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야기 88

시험에만 필요한 공부라면 하지 말자!

시험에만 필요한 공부라면 역사공부나 사회공부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모 방송 뉴스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역사 인식에서 상식수준의 인물도 모르고 중요한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충 이런 것이다.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진 이가 안중근이고 5.16쿠테타가 전두환으로 알고 있는 청소년이 절반 가량이라고 한다. 과연 이런 것이 역사지식 수준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지금까지의 역사교육이나 사회교육이 이렇게 된 데에는 산지식이 아닌 죽은 지식에 매달리고 점수와 시험에만 열중한 결과라 본다. 나의 경험이 제한적일 수도 있으나 연세가 드신 분들 중에도 이러한 경우가 많은데 역사드라마를 좋아한다고 역사를 잘 아는 건 아니라고 본다. 단 접근하기는 쉬울 것이다. 나또한 반백년 밖에 못산 주제에..

교육이야기 2017.05.02

스포츠와 교육

초등학교 때인가 당시엔 면단위 초등학교까지 축구부가 있었다.다른지역은 어떤지 모르나 초등학교 축구부는 유니폼도 있었고 중학교도 면단위까지 축구부가 있었었고 군소재지에서 수시로 시합을 했었다. 그러다 내가 5~6학년 때 사라졌고 육상부만 존재를 했는데 이 마져도 시들했었다. 아무튼 그후 양적인 운동부 보다 소수의 특기생으로 수업은 4교시만 하고 개인 종목은 체육관으로 가서 개인연습을 하거나 단체경기도 실내체육관이 있는 곳에 가서 연습을 했으며 주로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야 진학도 하고 땀의 보상이 있었다. 새벽부터 연습하고 학교에서 4시간 수업을 하고 오후 저녁 밤까지 열심히 했는데 체급이 있는 경기야 키가 작거나 체격이 작아도 할 수 있었지만 상당수는 학교에서 누가봐도 튼튼하고 ..

교육이야기 2017.04.18

교육과 사회

과거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농업에 종사했다. 45년 해방 전 후 기초자치단체(시군구)에 공립 중고교가 생겨났다. 그러나 전쟁은 여러 학교 학생들의 학습기회를 상당부분 앗아갔다. 당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청소년은 지금에 비하면 선택받은 식자층이었고 전쟁 이후 20세가 넘어 복학한 분들도 있지만 학업을 중단한 경우도 많았다. 아예 초등학교 입학도 못한 청년들도 많았으며 문맹자들도 많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사단급 부대에 대략 문맹자는 2500여명 정도 였다. 60년대에도 줄긴 했지만 문맹자가 있었고 편지를 손수 쓸 수 없어 대필을 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군대 내부에서도 교육훈련과는 별도로 공민학교를 세워 문맹퇴치와 기본셈 교육을 시켰으며 당시 이 혜택은 공민학교 주변 민간인들에게도 기회가 있었다고 한..

교육이야기 2017.04.15

교과서의 변화

지금은 교과서를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의무교육이기에 무상으로 지급한다. 고등학교는 사는 것으로 안다. 초등학교 ( 당시 국민학교) 저학년 당시에는 교과서를 지급받았다가 다시 일부는 반납을 했고 졸업식 노래처럼 물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낙서나 필기 하나 없이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책 뒷면에는 '후배에게 물려 줄 책이니 깨끗하게 사용하자는 스템프가 찍혀 있었다.' 교과서는 잃어버릴 경우 구하기도 어려웠고 간혹 서울의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하여 보기도 했는데 나의 경우 초등학교 6학년 시절 학년이 바뀔 시기 전학을 갔는데 학교간의 협조가 잘되지 않아 그 시절 청계천에서 헌책을 구해서 봤었다. 문제는 개정이 자주되었던 도덕책의 경우 헌책은 의미가 없어 곤란을 겪었다. 그러다 중학교 때는 시골중학교에서 ..

교육이야기 2017.04.14

대학에서 총학생회란?

대학의 학생회 중 총학생회의 역할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만여명의 대표이고 사립학교가 대부분인 우리나라 대학의 특성상 등록금 문제나 학생의 권익에 있어 총학이 하는 일은 한 두가지가 아님에도 언제 부터인가 자신의 진로와 이익을 위해 총학생회에서 활동하는 학생들도 줄어 들고 몇몇 학교엔 학생들의 정족수 부족으로 총학생회가 존재하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한다. 물론 정치투쟁 일변도로 학생들과 유리된 측면도 있었으나 넓게 보면 정치와 관련없는 사안은 없으며 재단의 전횡을 견제하고 과거 등록금 인상과 관계된 것을 제어하기도 했던 시절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 업자나 재단측에게 금품을 받거나 일부 정당의 당직자로 취업을 보장받는 뒷거래도 있었고 학생들의 불만을 덮기위한 어용총학도 존재했었다. 대학의 존재 이유가..

교육이야기 2017.04.13

공교육의 혜택?

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누구나 나왔을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이들도 있고 아예 학적부 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두드리면 대부분 나오겠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럴 경우 초등학교 졸업하기 위해 검정고시로 약간의 이해력과 숫자 계산 정도 하면 통과 할 수 있지만 절차를 밟아가며 하기에 그 과정은 만만치 않다. 이유는 성인이 되어 고향을 떠나면 자신이 나온 학교와 거리가 먼 곳에 살고 있으며 시골의 경우 폐교된 곳도 있고 졸업을 하지 못한 학교를 찾아가 제적증명서를 요구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결국 거주지나 인근의 학교 행정실에 가서 또는 동사무소에 가서 팩스민원으로 발급을 받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학력이란 공개적으로..

교육이야기 2017.04.12

낙도에 다시 학교가...

3월 초순 충남 보령 앞바다 '녹도'라는 섬에서 분교가 다시 문을 열어 초등학생 1명을 입학시켰다고 한다. 과거 어느 드라마에서인가 전북 군산을 무대로 하는 역사물이 있었다. 허구와 진실을 섞어서 만든 것인 데 당시 녹도라는 섬이 등장한다. 당시 군산은 개항장으로 일본인들이 거류지를 이루고 살았는데 정미년(1907) 군대해산이 이루워지고 서울에 있던 시위대와 각 지방 요충지에 있던 진위대는 일본의 조치를 거부하고 일본군과 전투를 하고 일본인 거류지를 위협하여 공포에 떨게 한다. 당시 충남 홍주(지금의 홍성으로 다시 복원되어야 하는 명칭)의 진위대 소속으로 해산을 거부한 대한제국 진위대 병력들은 보령 앞바다의 녹도에 들어가 훗날을 도모하는데 특히 군산의 일본인들과 군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일본은 작..

교육이야기 2017.04.12

공부를 못하면 기술이나 배우지?

간혹 수학과 과학이 전혀 안되는 학생들이 기술이나 배운다며 특성화 고등학교를 간다고 한다. 근대식 학교가 생긴 이유는 직장인 즉 산업화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출퇴근이 일반화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본다. 그러나 대학을 가서도 자신이 뭘 잘하고 흥미가 있는지 모르고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진학을 했다. 진로에 대한 상담은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되고 실제 학교의 교사들은 학교만 다닌 분들이라 진로지도에 대한 조언에 있어 막연할 수 밖에 없고 상급학교 진학지도 밖에 할 수 없었다. 설령 선배나 해당 업무의 전문가가 왔을 경우에도 좋은 이야기만 하지 그 직업의 부정적 측면은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얼마전 특성화고 학생이 인턴근무를 하다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기술자를 양성하기 보다는 실무에 쓸 저..

교육이야기 2017.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