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이야기 172

동물원 2집

동물원은 프로음악인들이 되기 보다는 동호인에 가까운 음악모임에서 시작을 했으나 '김창완'에 의해 음반이 발표되고 알려진 밴드로 요즘으로 본다면 직장인 밴드의 형태였다. 그러나 이들의 열정과 감성은 직업으로 활동하는 음악인들 못지 않았고 유명해졌다. 특히 노래와 함께 각자 다루는 악기들이 있었고 공연을 할 때 외부에서 연주자를 모셔오지 않아도 되었기에 더 융통성이 있었고 획일적이지 않았으며 가수도 여럿이라 색깔도 조금씩 달랐다. 2집에서는 더 강해진 연주도 있고 여럿이 함께 부른 곡들 또 있었다. 80년대 그 이전도 그렇지만 실제 공연장을 가면 연주와 가수의 노래가 음향설비의 부조화로 잘 들리지 않고 현장의 음악이 음반과 차이가 많이 나서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 조차도 실제 공연을 보는 건 쉽지 ..

음반이야기 2021.04.25

동물원 1집

동물원은 80년대 후반 결성되어 음반을 발표한 밴드로 강력한 전자기타나 드럼을 앞세우고 고음의 가수가 혼자 노래를 하던 형식과는 달랐고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가 섞여 강력한 소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이는 음반의 소리 뿐 아니라 실제 공연에서도 장점으로 발휘되어 대단한 음향장치가 없어도 혹시나 구성원 중 한 두명이 빠져도 공연이 가능했고 팬들은 불만 또한 잠재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했으며 그 느낌 또한 달랐으며 이중에는 프로를 지향한 이도 있었지만 학업과 생업을 병행하며 계속 음악을 하면서 지금도 존재를 하는 장수 밴드이다. 강한 것이 오래가는 것이 아닌 오래 남아 활동하는 것이 강하다는? 말도 있지만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자신들의 잘 표현한 이들은 세월이 지나도 빛나고 있다...

음반이야기 2021.04.24

김광석을 보다!

가수의 노래가 사랑을 받고 유명해지고 오래 활동을 하며 그리고 방송에만 서는 것이 아닌 여러번 그것도 1000회를 했다는 건 대단함의 표현이다. 그리고 여러 음반을 발표했고 그 음반들은 관심을 받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중가요의 명반의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일찍 생을 마쳤고 현재 그의 노래와 연주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어 더 간절하고 아쉽다. 작은 키에 적고 간결한 목소리였지만 기타와 하모니커 그리고 연주자 한명만 동반을 하고 작거나 크거나 무대에서 엄청난 열정을 토해냈던 김광석은 화려함만을 쫓던 가수가 아닌 진정한 소리꾼으로 노래를 했었다. 있을 땐 영원할 줄 알았고 공연을 자주 하니 못 본 이들도 언젠가는 보겠지 하는 기대를 했지만 그날은 너무 일찍 멈춰졌다. 2016년 ' 김광석을 다시 보다 ' 전..

음반이야기 2021.04.04

66년 초등학교 음악음반

66년도 50년이 넘은 레코드판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것이다. 사진에 나오는 강아지와 병아리를 보면 어린이 그림책을 그대로 가져다 만든 것 같고 당시에도 두꺼운 재질의 그림책은 있었고 구하여 보려고 하면 구할 수 있었다. 레코드 자켓 안에는 3장의 판이 있고 대략 40여곡의 노래가 있으니 적지 않다. 동요라고 부르는 것 부터 연주곡 그리고 민요까지 다양한데 동요같은 경우는 음을 따라 할 수 있게 했고 어른의 소리와 어린이의 소리를 녹음하여 친근감을 형성하게 하였다. 당시엔 중학교 입시가 있을 때라 (58년 개띠들을 기준으로 한다고 했고) 초등학교에서도 상급생들을 남겨 입시공부를 했다고 들었고 그 중압감이 심하여 추첨제로 바꾸고 고등학교는 대도시 부터 연합고사(일정한 점수에 도달하여 합격한 학생들..

음반이야기 2021.04.02

사랑과 평화 1집

우리나라의 밴드중 현장에서 가장 연주를 짜임새 있게 했던 그룹이 ' 사랑과 평화' 였을 것이다. 기타, 노래에 최이철, 건반, 노래에 김명곤, 이근수, 드럼에 김태흥 베이스에 사르보(Sarvo): 외국인인 듯, 베이스의 ' 고 이남이'와 현재 사랑과 평화를 이끌고 있는 '이철호'가 기록되지 않았다. 당시 대마초를 피운 것 때문에 연예계가 시끄러웠고 사랑과 평화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활동을 중단했고 음반을 내놨지만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그리고 노래를 만들었던 이장희의 이름 대신 '이경애' ' 김이환' 이름이 있다. 훗날 김태화가 부른 '안 녕' 에도 '이경애' 김이환' 이란 이름이 있다. 사랑과 평화의 음반 자켓에는 당시 작업할 때 쓴 악기의 이름들이 적혀 있는데 훗날 부활도 2집 음반을 낼 때..

음반이야기 2021.03.28

박선주의 LP

우리나라의 연예계를 이끄는 인맥은 여러 학교가 있겠지만 가장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학교는 서울예대 과거에는 서울예전으로 또는 드라마센터라고 불렸다. 극작가 동랑 유치진이 만들었으며 서울 한복판 남산자락에 작은 듯 하지만 우리나라 대중예술인을 탄생시킨 공간이며 이들의 영향력은 실로 지대하다. 20년이 넘게 안산에 자리잡은 학부가 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남산 예장동의 '서울예전'을 강하게 기억하며 지금도 일부 시설이 있고 행사나 활동은 남산에서 한다. 공연예술 쪽에서는 자타공인 서울예대의 학생들 중에서 유명했던 이가 바로 '박선주'이고 강변가요제에서 상을 받았지만 사실 가요제라는 행사가 너무 프로다운 학생들을 뽑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부활이나 '고 신해철'도 가요제 나와 탈락을 했었으며 수많은 가수와 연..

음반이야기 2021.03.26

다섯손가락 자료협찬으로 방송에 나오다.

30여년 전 모아 두었던 자료를 방송국에서 빌려 갔다. 보기에 따라선 별게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겐 의미 있는 것 들이었다. 보통 연극공연 같은 경우 입장료를 내고 추가로 공연안내가 담긴 팜플렛을 구매하는게 공연을 하는 이들에 대한 예의였다. 그러나 가수들의 공연엔 그런걸 보기 어려웠다. 물론 현장에서 음반을 팔거나 팬클럽 회원을 모집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음반은 보통 가지고 있어 사지 않았고 팬클럽은 내성적이다 보니 가입을 주저했었다. 간혹 메탈밴드의 경우는 팬클럽의 경우 성인남자들이 이끌고 가는 경우가 있었으나 가입하고 가수의 행보를 확인하는게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연락을 하고 주고 받는 관계는 아니었다. 아무튼 좋아 하는 가수나 밴드가 있다면 그들의 작품들이 힛트를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푼돈을 모아 ..

음반이야기 2021.03.18

다섯손가락 4집 음반

84년 음반을 낸 다섯손가락은 85년 서울음반에서 본격적인 음반을 만들었지만 연주를 하던 베이스의 하광훈 그리고 최태완 드럼의 박강영이 탈퇴를 하면서 보컬이었던 임형순과 기타의 이두헌은 최준성(서강대 생물과)이라는 실력있는 연주자를 베이스 멤버로 받아들이고 키보드에 클래식을 전공한 강태원(추계예대 ) 그리고 이두헌이 다니던 동국대에서 박철하라는 학생을 영입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이상희라는 광운공대생이 드럼을 담당하지만 최준성이 입대를 하면서 팀은 위기에 빠진다. 이때 동국대 응원동아리에 소속된 백상( 흰코끼리)에서 후배인 박문일을 베이스 주자로 영입 활동을 이어간다. 당시 2집 음반이 나오며 여기의 머릿곡인 '사랑할 순 없는지' 가 알려지고 '풍선'은 힛트를 하며 86년도 다섯손가락은 방송에 얼굴을 알리며..

음반이야기 2021.03.15

백 두 더 뮤직 ...전주 KBS

우리나라의 공중파 방송은 서울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며 이 프로를 지역에서 시간차를 두고 방송하는 경우가 있었다. 뉴스를 빼고 만화영화나 드라마 같은 경우 70년대엔 1주일 정도의 시간을 두고 방영되었었다. 그러나 지역마다 다른 동요경연대회도 있었고 자체 프로도 있었으며 라디오 프로 같은 경우는 규모가 작지만 여러 가수를 초대해 생음악공연도 보여주고 지역에서 방송도 했었다. 서울 방송국의 큰 공개홀에서 긴시간 카메라 촬영을 하는 것 보다 라디오의 경우는 얼굴을 알리지 않아도 좋고 소극장 콘서트 같으니 공연을 하기 용이했을 것이다. 음악 공연을 하기엔 부적절한 곳이다 보니 연주자가 꽉찬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고 반주테입에 맞춰 노래를 하고 밴드를 했던 팀은 어쿠스틱(기타와 간단한 타악기 정도) 연주..

음반이야기 2021.03.12

나 미의 음반

가수 나 미는 어릴적 부터 가수를 했다. 태어난 곳이 양주군(지금은 남양주와 양주로 나뉘지만)... 미군 기지가 있는 곳에서 어른들이 레코드 가게를 했고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일찍 음악을 하면서 외국에 나가서 활동을 했고 '나 미'와 머스마들이란 밴드의 홍일점으로 이름을 날리고 훗날 '빙글빙글' 같은 노래도 힛트하고 '슬픈인연'이라는 노래는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았다. '영원한 친구' 도 있고 '인디언 인형처럼'도 유명했었다. 우리나라에서 미군의 주둔은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으며 서울 뿐 아니라 지상군이 주둔한 동두천이나 의정부 공군기지가 있는 송탄이나 군산은 또 달랐다. 그리고 지원부대가 있는 왜관이나 부산 또 달랐던 것 같다. 특히 미군들이 볼때 전방인 동두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 중에서 류현상이..

음반이야기 2021.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