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247

예비군 훈련에 따른 불이익

서울대에서 예비군 훈련에 참여한 복학생들에게 수업불참을 빌미로 불이익을 줘 논란이 생겼다. 예비군 훈련을 우습게 보는 건지 아니면 본인이 미필이라 몰라서 그러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최고 지성이 모였다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건 기가 막힌 일이다. 하긴 대한민국 남자 중 군대 안 갔다온 사람들이 어디 있겠냐? 고 하지만 과거 80년대에서 90년대에 징집연령대의 현역병 입대 비율은 50%정도고 나머지는 보충역인 방위병 그리고 장교로 부사관으로 복무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생각보다 사회 여기 저기 미필자들이 있었다. 물론 몸이 아파서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가 국가유공자라서 어쩔 수 없이 입대를 못한 경우도 있으나 이리저리 피한 특권층도 있었다. 또한 군대가 현역복무만 끝나면 끝나는 줄 아는 무지함이 예비군을..

군대이야기 2018.05.09

운전병이라는 직책

운전병이라는 직책은 보기에 따라 편안할 수도 있지만 상당히 고된 보직이다. 단기간에 만들어 지는 것 같지만 사전에 교육을 철저히 받는다. 동란 시기엔 운전병이 모자르다 보니 민간인들을 징발했었고 인원이 많지 않았다. 보통 조수나 차장으로 들어가 운전사를 보조하다가 운전을 배워 생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군대에서는 자원입대자들도 있지만 훈련소를 마치고 군사령부예하의 야수교(1군이나 3군지역) 나 2군은 2수교에서 차량의 톤수에 따른 교육을 받고 자대에 오면 사단에서는 보급수송대 그리고 연대에서는 연대본부에 수송부 예하 대대 수송부에 배치를 받는데 보통 본부중대 병력안에 편성되지만 일하는 공간은 다르며 내무생활 할 때 함께 모이곤 했었다. 보통 보병부대에는 차량이 별로 없으나 포병부대나 공병부대엔 차량..

군대이야기 2018.05.03

완장를 찬다는 것

완장을 찬다는 것은 권리와 함께 의무가 있음을 의미한다. 학교에서 반장이나 하다 못해 줄반장만 되도 권리와 의무가 병존한다. 대학에서는 과대표니 학회장이니 해서 뽑아 주기도 하고 나서기도 하는데 군대에서는 하기 싫다고 안하고 그렇다고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어떤 곳에선 권력도 얻고 폼도 나겠지만 또 어떤 곳에서는 고난의 길을 걷는 자리이다. 어떻튼 자리를 맏았으면 최선을 디해야 하고 그래야 본인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산다. 신병때는 주번하사 완장이나 일직사관 또는 일직사령 완장이 우러러 보이고 멋져 보이지만 사고가 나거나 검열을 나오면 지휘관이나 지휘자 그리고 일직이니 당직이니 해서 소환되고 자칫하면 영창을 가거나 군기교육대로 가 곤혹을 치른다. 문제는 계급적 권위를 박탈당하고 다른 곳으로 전출을 ..

군대이야기 2018.04.25

부대에서 수여한 도자기 필통

송탄 비행장 앞에 갔을 때다. 기념품 점엔 다양한 종류의 코인과 기념패 그리고 미군들이 주문한 각종 소품들이 있었다. 이태원 또한 마찬가지 였고 일본 도쿄 근교의 요코다 기지 앞에도 많은 기념품들이 진열된 상점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군에 관한 기념품은 해병대가 약간 다양하게 만들어 팔뿐 (그마저도 영세함) 군부대 앞의 군장점이나 기념품 가게는 영내생활에 필요한 핫팩이나 전등 문구류 또는 옷수선 하는 것이 고작이며 기념품 또한 조악하다. 과거 액자에 연예인 사진이나 얇은 금속판에 부대원의 이름을 새긴 기념액자나 기념패가 전부였고 그나마 이것도 소액으로 받는 봉급에서 적립하여 계타듯 받아서 나오지만 제대할 때 잠깐 빛날 뿐 먼지가 싸인채 방치되어 있다가 그나마 시계가 고장 나면 버려진다. 나의 경우 제대할..

군대이야기 2018.03.23

훈련소의 급식과 처우

육군훈련소은 우리 육군 현역병 특히 전후방 각지 부대로 나가는 특기병을 양성하는 가장 큰 규모의 부대중 하나이다. 흔히 논산훈련소라고 하고 예전에는 제2훈련소라하며 제1훈련소는 제주에 있었으나 해체되었다. 육군의 현역입대자의 절반이 이곳에서 군번을 받아 군인이 되며 각 교육연대별로 관리가 되며 입대일이 다르다. 현재는 어떤지 모르나 큰 교회와 법당이 있고 커다란 소총사격장이나 각개전투장등이 각지에 산재하고 상대적으로 기간병이 적다보니 각종 작업은 훈련병들이 담당을 한다. 이런 현상은 이곳 뿐 아니라 각 병과학교나 사단 신교대도 비슷할 것이며 기간병은 일반 부대에 비해 적고 바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취사시 배식문제가 원할 하지 않아 나오는 식사가 부실하고 샤워시설이나 기타 부대 시설을 사용하는 것이 원할..

군대이야기 2018.03.21

군 위수지역에 따른 외출외박

군대라는 곳은 위수지역이라는 것이 있어 외출 외박시 작전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 이는 유사시 부대로 빨리 복귀하기 위함이고 대체로 밖으로 나갈 경우 연락처를 남기고 주변 읍내나 행정구역 안에 있어야 한다. 계급이 높아도 특정 지역에서는 관할지역을 빠져 나올 수 없음으로 과거 젊은 장교들 중엔 사복으로 갈아입고(주로 초급장교)대학생 처럼 변장을 하거나 군인이 아닌 것 처럼 하며 외출 외박을 다른 지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헌병의 검문을 피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 되는데 그만큼 이동의 자유가 없고 특히 쫄병들의 경우는 그것이 더 심했다. 문제는 이런 약점을 이용 바가지 요금과 불친절이 주말에는 특히 심했고 지역경제가 외출 외박하는 병력들에 의해 유지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과거 지역주민들과의 불미스런..

군대이야기 2018.02.25

구형 포제 계급장

흔할 때는 관심이 없다가 귀해지면 찾는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더군다나 군과 관련된 것은 금기시되고 누구 군대 안갔다온 사람있어 하며 지겹고 힘들고 갑자기 꿈에 나타나 입대영장을 받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나또한 그런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분단국에서 통일이 되면 군대가 없어진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고 군대의 존재가 분단 때문이라는 말 또한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직업군인이나 장교의 경우 명예와 충성심 또는 국가에서 주는 혜택 스펙관리 때문에 가고자 하는 청년들이 많겠지만 짝대기 하나로 시작되는 이등병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등병부터 병장까지의 병력이 없다면 군대는 기반이 없는 군대이고 특히 징집병이 대부분인 육군은 존재할 수 없고 기본적으로 소총수로 시작 거기에 주특기 교육을 받아 병..

군대이야기 2018.02.18

동란 당시의 육군장교 양성과 예비병력

들어가는 글 현재 우리나라 국군의 주력인 육군장교 양성은 육군사관학교를 기간으로 육군3사관학교 그리고 학군사관후보생(ROTC) , 학사장교, 병으로 근무하다 다시 교육을 받고 장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숫자가 많은 병력이 학군사관후보생으로 이는 전평시 소대장요원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도입했으며 미국의 제도를 따온 것이다. 동란시기엔 다수의 학군장교를 양성하는 제도가 없었다. 그러나 유사한 장교양성과정이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 1. 초기 전투에서 육사생도들의 희생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오판)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를 포천전투에 보내 희생시키는 세계전사에 유래없는 실책을 저지르고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의 장교후보생들을 김포에 출동시켜 침략군을 막으러 갔으나 포천방면 처럼 다수의 희생은 없었다. ..

군대이야기 2018.02.13

전쟁과 군의 변화

6.25전쟁 초기 우리군은 많은 인명이 희생당했다. 북쪽 또한 마찬가지 수많은 병력이 희생되고 남한 점령지역의 젊은이와 학생들을 의용군이라고 하여 강제로 전쟁에 동원한다. 그리고 당시 고등학생이나 전문학교학생 학생중에서 비율이 적은 대학생들이 학도의용군이라는 조직으로 참전하나 많이 희생된다. 아마 가장 많은 숫자가 지원한 학교가 전북의 '군산중고'인가로 알고 있으며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갔으나 이들의 병역은 인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아예 현역으로 징집이 되는데 미성년자들 전쟁에 투입하는 건 전쟁범죄이다. 학도병들은 포항전투와 낙동강전선 인천상륙작전을 기만하기 위해 했던 장사상륙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희생을 당한다. 또한 인민군이 되었다 인민군이 퇴패하자 국군이 된 사람도 많았고 거창하게 애국..

군대이야기 2018.02.12

진정한 군인들

6.25전쟁은 중국 본토에서 숙련된 북한 인민군과 국내의 사상분열과 숙군작업 제주4.3사건 여순반란에서 약해진 국군과의 상대가 되지 않은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틈에서 초급장교로서 전면에서 굴하지 않고 북의 대규모 기계화 부대와 포병에 맞서 싸우고 살아 남은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국군발전에 커다란 부분을 담당했다. 그러나 정치적 수완이 없던 분들은 일찍 옷을 벗었고 어떤이는 승승장구했다. 누가 유능한지 누가 부하를 사랑했는지 보다 윗선에 누가 있는지 심지어는 미군과의 관계가 원할하거나 이승만 박정희 훗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등과 연결이 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김영삼대통령의 경우는 군의 실세인 하나회를 척결하여 군의 파벌을 잠재웠지만 군의 사기를 올리는데는 실패한 것 같고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

군대이야기 2018.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