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246

'호국의 별 '시리즈 국방부 발행

공공도서관은 민간출판인들이 팔기 위해 만든 책을 보관하고 관리하고 대여 또는 열람하게 하기도 하지만 정부간행물을 보관하고 관리하여 볼 수 있도록하며 특히 정부의 간행물은 인쇄한 책의 양이 적어 수천여권에 불가하다고 본다. 발간할 때 많은 양의 책이지만 도서관에서 관리를 하지 않으면 사라지며 자료로 남아 있기 어렵다. 대군이라고 말하는 육군의 대표적 교양지 ' 육군' 지도 초기에 나온 건 기록물을 보관하는 곳에도 없으며 결국 일반인들에게 수소문을 하고 기증을 바라지만 쉽게 구할 수 없다. 100년이 넘은 것도 아니고 70여년 정도 (길다고 볼 수 있지만 몇백년 넘는 자료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은 것)밖에 되지 않았는데 인터넷을 뒤지고 고서점을 찾아도 흔적을 찾기 어렵다. 간혹 장군으로 퇴역한 분의 유품에 ..

군대이야기 2022.08.17

육군훈련소의 코로나 감염입소자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장정들 중 코로나에 감염된 이들을 집으로 귀가 조치시켰다고 한다. 한 두명도 아니고 무려 200여명을 그것도 여비만 주고 ... 물론 자가용이 일반화된 오늘날 집에서 데리고 가겠지만 적은 인원도 아니고 ...제대하는 예비군들도 아니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입소하는 장정들은 대부분 같은 광역 자치단체(보통 시도 단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며 훈련소의 조치는 뭔가 군대 답지? 못한것 같다. 입소대대에서 감당이 안된다면 훈련소 본부나 그 이상의 기관에서 나서서 버스같은 귀가 수단을 지원하거나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기간을 생각해서 환자들을 막사에 수용을 하는 방법도 찾았으면 어떠했을까? 싶다. 입소한 장정들이 현역입대자인지 상근예비역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군번을 부여 받지 않았기에 군인신분이 ..

군대이야기 2022.07.31

KF-21전투기의 첫 비행

KF-21 전투기 보라매가 7월 19일 첫 비행을 마쳤다. 공장에서 완전하게 제작된 비행기가 아니라 시험용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 의미는 컷으며 세계에서 8번째로 초음속 4.5세대 비행기를 만든 나라가 되었다. 우리 공군의 창설은 광복 이전에도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도 준비를 했으며 미군정 시기에도 계속적인 요구와 준비로 6.25전쟁 전 공군이 만들어 졌으나 운용할 수 있는 전투기는 없었으며 전쟁 발발전 모금을 하여 훈련기를 도입한다. 주로 미군의 항공기를 받아 장비를 확충하며 유지해왔다. 80년대 부터 제공호라는 이름의 F-5 미국의 것을 받아 조립생산하였고 90년대엔 러시아나 유럽으로 부터 기술이전과 차후 제작을 제안 받았으나 이루워 지기 힘들었고 80~90년대 당시 최신 전투기인 F-16, 2000년..

군대이야기 2022.07.23

현실에 맞는 군대급식

군대의 부실급식에 대한 논란이 일자 부대에서는 조리병들이 신경을 쓰고 군수과나 보급관련 처부 지휘관 그리고 민간인 조리사까지 투입되어 민간인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의 사진이 올라왔다. 좋아졌다. 맛있겠다? 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 아닐까? 하는 의문과 전문조리병이라도 저렇게 차려내려면 얼마나 많은 손이 갈까? 과연 사진의 요리는 메뉴표에 나오는 것을 지시한 대로 했을까? 하는 생각과 시범식이나 부대소개 할 때 보여주는 아니면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것을 재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는게 분식(가득찬 면)과 흰쌀밥이 동시에 나온다는 것이다. 아무리 먹는 것이 좋고 활동량이 많은 군인이라도 큰 그릇의 면과 흰밥을 먹는 것 쉽지 않다. 다음으로 군의 조리도구로 하기엔 쉽..

군대이야기 2022.07.07

육군사관학교의 약화

육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의 교장이 이례적으로 소장계급을 단 장군이 정권이 바뀐 후 임명되었다. 공군사관학교의 경우 중장계급의 장군이 임명되었으며 임관 년도는 육사의 경우 91년 해사 92년 공사교장의 경우 90년도로 비슷하지만 계급과 보직의 경험 그리고 위상은 다르다. 특히 육사의 경우는 건군기나 전시 이외엔 중장계급의 장군이 교장을 대부분 역임했고 잠깐 동안 고성균소장이 육군훈련소장에서 자리를 옮겨 임명된적이 있었다. 현대사에서 육사가 차지 하는 비중은 우리나라의 유수한 대학에 비해 전혀 모자르지 않으며 특히 6.25동란시기 많은 피를 흘렸다. 5.16쿠테타와 12.12쿠테타 같은 사건을 통해 정권을 빼앗고 대통령도 3명이 배출을 한 영향력 있는 교육기관이며 특히 지상군의 숫자가 막강한 우리군에서 육..

군대이야기 2022.06.23

풍산기업과 구리

전쟁시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교육받은 인력(주로 이공계)이 가장 중요하기도 하지만 산업의 연관관계 또한 중요하다. 특히 탄약은 전쟁물자의 비용중 가장 많이 들어간다고 보며 이 탄약에 들어가는 금속중 구리는 큰 비중을 차지 한다. 80년대만 해도 각종 포탄약이나 로켓탄 땅에 묻혀있는 지뢰를 보면 미국에서 들여와 보관된 것으로 많은 양이 있었다. 소총도 영어로 표기 되어 있어 뜻을 확실히 알아도 물어보고 조작을 하는 경우도 있고 포탄약의 신관에는 Delay 같은 단어가 있어 쏘기전에 확인은 필수였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국산탄약이 탄약고를 꽉꽉 채우고 미제탄은 교육용으로 쏴서 소모를 했었다. 특히 소총탄의 경우는 일찍부터 국산화가 되는데 갈색 종이상자에 보관이 되어 반짝거리는 탄환은 살인무기 같은 느낌보다는 장난..

군대이야기 2022.06.22

수송기를 사적으로 전용

지금은 어떤지 모르나 군대의 트럭이나 찦은 마음대로 가라면 가고 오면 오는 것들이 아니었다. 특히 보병부대의 경우 말단 부대는 걷는 것이 일상이고 대대장(중령)이나 작전장교(소령) 정도의 위치가 되야 찦차가 있고 나머지 중대장이나 대위급 정도의 장교는 오토바이를 중 소위는 걷기에 먼거리는 업무나 출퇴근시 자전거를 탔다. 간혹 트럭이나 업무차 가는 차량을 타면서 자신의 것처럼 하지만 그건 특이한 경우였다. 뭐 능력되면 자가용을 사서 타고 다녀도 되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 보병부대가 아닌 수송장비가 많은 부대라 하더라도 트럭이나 찦은 미리 담당자에게 신고하고 배차계의 계획에 따라 써야 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 무거운 것을 받아오거나 멀리 있는 부대 방향으로 버스가 없는 경우엔 한번 오는 부식..

군대이야기 2022.06.18

대책없는 군마트 개방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군대의 충성마트 (P.X)는 아무데나 있는 것이 아니며 최소 대대급병력(500여명)이 모인 곳에 설치되어 있다. 실제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나 경계부대엔 P.X가 없는 곳이 많고 비싼 물건을 사거나 외부로 부터 보내오는 것을 받아 소비했었다. 최소한 연병장이 학교 운동장 정도 되고 부대앞에 포장도로가 있는 곳에 있기에 말단 단위부대 중대나 소대 특히 소총중대나 독립된 부대엔 찾아 보기 힘들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 민간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서 구매를 했었다. 대대급의 P.X 라고 해도 진열된 먹을 거리를 다 살수 없고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곳도 아니며 제한된 시간 간단한 걸 살 수 있는데 교도소를 가보진 않았지만 그곳의 매점 처럼 비슷한 품목을 통제 받으며 살 수 있었고 어쩌..

군대이야기 2022.06.16

고양과 서울 사이의 군부대

고양시와 서울 은평구 마포구 사이엔 드넓은 땅이 있고 그 안에는 철도관련시설과 군부대, 그리고 과거 국립대학이었던 항공대가 있다. 원래 고양시는 넓는 평야와 함께 쌀이 유명했으나 이제는 아파트 단지로 대부분 바뀌었고 사이 사이 시설영농을 하는 농가들이 있고 영화 초록물고기의 막동이네 집처럼 도시화와 산업화에 밀려 고향의 모습은 사진첩에만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의주로 부터 오기도 하고 반대로 가기도 하는 교통의 요지다 보니 사신들이 지나는 길이기도 하지만 오랑캐들의 접근로였고 6.25땐 북한군의 주요 접근로이자 격전지였다. 5.16 때도 12.12때도 이쪽의 길을 막았던 30사단(필승부대)의 움직임으로 인해 쿠테타를 성공했고 30사단에서 출동한 병력들은 5.16이후 청와대 경비를 서는 부대 30단이 되..

군대이야기 2022.06.08

행주도강 전첩비

고양의 고양산 행주산성은 서해에서 들어오는 선박을 감시할 수 있고 북에서 오는 육상병력 그리고 강을 건너는 병력도 감시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수많은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행주산성 북쪽 부근엔 해병대가 서울을 탈환한 기념비가 있다. 유엔군이 인천으로 상륙할 때 우리 해병대도 상륙을 하며 인천 부평 부천 영등포를 거쳐 행주나루를 건너면서 서울을 탈환하고 주도권을 잡는다. 당시 우리 해병대는 미군의 상륙함과 상륙정, 상륙장갑차에 의존을 했고 훗날 미군이 주고간 장비를 이용하고 이것을 이용 국산장비를 만든다. 지금도 미군이 주고간 것들이 남아 있고 많은 영향을 주었다. 행주도강전첩비엔 당시를 알리는 비석이 해병대 사령부에 의해 세워져 있다. 단 아쉬운 것이 비석 앞에 전시된 상륙장갑차(LVT P7..

군대이야기 2022.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