간에 이런 억울하..

군대이야기 2018.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