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세금부담과 사회불안

lkjfdc 2022. 6. 13. 15:15



과거 군역을 대신해서 옷감을 징수하던 제도가 조선에 있었다.

정조 때는 농작물의 작황이 안좋아 면포의 생산이 줄어 왕은 군포의 징수를 2필에서 1필로 줄이고 재산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걷게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던 부담은 없는 이에게 가게 되고 세도정치 기간에는 군포징수가 함부로 이루워 지는데 그 정도가 그전보다 심화된다.

이름하여 백골징포 (사망한 이에게 옷감을 징수), 황구첨정(어린이에게 징수), 강년채(고령의 노인에게 징수), 인징(이웃에게 징수), 족징(친척에게 징수)등 이 피해가 커지자 이런 부담을 피하고자 산속으로 도망가거나 무인도로 가기도 하며 국경을 넘기도 한다.

환곡의 폐단 또한 심했는데 국가는 힘든 백성들을 더 힘들게 했었다.

북한에서 한다는 인민5호담당제와 유사한 오가작통법을 만들어 서로 감시를 하고 연대책임을 지게 하는데 견디는 게 한계에 이르면 함께 고향을 등지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오가작통법은 당시 백성들과 지식인들 사이에 퍼지는 서학(천주교)의 확산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특히 군정의 문란 중 황구첨정이란 의미는 어린 새의 부리가 노란색인 걸 보고 황구라고 했고 어린이를 뜻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어미의 먹이를 기다리는 어린 새들 같은 어린이들에게 군역의 부담을 준 당시의 사회는 결국 체제의 불안과 민란으로 외세의 개입이 이루어 지고 결국 주권을 내주게 된다.

나라가 망하는 걸 보면 외침의 결과 보다 내부의 문제로 망하는게 더 많지 않았나? 특히 권력의 약화보다는 서민들의 어려움과 불만이 가장 컷던 것으로 기억되며 이웃 중국의 경우도 비슷했던 것 같다.

앞으로 세계경제의 불황과 식량문제 자원문제로 많이 힘들어 질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서민들의 삶은 더 힘들어 진다고 한다.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이 실행이 되어 힘든 계층이 줄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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