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현재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성인들이 찾는 분야지만 과거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만 보는 그것도 제한을 해서 만화대본소에서 보는 경우가 많았고 만화책을 서점에서 사서 집에서 두고 보는 경우는 80년대가 지나서 라고 본다.
그리고 성인만화하면 저질스럽고 성적인 것만 생각하는 것도 있었으며 비공개된 조심스런 부분이었다.
개개인이 만화책을 사서 봤다면 베스트 셀러도 있었을 것이고 만화를 그리고 만든 작가들의 인식은 일찍부터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급적이고 현학적인 위의 높은 분? 아니면 학계의 똑똑한 분들? 때문인지 만화에 대한 인식은 낮았고 늦게 유명해졌으나 이때는 많은 자료가 사라졌고 당시 자료는 귀한 몸이 되었다.
이건 유명하고 안 유명하고를 떠나 만화책 자체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는 진짜 어렵게 만든 만화영화 필름의 원본은 더 찾기가 어려웠다.
이웃 일본도 만화에 대한 인식은 다르지 않았지만 작가들의 스펙이 알려지면서 잘난 정계나 학계도 만화를 함부로 못했다.
우린 많은 것이 사라져 버린 이후 조금 인정을 받았지만 안타까운 건 50~60년대 또는 70년대 전설처럼 들렸던 주옥같은 작품들을 시중에서 찾아보기 여렵다는 것이고 이를 아깝게 여긴 분들이 자료를 찾아 다시 복간을 했다.
그 중 박기정 화백의 도전자 부터 허영만의 각시탈까지 책으로 만들어 졌고 '풍운아 홍길동'도 있었다.
여러 만화가가 있었으나 홍길동을 그린 '고 신동우 화백'은 다른 작가들 보다 언론과 TV에 자주 얼굴을 보였었고 직접 그림을 그려 보여줬고 특히 관공서의 공보물에는 다른 작가의 그림보다 더 많이 있었고 역사 만화도 있어 주요출판사에서 격식을 갖춰 만들었었다.
또한 진주햄쏘세지 광고는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일찍 고인이 되셔서 지금은 작품으로 신동우 선생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홍길동'은 원작을 각색했고 내용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으나 출판된 당시 분위기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고 탐관오리와 싸우는 홍길동과 그의 스승의 말에 만화의 주제가 드러나고 다른 내용도 눈에 들어 오지만 홍길동과 함께 동고동락을 하는 '차돌바위'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돈많고 높은 사람이 되어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살며 하인이 세수도 시켜주고 발도 닦아주고 어쩌면 누군가는 꿈꾸는 삶일 수 있는데 '고봉밥에 오이소박이를 매일 먹는다!'는 그림을 보면서 어쩌면 참 소박한 것인데 전쟁이 끝난 당시 사회는 어렵고 힘들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린 차돌바위가 이런 꿈을 꾸는 걸 일깨워 모와둔 금은보화를 농민에게 돌려주면서 홍길동은 마무리가 되는데 ...
욕심에 대한 것과 권력에 대한 부분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오이 소박이와 고봉밥' 어쩌면 소박해 보이는 것도 어려운 시절엔 이루기 어려운 소원이고 아직도 우리 사회는 대단하고 높은 걸 꿈꾸는 이들도 있지만 차돌바위 처럼 소박한 꿈을 이루기 더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 생각해 본다.
고기 반찬에 좋은 술이 아닌 ' 오이소박이와 고봉밥'에 완전한 만족을 못하겠지만 여기에서 행복하다면 그 또한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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