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이상설 선생의 생가에 가다.

lkjfdc 2017. 4. 14. 21:30

 

 

 

 

 

진천에서 증평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편의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이상설 선생의 생가가 있다.

 

생가는 보편적인 초가집으로 남향으로 양지 바른 곳에 있다.

 

가끔 근처를 지나치기만 했지 직접 들리지 못함은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있고 솔직히 무관심 그 자체 였다.

 

난 이분을 알게 된 것이 이회영이란 인물을 알게 되면서 였고 공직자이며 교육자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 외교관으로 이만한 분이 있었을까 ?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면 그걸 내놓는 다는 건 참으로 어렵다. 그리고 의리를 지킨 다는 건 더 어렵다. 세상은 인맥 학맥 지연과 함께 종교와도 관련이 되어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다.

 

다 연결되어 있어 내가 기존의 길이나 흐름과 다른 길을 가거나 선택했을 때 가해지는 불이익과 따돌림 때문에 쉽게 다른 길을 가지 못하며 더 중요한 건 다수가 있는 곳에 있어야 시류에 영합해야 마음이 든든하다.

 

나라를 빼았길 때 이땅엔 저항하고 끝까지 싸운 분들도 있었지만 기득권의 상당수는 그것을 놓치 않았고 그들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사회 기득권 층이며 이러한 사실이 있음에도 뻔뻔하며 사실이 드러나면 변명하다가 나중에는 '그럴 수 있지! ' '세상 다 그런 것 아닌가?' 할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기득권 층이고 고위공직자였다면 어떠했을까?

 

그럴 경우는 없겠지만 그렇게 되었을 때 난 과연 이상설 선생처럼 박차고 일어나 선공후사를 했을까? 아마 흉내도 못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 대로 알아야 하고 나라를 빼앗길 끝까지 싸운 선생의 발자취는 알려야 하며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나의 작은 뜻이다.

 

 

선생은 구한말 과거에 급제 정부의 고위관리로 고종황제 곁에 있었다.

 

친구 이회영은 선생을 알아보고 신학문을 공부했고 교회도 다녔는데 당시 이 분들이 모인 공간이 상동교회로 주로 양반들 보다는 서울의 서민들이 모인 곳으로 '전덕기'목사가 있던 곳으로 (종교적인 입장에서 정치와 민족운동을 부각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엔 그렇지만) 이곳에서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도 만들어지고 당시 만주에 나가 준비를 시작한다.

 

이상설은 미리 만주에 가서 독립운동을 위한 교육기반을 다지고 국내의 이회영과 연락을 취하고 고종에게 받은 밀지를 가지고 이준이라는 국제법 전문가와 이위종이라는 외교전문가이며 외국어 능통자를 대동하여 헤이그 특사의 정사로 가서 우리의 억울한 상황을 만방에 알리고 싶어 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무산되지만 끝까지 세계의 언론과 국제사회에 알린다.

 

그후 일본은 세명의 특사를 궐석재판(피고가 자리에 없는 재판)으로 판결하여 이들에게 형을 선고하게 되고 헤이그 특사를 보낸 고종은 쫒겨난다.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상설은 만주와 연해주를 오가며 각종교육사업과 한인동포들의 규합, 독립운동 조직을 만들고 주도하다 이국 땅에서 일찍 운명한다.

 

선생의 행적은 시류와 정권에 따라 영합하는 현대의 공직자와 교육계 인사들이 본 받아야 하는 표상이라 보며 후세에도 계속 알려야할 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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