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249

과거 현역병들의 적었던 급여

지금은 군에서 외출 외박을 가면 같이 생활을 하는 선후임병들(2~3명 또는 그 이상)이 인근 읍내나 시내로 가서 점심도 먹고 근처 PC방에서 게임도 하고 여관에서 머무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이기에 말을 놓게 하고 편안하게 대하라며 하룻밤 고기도 굽도 술도 한잔씩 하고 복귀를 한다고 들었다. 또한 사복을 구해서 갈아입고 편안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과거에도 이 과정은 비슷했다. 그러나 부대가 위치한 곳 그리고 부대원 숫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외출 외박이지만 사회와 군대와의 물가 차이로 인해 돈이 없으면 외박을 나갔다가 다시 부대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이는 전역병 신고를 하러 상급부대에 가는데(보통 이날이 마지막) 밖에서 지낼 식비와 숙박비가 없어 먼 길을 ..

군대이야기 2023.04.11

유튜브에 나오는 '머나먼 쏭바강'

드라마를 만들 때는 극작가가 만든 극본에 의해 전개 되는데 이 극본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구성하기도 한다. 민간방송사 SBS는 90년대 초반 서울에서 방송을 시작하면서 창사특집으로 22부작 '머나먼 쏭바강'을 만든다. 당시 이 드라마는 서울과 경기권에서만 시청이 가능했으며 타지역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전편이 올라와 소개가 되는데 고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을 원작으로 했다고 하지만 드라마의 내용은 많이 다르며 특히 영화에서는 과거 베트남 전에서 치루었던 맹호부대의 '둑코 전투'와 해병대의 '짜빈동 전투'를 드라마에 표현하고 한국과 베트남의 혼혈인 '라이따이한' 문제를 다루고 '고엽제 문제'를 다뤘다. 그러나 원작에서는 전투장면이 초반에 잠깐 등장하고 대부분은 귀국을 하는 과정 ..

군대이야기 2023.04.04

60년대의 육군예하 군악대

군대엔 사단급까지 군악대가 있고 이들은 지역의 행사에도 참여를 한다. 건군초기엔 연대단위에도 있었는데 당시 악기의 수급이 중요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한다. 60년대엔 육군본부 군악대(육본군악대:1946년 1연대 군악대가 창설되어 경비대 총사령부 군악대로 개칭 , 육본 군악대로 개칭 이후 53년 68인조 규모로 증편 )가 68인조 2/68 앞의 2명은 장교로 대위와 군악대장과 준위 였다고 한다.(여기에 1군악대가 직할인 것 같다 1군악대는 2/ 34 34인조) 그리고 육사 군악대도 68인조인데 보통 이 군악대 또한 인원이 많은데 육군본부 군악대와 마찬가지로 서울의 육사에 있다 보니 정부행사의 연주를 했다고 하며 육본군악대와 함께 군가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원주에 제7군악대(1953..

군대이야기 2023.03.07

후배들에게 관심이 없는 국방위원들

현재 군대 특히 육군의 초급장교들 그리고 하급부대의 중추인 부사관들의 전역희망이 증가하는 가운데 국회 국방위원들은 여야 상관 없이 자신들의 연금을 지키기 위해 골몰하고 있어 욕을 먹고 있다. 보통 장성이나 고급장교로 퇴역을 하면 적지 않은 연금이 나오는데 선출직 공무원이 되면 봉급이 지급되기에 연금지급이 중단된다. 그러나 자신의 연금을 계속 받아내기 위해 관련 법을 바꾸고 평상시에는 국방위에서 언성을 높이고 '국가 안보'를 논하고 싸우던 선후배의원들끼리 웃으면서 합의를 한 것 같다. 현재 야전의 군인들 특히 초급간부들은 야간근무나 당직을 서도 터무니 없는 수당을 받고 있으며 훈련시 밥도 사먹어야 하며 (그러나 사먹을 여건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병력들을 위해 부대를 위해 자신의 차량을 이용하여 업무를 해..

군대이야기 2023.02.25

해군 '육전대'와 6.25전쟁

대한민국 해병대는 여순반란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우리군이 바다를 통해 접근을 못하자 상륙전을 전문으로 하는 부대를 만들면서 시작이 되었다. 해군 장교들과 해군으로 입대한 신병을 받아 덕산비행장에서 시작을 한다. 지금은 군단병력으로 서해5도와 김포와 강화도 그리고 포항 제주도 등에 흩어져 주둔을 하며 국가 전략 기동 부대로 입무가 다양하지만 처음에는 신생 독립국의 혼란 스러운 상황에서 서부 경남과 제주에서 작전을 하고 6.25가 발발하자 군산 장항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여 이들의 기세를 둔화시키지만 후퇴를 하여 낙동강 서부지역에서 격전을 하며 도서지역에서는 상륙작전을 한다. 보통 해병대를 '해군육전대 '라고 한자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고 실제 외국군에는 존재하기도 하는데 우리군엔 해병대가 창설되면서 해군..

군대이야기 2023.02.21

외출외박과 횡령

6.25전쟁이 발생한 원인중 하나는 외출 외박이나 휴가간 병력들이 많아서? 라는 이유가 있다. 24시간 대기하는 병력들은 가급적 돌아가면서 휴식을 하게 해줘야 하지만 편안하게 두는 경우는 없다 쉬라고 주는 시간에는 빨래를 하고 개인화기를 손질하고 군화라도 닦고 있어야 한다. 지금은 군화나 군복이 자주 손질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과거의 것들은 속칭 '짜세'는 나지만 신경을 써야 했다. 그리고 경계근무을 전담하는 부대는 낮과 밤이 바뀌는 경우가 많고 점심시간 까지는 잠을 자야 하지만 보장이 잘 안되며 밤에 잠을 자고 낮에 일과를 진행하는 부대의 경우에도 하루 1~2시간은 정해진 곳에서 경계근무나 위병소 근무 하다 못해 전화기 앞에서 대기를 한다. 문제는 휴가나 외출을 많이 보내주면 누군가의 근무가 늘어나고 ..

군대이야기 2023.02.14

초급장교의 권총휴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초급장교인 소총소대의 소대장인 소위와 중위가 소총 이외에 권총을 휴대하고 작전을 나간다. 북한군의 경우나 일본군 혹은 독일군의 경우 장교(군관)와 병졸의 전투복이 다르고 장교의 경우 별이 달린 계급장도 있고 권총을 휴대하지만 우리군의 경우 고급장교가 되어야 권총을 휴대하고 운전병이 딸린 짚차가 있다. 멀리서 보면 구분이 안가야 하지만 실루엣을 보면 장교와 병사는 행동이나 이동할 때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저격수에게 노출이 되기 쉽다. 짚차를 타고 다니는 건 작전을 목적으로 하기에 소총수가 대부분인 보병부대의 경우엔 짚차로 이동하는 건 중령인 대대장이나 소령인 작전장교 정도 이고 중대장인 대위는 병사들과 걸어서 이동하거나 오토바이가 있다면 사적으로 구해서 타고 다닌다. 작전구역이 넓다면..

군대이야기 2023.02.12

장교나 부사관의 주특기 참여

요즘의 육군을 보면 장교와 부사관들이 과거 병장이하의 병력들이 하던 주특기에 적극 참여하는 것 같다. 주특기는 병과 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며 소총수나 보병화기 사수, 포병의 포수를 제외한 많은 현역병들이 신병 때 병과학교에서 후반기를 받기도 하고 과거 특정분야는 장교나 부사관 만큼 장기간 교육을 받는 분야도 있다. 실무부대에서는 경계근무를 담당한 부대를 제외하면 일과시간 부여한 작업과 업무도 하지만 상당한 시간 자신의 주특기를 연마하는데 시간을 소요한다. 과거엔 대부분 병장 이하의 병력들이 자신의 후임자들을 인솔 모여서 교육을 하였으며 못하면 체벌도 있었고 주특기 측정을 할 때면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해당 분야의 대표 선수들을 편법으로 내보내기도 했었다.( 부대평가와 지휘관 진급에 큰 영향) 보통 당시..

군대이야기 2023.02.02

육군 훈련소의 연무문

논산엔 우리나라 육군의 신병을 교육하는 육군훈련소가 있다. 보통 논산훈련소라 불리우며 연무대라는 한자이름도 있고 육군 제2훈련소라고 과거에 불렀다. 제1훈련소가 제주에 있었고 강병대라고 불리웠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대략 육군 현역병의 절반이 이곳에서 양성되며 보통 사단의 신병교육대가 중령에 의해 지휘통솔되는 대대급이라면 육군훈련소는 소장이 훈련소장으로 사단급이며 예하에 교육연대가 여러개 있고 다양한 병력들이 길러지며 교육연대 아래의 중대에서 병기본훈련을 받고 전후방 각지로 배출된다. 훈련소 안 교육연대에 투입을 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곳이 연무문이며 퇴소할 때도 보통 이곳으로 나오는데 이문이 만들어진 건 50년이 넘었다고 하며 육군훈련소의 상징이고 논산하면 떠오르는 곳이다. 그런데 이 연무문의 모..

군대이야기 2023.01.25

군 초급간부들의 이탈

60~70년대엔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치열했었다. 여기엔 체제경쟁 뿐 아니라 무력충돌도 있어왔다. 80년대 경제규모가 커지고 그리고 민주화 등 이것을 가볍게 보는 경우도 있으나 국민의 요구에 따른 직선제 정착 사회전반의 자율화등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어떤 특정 정치지도자가 이루어낸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만큼 다양화 되고 개방된 사회가 되었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60~70년대 그리고 80년대 90년대에도 무장간첩이 등장하고 그 피해가 있었으며 전방의 철책을 보완하고 70년대 후반 철책선 부대에 전기가 들어오고 야간 경계근무가 과거에 비해 원할해 진다. 60년대 말 향토예비군이 만들어지며 방위병 제도가 시작되고 당시엔 기초자치단체의 치안과 예..

군대이야기 2023.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