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아산향교와 김옥균 유허지

lkjfdc 2017. 4. 25. 12:32

 

 

 

 

 

작년 겨울이었다.

 

아산에 일이 있어 가는 길 아산 영인면의 아산리에 있는 아산향교와 김옥균의 묘소에 들렸다.

 

성격상 급한일이 아니면 국도를 이용하는 편이며 시내버스를 탈 때도 번호 이런거 안보고 행선지만 보고 가며 네비게이션 장착하지 않고 느낌으로 간다.

 

문제는 근처에 다가서 목적지를 못찾아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도 하고 빠른 길 나두고 시골길 고갯길 4차선이 나면서 안다니는 길로 가니 처음엔 이해를 못했다.

 

더군다나 밥 때가 되던 말던 상관 없이 휴게소도 들리지 않아 원성이 잦았었지만 그냥 주관대로 달렸다.

 

아무튼 안산에서 발안 그리고 평택과 아산 사이의 방조제를 여러번 달리며 요소 요소 숨겨진 곳을 발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꼭 비싼 입장료나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며 가지도 않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개도 잘 안한다. 내가 좋다고 남들이 좋은 것도 아니고 취미가 다 다르다 보니 함께 가기 보다는 혼자 간다.

 

지금은 아이들이 따라 나서지만 고등학생 아니 중학생만 되도 같이 다니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적에 고향을 가실 때나 서울 근처의 시내를 갈 때도 그 지역을 설명해 주셨는데 난 재미있어 했었지만 지금 아이들은 그냥 지나치는 과정이다.

 

영인면은 아산의 북쪽으로 경기도 바로 밑으로 아산의 상징인 '어금니 바위'가 있다. 그리고 아산만이 바로 위에 있다. 현재 아산의 중심은 온양이 중심이며 지명에서 풍기듯 온천이 유명하다. 그리고 인근엔 유명한 현충사도 있다.

 

 

아산 영인면 아산리는 작은 소읍이긴 하지만 아산리라는 지명에서 풍기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은데 시군에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가 위치하며 예전부터 '아산향교'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산엔 학교가 많은데 과거엔 아산현말고도 여러현이 있어서 그러했고 지금은 수도권의 영향과 인근 천안의 지가 상승으로 대학이 여럿있고 전철도 들어온다.

 

 

이 아산향교는 토정 이지함이 자리를 잡아줬다고 하는데(아산의 현감이었다고 함) 일반적으로 고을 위치가 남향인 것과는 달리 옛 아산현 관아는 북향인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이 마을의 고개 근처에는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김옥균의 묘소가 있다.

 

공주 사람인 김옥균은 안동 김씨이며 급진개화파였으며 당시 개화선각자들에게 영향을 받고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본딴 입헌군주제에 입각한 정치체제를 추구하고 기존의 질서와 함께 썩어버린 정치체제를 바꾸려고 했으나 시대적인 분위기가 그의 편이 아니었고 일본에 의존했던 방략이 실패하였다.

 

'3일 천하'라는 짧은 기간 권력을 잡았지만 청나라의 간섭으로 일본으로 도피하여 망명을 하였으나 외교적 마찰로 유배도 갔었고 청나라로 갔다가 온건개화파였던 '홍종우'에게 살해된 것이 역사로 알려져 있고 그의 시신은 능지처참 (당시 김옥균 뿐이 아니고 초기에 도망을 못간 사람들은 역모를 일으켰기에 극형에 처해졌다.)하여 전국 방방곡곡에 내놓고 국민에게 경고를 하고 일부는 훗날 일본의 아오야마에 매장되어 있는 것을 영인면 아산리에 이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시대를 거스른 혁명가의 말로는 비참했으나 당시 국제정세를 파악못하고 갈팡질팡한 조선의 신세는 더 비참했고 그 결과는 국가가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다면 우리는 또다른 격랑에 힙쓸려 큰 댓가를 치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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