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246

P.X가 없는 격오지 부대

군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이나 혹 다녀왔어도 대대급 이상의 대연병장이 있는 부대(이런 곳은 앞에 도로도 있고 공중전화도 있었다.)에 근무했던 사람들은 군부대의 P.X에서 싸게 면세품 특히 과자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냉동만두나 음료수도 쉽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소초나 분초 독립중대 이하엔 P.X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있어도 진열된 상품이 제한되어 있으며 큰 부대의 P.X도 쫄병들이 원한다고 과자나 음료수를 원하는 대로 살 수 없고 판매량이 제한되어 있고 출입시간도 통제한다. 정작 휴식시간에는 P.X 를 관리하는 병력이 퇴근을 하거나 철수를 하기에 살 수 없다. 그나마 큰 부대는 미리 누군가의 조치로 싸게 사서 회식을 할 수 있지만 작은 곳엔 근처 민가에 까지 가서 비..

군대이야기 2022.12.18

오래된 추억록

직업군인들이나 단기근무를 하는 장교들 또는 부사관의 경우 전역(예비역으로 바뀌는 것), 퇴역(정년을 가득 채우거나 예비역으로 전환이 없이 마무리 되는 것), 또는 소속이 바뀌어 부대생활을 마무리 할 때 돈을 거두어 기념패를 만들어 준다. 일종의 상호부조라고 보면 되고 급여에서 미리 공제하여 떠나는 이를 보낼 때 만들어 준다. 말단부대에서는 병력이 적어 못할 수 있기에 계급별 출신별 모임에서도 돈을 거두어 만들어 준다. 특히 장군으로 떠나는 경우나 다른 부대로 진급하여 가는 경우에 순금이나 백금으로 만든 계급장을 선물하기도 하고 지역의 인사나 동창회에서 축하한다고 돈을 모아 계급장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장식용 칼도 만들어 준다. 그러나 현역복무를 하는 병력들이나 지역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한 이들은 기념패나 ..

군대이야기 2022.12.13

군과 경찰의 조직 변화

우리 군대는 6.25 이후 의무복무자들을 하위계급에 배치하여 대군을 유지 했고 이등병 부터 병장은 징병제에 입각한 젊은이들이며 엄밀하게 보면 장교들 중에도 중위 이하 부사관 중에도 하사 이하는 의무복무자에 가깝다. 초급 간부의 경우 급여가 하위 공무원 수준이고 24시간 대기하면서 과거엔 받은 돈을 현역병들 간식 사주는 데 쓰기도 하고 부대 운영비를 사적인 비용으로 지출했었다. 경찰조직에서 순경이라는 계급은 오래전 부터 경찰의 상징 같았고 경사와 함께 실무를 담당했었다. 군과 달리 능력이 되면 상위계급으로 올라갈 기회가 제도적으로 보장은 되어 있었지만 쉽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경사로 정년을 마쳤었다. 현재는 경위로 진급이 되지만 경위나 경감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전투경찰이 시위진압에 동원되고 의무경찰..

군대이야기 2022.11.07

해병대 전우회의 봉사활동

도시와 시골 각지에서 행사를 하면 빨간명찰의 예비역 해병들이 군복을 입고 교통정리나 인원통제등을 해준다. 자율방범대나 여러 단체에서 나와 활동을 하지만 해병대 전우회의 활동은 더 각별한 것 같다. 실종자 수색을 할 때도 있고 특히 위험한 저수지나 하천을 수색할 때 과거 군생활의 경험을 살려 나선다. 제대했으면 조용히 있지 '유별나다!'할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경찰이나 군이 다하지 못하는 것을 나서서 해주는 분들을 보면 고맙고 든든하다. 기초자치 단체별로 해병대전우회가 없는 곳이 없고 심지어 해외에도 전우회가 있는데 이웃의 어려움을 그냥 쳐다보지 않는다. 현역으로 있을 땐 귀신도 잡을 만큼 용맹한 해병대였고 예비역이 되어선 많은 이들의 일꾼이 되는 그들은 팔각모와 빨간명찰이 상징하는 정신을 실..

군대이야기 2022.11.05

안전사고와 경찰력

이태원 압사 사고의 인명사고로 너무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유럽의 축구장 사고나 공연장의 사고등 외국에도 큰 사고들이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위험해지면 정신이 없고 이성을 잃을 수 있다. 과거 막차를 타고 뒷쪽에 탔는데 엔진룸에 연기가 나고 불이 붙었다. 불이야! 하고 소리를 지른 사람도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너도 나도 앞문으로 향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각종 인사사고와 안전사고 그 중에서도 차량사고 경험과 목격으로 인해서 (야전 공병단 대대에서 근무 )아예 운전대 근처에 가지 않으셨다. 면허를 딸 수 있는 기회가 많았겠지만 수송부 수송관이나 선탑자를 오래하셨음에도 차량 운전에 대해 거부감이 많으셨다. 이유는 젊은 시절 선탑자로 운행을 갔다가 대형사고가 나서 다리를 크게 다치셨..

군대이야기 2022.11.02

고 이원등 상사 동상

20여년 전 용산역 부근에서 모임을 끝내고 전철역으로 갔더니 막차도 끊기고 안양으로 가는 좌석버스도 놓치고 걸어서 한강다리를 건넌적이 있었다. 날씨도 추운데 한강을 바라보니 물빛이 반짝거리고 바람도 강했다. 63빌딩과 뒤에는 남산타워 강건너 노량진의 불빛이 더 밝게 느껴졌고 오른쪽에는 조종사의 모습을 한 동상이 있었다. 혹시 6.25때 한강다리를 폭격하다 전사한 분이 아닐까? 아니면 한강다리 밑으로 비행을 하다 사고로 돌아가신 분일까? 생각을 했는데 안내문을 보니 공수특전단 중사로 1966년 2월 4일 한강에서 고공낙하훈련(고공낙하는 수송기나 기구에서 뛰자 마자 낙하산을 펴는 게 아니고 일정 높이까지 낙하산을 펴지 않고 은밀하게 내려오다가 낙하산을 늦게 펴 지상이나 바다 또는 강에 내리는 고도의 기술이다..

군대이야기 2022.10.17

6.25사변당시 무기가 빈약했던 원인

6.25가 일어날 당시 우리군엔 전차가 한대도 없었고 전투기 또한 없었고 해군에는 국민의 성금으로 구입한 백두산함이라는 전투함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미군이 쓰던 무기만 주고 최신형 무기를 주지 않아 북한의 강력한 화력과 전차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한다. 문제는 당시 10여만의 국군은 징병제를 실시한지 얼마 안된 상태였고 육군의 대부분 병력들은 경무장한 보병연대였으며 기갑연대가 있긴 했으나 바퀴가 달린 장갑차가 장비되었었고 이 부대는 훗날 수도사단 일명 맹호부대의 기간이 되어 지금은 막강한 전차가 있다. 6.25당시 화력을 담당하는 포병대대는 전방에 배치된 1사단 7사단 6사단 8사단 그리고 옹진반도 다음으로 포병학교 교도대 정도에 있었고 후방인 2사단 3사단 5사단엔 이것도 없었다. 북한이 ..

군대이야기 2022.10.02

해결되지 않는 내부부조리

군대나 대학교나 직장이나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고 과거보다 좋아 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내부부조리가 남아 있고 속칭 내리갈굼이 존재하는 듯 하다. 경험상 군대도 말단 단위부대 보다 장교와 부사관이 많은 기행부대에서 이상한 집합 부조리가 더 많았던 것 같고 말도 안되는 것 가지고 집합을 걸고 때렸었다. 물론 위의 간부들은 엄한 지침을 내리고 구타근절을 외쳤지만 위의 높은 계급의 장교들도 마흔이 넘어 (당시 어린 나이의 내가 볼 때 많은 나이) 도가 지나칠 만큼 아랫사람을 모독하고 인간으로서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욕설을 퍼붓는 걸 보고 사관학교나 장교후보생과정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나왔길래 저럴까? 싶었다. 물론 욕한마디 안하고 자신이 감수하는 높은 분들이 있어 숨통이 열렸지만 위부터 폭압적인 곳에서 아래의 병..

군대이야기 2022.09.03

군무이탈자 복귀명령 공고를 보고

버스터미널 한 곳에 군무이탈자 다른 말로 탈영한 이들의 복귀명령 공고가 붙어 있다. 복귀대상이 1963.12.1.일 이후 탈영한 이들이면 해당 연령대가 상당히 긴편이고 보통 20살 언저리에 군대를 갔으니 80살 이상의 노인들 중에도 포함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어디에선가 조용히 살다가 고인이 되었을 수 있다. 결국 군대에서 이탈하면 죽을 때까지 추적을 받을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은 살아있겠지만 국민으로서의 모습은 지워진 상태이며 주권행사나 다양한 기본권은 행사할 수 없고 특히 자손이 있다면 더 복잡한 상황이 될 것이다. 자수하면 정상 참작을 한다고 하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가봐야 아는 것이고 복귀명령 공고를 보면 떨리고 두려울 것이다. 6.25 전쟁을 겪고 학도병으로 참여하거나 게릴라 전에 참여한 ..

군대이야기 2022.09.02

1972년 자유의 벗 잡지

1972년 4월 나온 '자유의 벗'으로 이 잡지는 이후 2번이 발행된 후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당시 베트남전이 마무리 되는 단계였으며 이 잡지는 병영뿐 아니라 멀리 베트남 전쟁터에서 가까이는 시골의 4H클럽에도 보내져서 많은 이들에게 각종 시사와 역사문제를 다루고 인물에 대한 소개를 했다. 또한 궁금한 것이 있으면 편지나 엽서로 질문을 하고 이 질문에 답을 해주기도 했는데 여러 정보를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것이 아닌 각종 문서를 찾아 독자에게 알려줬다. 2000년이 되기 전에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잡지엔 이런 공간이 있었고 주소가 있어 편지를 보내 서로 펜팔을 하기도 했다. 자유의 벗 4월호 표지엔 해병과 지역예비군이 함께 바다의 경계초소에서 근무를 서는데 당시엔 북한에서 보내는 무장간첩들의 침투가..

군대이야기 2022.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