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수원향교를 지나며

lkjfdc 2017. 4. 14. 21:24

 

삼국시대 그리고 고려 조선시대 갑오개혁이 있을 때 까지 공교육의 중심엔 유학이 있었다.

 

고구려엔 태학이 신라엔 국학 고려엔 국자감 그리고 조선은 성균관등은 서울의 고등교육기관이었다.

 

그 중 향교는 지방의 중등교육을 담당했고 지금으로 보면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1곳씩 향교가 있었으며 그 동네가 과거 어느 정도 규모였나를 보려면 향교의 유무를 따져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동네의 지명 중 '교동'이나 '향교말'같은 곳에는 향교가 위치하며 지리학적으로 봐도 터가 좋다.

 

또한 현재 지자체에서는 보전관리하느라 노력을 한다.

 

사립학교의 역할은 서원이 담당을 했고 조선 후기엔 향교가 없던 시골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왜 유학을 강조하느냐를 살피면 관리 또는 관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선비가 가야할 도를 알려주는 학문이 유학인데 그만큼 왕도정치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몸에 익혀야 민본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유학은 자신의 입신양명의 도구와 패거리를 만드는 데 쓰여져 조선을 망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분명 그 가르침엔 자신만을 위하고 남을 억압하라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요즘 등장하는 비리사건과 국정농단 사건을 보면 그만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철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되며 학문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왜 그런가 하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사실적 지식을 알고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철학은 공직자나 정치인 그리고 지도자가 꼭 갖추고 있어야 하는 요소라 생각한다.

 

조선시대 까지 왜 공교육에서 유학이라는 가치를 강조했는가는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

 

 

교사인 아버지를 둔 성적우수생 우병우는 '정의 실현'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며 서울대 법대를 입학 만 20살의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을 한다.

 

일찍부터 검사를 하면서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는 건 좋았는데 그 방향엔 올바른 철학이 없었던 건 같다.

 

아무리 서열을 강조하는 검사들이지만 자신보다 늦게 임용된 학교 선배에게 반말을 하고 자신이 권력을 갖게 되자 자신이 검찰시절 숨겨왔던 불만과 분노를 펼쳐 표현한 그는 엄청난 양의 사실적 지식과 영민한 판단력, 상대를 압박하는 능력등에서 일반인을 뛰어넘은 난 사람이었는지 모르나 일그러진 철학을 갖고 있던 사람으로 한 두사람을 망가트린 것이 아닌 나라전체를 망가트리는데 그의 능력?을 발휘했다.

 

군대도 못갈만큼인지 안갈만큼인지 눈이 나빠서 병역을 면제받았고 남들보다 일찍 출세하고 결혼하여 한 행동들이 이 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충격 그 자체이다.

 

 

왕조시대에도 청요직이라하여 사헌부나 사간원 또는 홍문관이라는 조직이 있어 왕을 견제 했는데 요즘 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도 견제할 사람들이 없었고 오히려 한술 더 뜨는 비선실세가 있다.

 

 

유학이라는 학문이 시대착오적인 점이 있기도 하지만 왜 옛조상들이 그토록 철학을 강조했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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