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 28

독립문이 상징이었던 공병휘장

육군의 병과중 공병은 사단급 부대에 대대급 부대가 편성되고 군단급 부대에 속한 공병부대는 여단급이나 연대급이다.육군 말고 해군이나 공군 그리고 해병대에도 공병부대는 있으며 해병대의 공병은 육군의 병과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배치된다.보통 공병 1개 중대가 보병여단(과거 연대급)을 지원한다.공병부대는 전 후방에 어디에 있어도 병력편제를 할 때 인원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이는 다양한 공병의 주특기가 있어야 파견도 보내며 다양한 부대 임무를 하게 되는데 보통 3개 중대가 모이거나 4개 중대가 모여 대대가 구성이 되지만 공병대대는 2개 중대가 모일 경우도 있다.국군이 창설될 때 공병 또한 병과를 만들어 창설이 되는데 국방경비대 시절인 1948년 초반 공병부대가 만들어 지며 공병학교에서는 다양한 주특기를 가진 병력..

군대이야기 2025.03.10

별식을 만드는 것

새로온 시설에서 별식을 만든다고 한다.이곳은 대부분의 급식을 이용인의 방에 올려다 먹지만 특정한 날 행사를 하면서 식당에서 만드는데 일반가정식밥은 아니다.그전 시설에 비해 복지사 뿐 아니라 시설관리나 물리치료사등이 도움을 주고 실시되는데 쉽지 않은 과정이다.같이 해보고 즐기는데 의미를 둔다고 본다.위험한 칼이나 불을 통제하며 만드는 과정은 주의를 요하고 만든 것은 같이 먹는다.알류미늄 판에 라면을 깔고 위에 양파와 햄같은 토핑을 뿌리고 토마토 소스와 치즈등을 얹어 고온의 오븐에 구운후 접시에 올려 내서 같이 나누어 먹었다.색다른 맛이었고 이용인들 또한 즐거워 했다.날씨가 따뜻해지면 근처로 나들이도 가고 버스 타고 유원지로 간다고 한다는데 기대도 되지만 여러모로 신경 쓸 부분이 많아 보인다.앞으로 진행될..

나의 이야기 2025.03.09

초기의 포병병과 휘장

대한민국 정부가 다시 수립되기 전까지 육군은 조선국방경비대라고 불리는 조직으로 경찰에 비해 개인화기나 실무경험 그리고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렸고 숫자도 많지 않았다.그리고 경찰에 대한 적대감으로 군에 입대한 이들도 많았고 이북에서 내려온 젊은이들이 호구지책으로 군을 선택하였으며 정부수립 즈음 대한민국 육군이 되면서 병과별 교육이 병과학교에서 실시되는데 당시 포병은 용산과 영등포 일대에서 교육을 하고 체제를 다진다.보통 상비사단의 전투부대엔 보병이 3 포병이 1 기갑 0.1 공병0.3 정도 이고 0.3 통신 0.3 기타 지원병과인 보급수송0.3 그리고 헌병 0.1이하 같은 병력들이 편성되는데 (여기서 1은 연대 규모 0.3은 대대라고 보면 된다.) 우리군의 경우는 미군의 원조에 따라 군이 조직되다 ..

군대이야기 2025.03.08

구형 보병병과 휘장의 희소성

보병은 지상군의 기본이며 주력이고 신병훈련소를 수료할 때 받는 주특기가 보병병과에서 가장 많은 소총수이다.장교가 임관할 때 가장 많은 숫자 또한 보병장교이다.그리고 다른 병과의 교육을 받기전 받는 기본으로 받는 교육도 보병이 되는 훈련이며 이건 육군만이 아니고 공군과 해군도 신병으로 지상 훈련을 받을 때 기본은 소총을 든 소총수가 되어야 한다.기본 그러니까? 우습게 볼 수 있지만 기본이 가장 어려울 수 있다.중요한 건 보병병과의 업무나 훈련 범위는 무척 넓고 영화나 연극으로 치면 주인공이니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역할일 수 있다.그래서 전쟁드라마를 보면 대부분 보병부대의 소총중대나 소대이다.실제로 육군의 절반 이상이 보병부대 특히 소총중대 아래 소대인데 과거 전쟁드라마 전우의 소총 소대장 김소위 역..

군대이야기 2025.03.07

개성인삼의 유명세

개성인삼은 지금도 유명한데 분단이 되었지만 파주일대에서 그 명칭을 사용하며 강화에서도 많이 기른다.오늘날 금산이나 풍기등 다른 지역의 인삼이 유명하긴 하지만 개성에 비하면 덜 하다.일제강점기 지도를 보면 개성의 주변은 대부분 인삼밭으로 되어 있는데 과장이 되었다고 봐도 그 면적은 상당하다. 지금의 장단 비무장 지대와 군사분계선 부근도 인삼의 재배지이다.지금은 간척이 되어 서해안이 단조롭게 변화하였지만 당시 해안선은 복잡하고 인천의 경우 월미도와 시가지는 떨어져 있고 수문식 독크가 있으며 지금은 찾을 수 없는 원도라는 섬이 있다.이 원도라는 섬은 현재 아파트 단지가 들어와 있고 과거 조선시대엔 국가에서 제사를 모시던 장소 였다고 하며 지금도 인천시민들은 행사를 한다고 한다.고양시의 벽제나 강화도엔 ..

역사이야기 2025.03.06

도시의 발달과 일본의 이민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이민을 온 일본인들은 1910년 17만명에서 1930년에는 50만명 그리고 1935년에는 60만명으로 증가하는데 당시 조선의 도시인구의 비율과 숫자는 지금과 비교했을 때 1/20도 안 되었다.서울이 44만명, 부산이 18만, 평양이 18만, 대구 10만 7천명 인천이 8만3천,목포 6만, 원산6만, 개성5만6천, 청진 5만 6천, 진남포 5만, 함흥 5만7천 ,신의주 5만 8천, 광주5만, 군산 4만2천, 나진 3만1천등 주요도시의 인구를 보면 서울을 빼면 지금의 중소도시 인구로 도시규모는 크지 않다.주목할 것은 신의주 옆의 의주는 1만명 정도이며 전통적으로 조선의 지방 중심이었던 공주나 청주 춘천, 진주, 해주의 인구를 보면 오늘날 읍인구 수준이며 이는 산업화와 도시화..

역사이야기 2025.03.05

화성 송산면의 3.1 만세운동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의 한건물 게시판을 보면 3.1만세운동에 대한 사건의 기술과 당시 투옥되었던 지역의 주민들의 사진과 신상이 기록되어 있다.알다시피 철도가 발달한 지역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시작이 되는데 특히 장이 서는 날 모여 시위를 했다. 일본의 군과 경찰에 의해 시위현장에서 다치거나 죽기도 하고 이후 시위에 가담한 이들은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구속이 되며 형무소에 수감이 된다.송산면의 경우 2000여명이 시위에 참가를 했다고 하는데 당시 인구를 봤을 때 적은 인원이 아니며 일본 경찰 노구치는 운동 가담자에게 총을 쏘아 부상을 입히며 이에 격분한 시위대는 인근 남양으로 도망가는 노구치를 죽이게 된다.관련자들은 무거운 형량을 선고 받게 되는데 만세운동은 인근으로 확대..

역사이야기 2025.03.03

찹쌀떡과 망개떡

퇴근길 찹쌀떡 장수의 소리가 들렸다.생목소리로 했다가는 얼마 못가 목이 아플 수 있으니 녹음된 것을 통해 외치고 있었다.지지난해에도 사 먹었던 것 같은데 같은 분인 것 같고 가격도 그대로였다.용인에서도 찹쌀떡 장수를 본적이 있으나 수업중이라 나가서 사먹을 수 없었고 간혹 여름에 수박을 파는 차가 있으면 사먹었다.어릴적 서울에 나들이 갔다가 메밀묵과 찹쌀떡 소리를 동네에서 흉내를 내서 어른들을 웃기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이들은 한번 따라하면 그것이 뭔지도 모르고 하는데 내가 그랬던 것 같다.아무튼 사서 집에 왔으나 다들 꿈나라에 가 있어서 탁자에 덩그러니 놓여 아침이 되어도 그대로 였다.어린시절 이런 것이 집에 있으면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지금 우리집의 아들녀석들은 크게 관심도 욕심도 없는 것 같다.아마 1분..

나의 이야기 202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