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육사 5기생들의 지역분포

lkjfdc 2023. 10. 18. 07:51

전쟁영화를 보면 북한군 장교는 지독한 평안도나 함경도 사투리를 쓰고 국군장교는 서울 즉 경기도 말을 쓴다.

그러나 이건 영화가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뭔가 상징적일 수 있지만 6.25 발발 당시 육군장교들의 상당수 사병의 상당수는 이북에서 월남한 이들로 농사를 주로 하고 경제적 기반이 있던 남쪽의 청년들은 군에 많이  입대하지 않았다.

당시 국군은 지금처럼 의무복무가 아니었고 전쟁 바로 직전 징병제를 시작했다.

정부수립 당시  군인의 숫자는 경찰보다 적었고  나이가 어렸으며 개인화기 또한 경찰보다 좋지 않았으며 남쪽에 기반을 둔 청년들 중에는 경찰이 싫어서 또는 사상적인 이유로 지역의 군 부대로 입대를 한다.

장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워 지지 않던 시기 육사 정확히는  조선경비사관학교는 군사경력이 있던 사람이나 현역군인들을 입교시켜 훈련을 했으나 5기 부터는 민간인들 중 중등학교(구제 중학교로 요즘의 고등학교)이상의 학력자를 선발한다.


이들은 6.25당시 일선의 지휘관이었고 전쟁을 치열하게 겪었으며   끝나고 고급장교로 미국으로 군사교육을 받으러 다녀오기도 하고 연대장이나 여단장급의 지휘관이 되어 근무하며 5.16쿠테타의 중심이 되지만 후배들인 8기에 밀리게 된다.

아무튼 육사 5기의 구성원을 보면 월남한 청년의 비율이 높았고 60% 가까이 되며 경쟁률도 높았는데 22대 1이었다고 한다.

임관한 후 제주도와 여수순천에서 전사한 이들도 있었고 6.25 당시 전사한 이들도 있었지만 군에서 경력을 쌓고 고급장교로 전역이나 퇴역을 한 인물들도 많고 은퇴 후 이북출신들은 외국(주로 미국)으로 간 이들도 있다.

육사의 5기부터 8기 까지는 많은 수가 단신으로 월남한 우익출신들이 많았고( 2/3)이들은 국군 장교의 구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5.16쿠테타 이후 군내부의 권력투쟁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대표적인 인물엔 채명신 장군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재춘 그리고 6.25때 공을 세우고 전사한 고  장세풍 소령, 고 장철부 중령, 고 김용배 준장 등이 있다.





군은 특히 장교들의 경우  특정 지역이나 특정 출신들이 많은 수를 형성하면 안되지만 광복이후 분단이라는 상황은 그러하지 못했고 이러한 것들이 우리군을 단합시키고 성장시키는데 좋은 부분도 있지만 여러가지 장애요소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