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1920년의 정치사범 대폭 증가

lkjfdc 2022. 6. 2. 15:53






1920년 동아일보를 보면 1911년과 비교하여 사건 사고를 분석하였는데 시위나 보안법 위반이 물경250배 증가했다고 한다.

그에 반해 강도사건은 1182건에서 400건으로 줄고 횡령은 339에서 1501건으로 증가, 살인은 263건에서 205건 간통과 중혼은 702건에서 555건이라 한다. 삼림령 위반이 8배 증가했다고 한다.

독립당의 손으로 살상도 다수라고 한다.

일본은 1910년 부터 1919년까지 헌병경찰제도를 통해 무단통치를 했으며 군인출신이 총독으로 임명되어있었다.

물론 뒤에 문화통치로 전환을 한다고 하지만 더 교묘해지고 독립운동 조직안에는 밀정들이 증가하는데 중국 땅에서 활동하는 조직안에도 쓰며든다.

1919 3.1운동(독립운동) 이후 소요와 시위가 증가 하여 경찰들의 업무가 늘어 문제라는 식의 기사이다.

당시 강력한 통치를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시위하고 일본인이나 친일정치인을 살상하는 사건이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경성부호를 육혈포(권총)으로 위협하여 독립군자금을 모집하던 '조만식 동지'가 검거되었다고 하고 그 부하들도 잡힐 것이라 하고 '김 일 '이라는 사람은 방면되었다고 한다.
당시 조만식 선생은 교육이나 언론을 통한 것이 아닌 몸으로 행하는 투쟁을 했었다.

박세건이라는 이가 (선천군 신부면 원동리 )서울에서 체포되었다고 하는데 기독교 청년회 (YMCA)선천대표로 당시 선천에서 발생한 폭탄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전북 임실에서는 상해임시정부와 통하는 '김재구'라는 사람이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만주 훈춘의 마적단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하고 치안이 불안하여 함경도 경원의 경찰서에서 출동을 하여 진정을 시켰으나 다시 불안하여 출동을 요청하여 다시 출동을 할 것이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경원에서 전보'

훈춘사건을 빌미로 일본군이 만주에 들어가게 되고 독립군과 격전을 벌이다 크게 패하고 결국 간도의 주민들을 살상하는 일이 발생한다.(간도참변)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알 수 있고 보도의 성향이 독립운동이나 군자금 모집에 대해 악의적이지 않다.

신문을 보고 당시 사회를 다 파악할 수 없지만 민족의 독립의지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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