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246

일본군의 용산주둔

용산은 지금도 군사적 요충지지만 과거에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군대를 주둔 시킨 곳이며 그 자리는 비슷하지만 다른 곳으로 변했다. 크게 변화하지 않은 장소는 현재 용산중고등학교로 이곳은 구제 용산중학교가 있었으며 일본인 들이 많이 다녔고 일본이 물러 간후 다시 역사를 시작한다. 지금 전쟁기념관 자리엔 80년대 까지 육군본부가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땐 20보병사단 예하의 보병39여단 (평양주둔)예하의 78연대가 보병40여단(용산주둔) 예하의 79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평양 39 여단 예하 78연대, 용산 40여단 예하 79연대 라고 하는데 39본부가 평양에 있음에도 예하 78연대를 용산에 둔 건 전략상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마도 78연대를 북쪽이나 남쪽 어디든지 출동 시키려는 의도가 있..

군대이야기 2023.11.23

육군부대도감과 육군의 뺏지들

지역의 서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인터넷을 통해 주문을 한 책이다. 이러한 자료는 육군본부나 국방부에서 만들어 말단 단위부대에 먼저 배포하면 좋겠지만 신기수라는 작가분이 정리하여 출판을 했다. 6.25참전용사셨던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말을 서두에 남기고 우리육군의 부대마크를 순서대로 나열하여 그 의미와 간단한 역사 그리고 잘못 알려진 사실을 지적하며 그동안 창설되었다 사라진 단위부대의 마크를 대부분 소개했다. 육군지나 육군역사에 조금씩 소개되었던 내용도 있고 인터넷을 찾으면 알 수 있지만 약간 빳빳한 종이에 칼라로 나온 부대마크들은 멋지고 잘 정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내용을 과거 Defence Korea에 시리즈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고 있는데 당시엔 위험스러운 부..

군대이야기 2023.11.18

이해할 수 없는 합참의장 후보자

11월이 되면서 우리나라 군 수뇌부가 교체되었다. 장군의 대부분이 90년대 이 후 임관된 이들이며 가장 최고의 자리인 합참의장은 1989년 임관한 김명수 해군대장이 임명되었다. 전임 합참의장인 김승겸 대장이 1986년 임관을 했었고 후임이 햇수로 4년이 나며 대장을 달고 해군참모총장을 경험한 것이 아니고 중장에서 바로 진급 합참의장이 된 건 파격적이다. 과거 소장이었던 김홍렬제독이 해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던 것이 연상된다. 나이나 군경력으로 보면 현 최고 수뇌부와 큰 차이가 없거나 비슷하여 어색하긴 하지만 해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하며 잠수함의 함장 경험도 있다고 하니 대단한 제독이긴 한데 청문회에 나와 밝힌 사실을 보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도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합..

군대이야기 2023.11.17

군대도 못 갈 체력의 공직자

부동시란 눈의 양쪽 시력 차이가 커서 촛점을 맞추기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이것이 심하면 징병검사에서 신체등급이 낮아지고 현역이나 방위병으로 입대하지 않았다. 현재 대통령도 이 부동시로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과거엔 20대 남성의 절반 정도만 현역병으로 입대하고 지역특성과 외아들이냐 그리고 건강과 학력에 따라 보충역인 방위병으로 소집이 되었는데 대통령은 부동시로 인해 이것 조차 해당이 안되었다. 방위병 또한 신병훈련소에서 총을 잡고 실탄사격을 하며 이등병이 되기 위해 고생을 하며 어떤 경우엔 현역이 경험하지 못하는 부조리 많은 군대생활을 하다 소집해제를 하면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부동시가 심하면 방위병소집도 해당이 안되고 어린 나이 민방위에 편성되어 재난대비 훈련을 하거나 소집점검을 했을 것이다. 어..

군대이야기 2023.11.14

다시 만들어진 용사의 집

용산역을 나오면 남쪽에 용사의 집이 있었다 . 서쪽 방향엔 전자상가가 있고 철도시설이 복잡하다. 그리고 북쪽으로 올라오면 삼각지역과 전쟁기념관 그리고 국방부 부터... 일본군이 있기전 청군이 지금은 미군들이 군사관련 시설이 넓고 우리군도 이곳에 넓지 않지만 다양한 시설들을 쓰고 있고 많은 군인들이 이동을 할 때 용산을 거쳐간다. 이곳에 용사의 집이라는 편의시설이 있었고 현재는 대공사를 마친 후 고층건물이 들어섰는데 넓지 않은 부지를 꽉 채워 인근의 고층건물과 비교해도 낮지 않은 모습으로 세워졌다. ROKAUS라는 이름으로 별4개짜리 호텔이 들어 섰으며 겉으로 보면 일반호텔과 다르지 않다. 이 자리엔 작은 학교크기의 건물이 있었고 그 안에는 민간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숙박시설이 있어 군장병들이나 예비역들..

군대이야기 2023.11.07

defence Korea와 다양한 작가들

13년전 쯤 인터넷군사사이트에서 필담만 나누다가 실제 얼굴을 보고 쌓인 이야기를 하기 위에 신사역에서 6~7명의 회원들이 모임을 한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인터넷 사이트는 사라진 상태였지만 간간히 서울의 사당역 쯤에서 만나면 긴 이야기와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여자들의 대화가 많다고 하는데 이 사이트의 회원들은 2박3일 모임을 하면 무박3일을 만들 만큼 쌓아놓은 이야기가 많았고 늘 끝나면 아쉬웠다. 사이트는 휴업을 했지만 다른 수단을 이용해 대화를 하기도 했는데 한계가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 저술활동과 강의를 하던 필명 게딱지 소령(이창선님)이란 분이 귀국을 하여 수도권에 사는 분들이 비오는날 소집이 되었었다. 사람들은 군사사이트 그러면 무기나 군사조직에만 관심을 두고 극우집단..

군대이야기 2023.11.06

육사 5기생들의 지역분포

전쟁영화를 보면 북한군 장교는 지독한 평안도나 함경도 사투리를 쓰고 국군장교는 서울 즉 경기도 말을 쓴다. 그러나 이건 영화가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뭔가 상징적일 수 있지만 6.25 발발 당시 육군장교들의 상당수 사병의 상당수는 이북에서 월남한 이들로 농사를 주로 하고 경제적 기반이 있던 남쪽의 청년들은 군에 많이 입대하지 않았다. 당시 국군은 지금처럼 의무복무가 아니었고 전쟁 바로 직전 징병제를 시작했다. 정부수립 당시 군인의 숫자는 경찰보다 적었고 나이가 어렸으며 개인화기 또한 경찰보다 좋지 않았으며 남쪽에 기반을 둔 청년들 중에는 경찰이 싫어서 또는 사상적인 이유로 지역의 군 부대로 입대를 한다. 장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워 지지 않던 시기 육사 정확히는 조선경비사관학교는 군사경력이 있던 사람이나 현역..

군대이야기 2023.10.18

말단부대 초급간부들의 급여와 수당인상을 ...

80년대에서 90년이 넘어 가던 시절에도 병력이 턱없이 부족한 말단부대에서 하사관(부사관)들의 전방으로의 전출이 많았었고 화기소대 같은 경우는 장교가 없는 부대도 많았다. 직업 하사관제가 정착되지 않아 현역병들을 하사로 임용 말단부대의 분대장으로 임명하고 소대의 선임하사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상. 병장들 (위에서 볼 때는 믿고 맡기기 어려운)과 일반하사들이 원래 초급간부들이 해야 하는 부대의 많은 일들을 했었고 이런 것들이 병영부조리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당시 저비용 고효율로 유지되던 일반하사제도는 사라졌다.(당시에 문제는 있었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현재는 직업부사관 제도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되는가 했더니 바로 위 초급장교들의 이탈이 시작 ..

군대이야기 2023.10.16

금메달과 병역특례

항저우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까다로운 일본 축구 대표팀을 상대로 2:1 로 이겨 금메달을 땄다. 전반 정우영선수의 동점골과 후반 조영욱선수의 역전골로 이겼다. 초반에 일본의 공격에 1점을 내주어 불안한 출발을 했으나 볼 점유율을 높이고 안정적인 경기를 진행하여 경기의 주도권을 잡고 승리를 한 것이다. 이번에 팀을 이끈 황선홍감독은 아시안 게임만 바라보고 국가대표팀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올림픽까지 이어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아는데 예선서 부터 중국 관중들의 편파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결승에 진출을 했고 결국 이겨냈다. 승리한 대표팀의 선수들은 병역특례를 받고 특히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우 공백이 없이 활동을 할 수 있어 팀에 기여를 하는 측면이 강해 이번 우승을 반긴다고 ..

군대이야기 2023.10.08

70년대 정훈교재 겨레의 횃불

최근 취임을 하려하는 장관 후보자들을 보면 뉴라이트의 영향을 받았는지 역사관이 편향적이며 문제가 많다. 과거 50여년전 박정희 정부 그것도 군대내에서 발행된 지휘관용 정신교육용 교재에서도 3.1운동이후 탄생한( 1919.4.8일 )상하이 임시정부의 시작을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보고 이것을 확고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극우유튜버나 일베의 주장을 따르는 이들이 적지 않고 또한 이러한 것의 근거라며 일부 역사학자와 특정 언론사나 신문사의 기자들이 객관성을 강조하며 일본의 지배를 정당화 하고 식민지가 된 대한제국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친일파들까지 옹호하고 있다. 당시 임시정부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닌 여러 지역의 인사들을 모으고 국내의 상황을 고려하여 만들어 졌으며 임시의정원과 국무원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한다...

군대이야기 2023.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