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이야기 53

다시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지난달 26일 다시 찾은 문화재와 관련된 우표가 발행되었다. 교과서에서 많이 본 것과 생소한 것이 있다. 특히 경천사지 석탑은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당시 미국인이지만 우리나라의 힘이 되었던 헐버트와 베델의 노력으로 다시 우리나라의 궁궐에 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원숭이 청자'는 수집가 전형필 선생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보관이 되어 있다. 간송 전형필은 일본인들이 반출해 가려는 각종 문화재를 사비로 사들여 보전했는데 당시 이분의 노력으로 남아 있는 유산은 상당하다. 그리고 신라의 기와장(수막새)은 박일훈 선생이 일본인들로 부터 다시 반환을 받았고 명성황후 어보는 미군들에 의해 유출된 것을 조창수여사가 경매에서 사들여 박물관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국보급이냐 보물이냐..

우표이야기 2021.03.06

연하장을 받으며

요즘은 연하장을 주고 받는 경우가 잘 없다.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 받았던 게 15년 전이고 요즘은 잘 하지 않는다. 우체국에서 카드나 현금으로 결제를 할 뿐 우표를 붙여 보내는 경우는 더 보기 어렵다. 연하장의 내용은 주로 연말연시 덕담과 그동안의 고마움과 앞으로 잘 되기를 희망하는 내용들이 많고 일반편지봉투가 아닌 크기가 큰 봉투를 쓴다. 일반편지봉투와 달리 우편번호를 적는 공간의 적정성에 따라 우편요금이 조금 달라 진다고 한다. 380원에서 470원 가량의 요금을 내면 전국의 어디든 사연을 적어 편지나 카드를 보내준다. 물론 등기우편처럼 받는 이에게 직접 또는 확인을 하고 주는 것은 아니지만 우편함에 꽂혀있는 우편물을 그것도 어떤 기관이나 공식적인 곳에서 보낸 것이 아니고 아는 이의 이름이 손글씨로 ..

우표이야기 2021.01.01

우표수집을 통한 대리만족

우표를 수집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실제하는 뭔가를 축소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실제 국보급 유물을 갖지는 못하지만 작게 표현된 사진이나 그림으로 표현된 우표로 단돈 몇십원에서 몇 백원에 가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79년부터 80년까지 우표로 나왔고 삼성그룹이 운영하던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은 국보급 유물을 촬영하여 도록도 만들었고 세상에 알렸다. 당시 우표수집은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대유행이었고 시골의 작은 우체국에서도 우표가 나오는 날이면 줄을 섰는데 특히 대통령 우표가 나오면 새벽부터 자리를 잡았었다. 그러나 시리즈로 나온 한국미술5천년은 끈기를 갖고 접근해야 했고 중도에 포기할 수 있었다. 지역에도 흔했던 우표상들은 대량으로 사서 보관했다 학생들에게 팔았고 우체국에서 우표를 못산 학생들은..

우표이야기 2020.12.27

2020년 마지막 우표

15일 금년의 마지막 우표가 발행되었다. 한달에 평균 1.5회 정도 우표가 나오며 이 우표를 이용한 편지배송이나 우체국택배 배송은 거의 없다. 오직 수집이 목적이며 이 수집도 좋아서 재미로 하는 이들도 있지만 발행량을 보고 적은양이 나오면 사서 그날밤 인터넷에서 파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통신판매로 배달이 되어 오는데 자세히 보면 우표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지문이나 구겨짐) 가 있어 양질의 우표를 모으기 어렵고 배달과정에서 접거나 비에 젖을 경우도 있어 결과물에 실망을 할 수 있다. 차라리 우표를 판매할 때 부터 비닐에 넣어 포장하는것이 어떨까? 싶다. 현장에서 판매하는 직원 또한 숫자를 헤아리고 계산을 하려면 복잡하고 수년동안 결제과정을 보면 각각 따로 입력을 해야 계산이 되는 체제라 쉽지 않다...

우표이야기 2020.12.20

북한에서 개교했던 학교

북한은 기독교의 전파와 정착이 남한에 비해 비교적 빨랐으며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학교가 만들어 진다. 대부분 설립된지 100년이 넘어가며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서도 만들어지며 일본의 압박을 받으며 해방과 6.25 이후 북에서 넘어와 남한에서 다시 만들어져 발전된 경우가 있다. 1. 오산학교: 현재 서울 용산에 있으나 처음엔 신민회원이었던 남강 이승훈 선생이 평북 정주에 만들었고 시설과 교사진이 좋았다고 한다. 이 학교 출신으로 김소월, 이중섭, 백 석 그리고 백병원 설립자 백인제 박사가 있으며 광복군과 중국군 장성 그리고 국군의 중장으로 퇴역한 김홍일 기병대대장에었던 장철부(김병원)중령이 있다. 2. 숭실학교 : 평양에 있던 학교로 대학부까지 있었고 현재는 서울 상도동에 대학이 있고 대전의 한남대학교도 연..

우표이야기 2020.12.16

일본이 개항시킨 도시들

곡식은 밥을 만들기도 하지만 술을 만들기도 한다. 동네마다 양조장이 있었고 지금은 교통이 발달하면서 지역의 양조장도 유통망을 넓혀 공급을 한다. 곡식 특히 쌀은 우리나라의 주식으로 남쪽의 평야지대에서 많이 나고 일본은 부산이나 인천 원산말고 새로운 곳을 개항하는데 바로 마산과 군산 그리고 목포 북한의 남포등이 있는데 대부분 가까운 곳에 평야가 있고 도시가 있거나 지방거점이 있었다. 마산의 경우 낙동강 하류주변의 대산평야가 있고 김해평야와 연결이 되어 있고 군산의 경우 원래 섬지역인 고군산 지역이 유명했으나 옥구의 금강하구에 항구가 만들어 지고 전주나 익산이 멀지 않았으며 김제옥구만경의 드넓은 호남평야가 있고 목포의 경우 영산강하구와 함께 나주의 하항으로 호남평야에 버금가는 나주평야가 있다. 그리고 북한의..

우표이야기 2020.11.06

10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

우표는 100주년 50주년 이렇게 기간을 놓고 기념을 하는 날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 기념이라는 건 좋은 것만 하는 것은 아니며 순국이나 시작을 알리는 의미도 있다. 작년엔 3.1운동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린 우표가 나왔고 올해는 3.1운동 이후 만주땅에서 우리 독립군(대한독립군) 이 일본군과 격전을 치뤄 승리한 봉오동전투와 여기에 대해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일본군은 부대를 대규모로 편성(사단급이상)하여 국경을 넘어 들어갔다 산과 계곡에서 준비하고 기다린 독립군 연합부대(북로군정서:총재 서 일 시작으로)가 그 일본군을 크게 이긴 청산리 대첩을 기념하는 우표가 나왔다. 그리고 3.1운동이 발생했을 때 천안일대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류관순열사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날을 알리는 우표도 나왔다..

우표이야기 2020.10.28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우표

지난주 금요일엔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다. 봉오동 전투는 영화로 나오기도 했으며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을 기리는 우표도 발행이 된적이 있다. 교과서에 무장독립투쟁의 대표적 전투로 잘 나오는 것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인데 두 사건은 연결된 과정으로 봉오동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이 만주땅의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대규모 정규군을 투입했다 계곡에 갇혀 공격을 받고 혼란이 생기고 크게 패배한 전투가 '청산리 대첩'이다. 어느 한 조직만 독립전쟁을 했던 것이 아니고 다양한 신분과 계층으로 조직된 조직이 있었으며 특정 종교를 믿는 신자들이 모이기도 했고 홍범도의 경우는 사냥군출신이었다. 다양한 신분 다양한 계층의 조직들은 추구했던 세계관이 달랐으나 연합하고 뭉쳤었다...

우표이야기 2020.06.13

2020년 새로 나온 우표

올해도 어김없이 기념우표가 발행되기 시작했다. 큰 우체국에 가야 살 수 있기에 대부분은 통신판매를 이용해 받아본다. 나는 통신판매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때 그때 상황을 보고 기호에 따라 구입을 한다.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한번 공지가 되거나 발행량이 적을거란 소문이 돌고 분위기가 뜨면 사재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격이 뜨고 정작 구하고자 하는 이들은 못구하고 우표상에 웃돈을 주고 사기도 하는데 요즘엔 그런 경우는 잘없다. 우표를 되팔아 돈벌이를 하고 싶다면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좋다. 이유는 70년대 부터 오른 물가에 비해 우표는 당시 20원짜리가 비싸봐야 100원에서 150원 그냥 돈을 모으거나 맛있는 거 사먹는것이 정신건강 몸건강에 좋다. 그냥 재미로 모으면 되고 구입할 때 마다 안내장을 챙겨 안내장..

우표이야기 2020.04.07

UN군 초전기념 및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 엽서

어제는 동란당시 유엔군의 일부인 미군이 오산죽미령에서 북한 인민군과 일전을 벌이고 패퇴한 날이다. 이 전투를 기념하고 희생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우편엽서가 5일 날짜로 발행되었다. 이렇게 동란시기 전투와 희생자를 기리는 엽서가 발행되는 경우는 특이한 경우이다. 당시 미군의 주특기인 항공지원이나 대규모화력 지원 없이 보병과 포병을 조합한 스미스부대를 특수임무부대라고 하여 투입한다. 지상화력으로 당시 4.2" 박격포와 경곡사포인 105mm를 쐈으나 전차를 앞세우고 빠르게 달려오는 전력앞에 미군은 무너졌다. 이 사건 이후 경부라인에서 미군은 대책을 세워 병력을 투입하고 고급장교들이 당시 신무기인 슈퍼바주카포로 전차사냥을 나섰지만 훈련된 인민군을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금강방어선도 무너지고 대전에서 떨어진 딘소..

우표이야기 2018.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