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박병희 선생님의 시집

lkjfdc 2021. 10. 9. 11:41







벌써 20년이 넘었다.

학원에 근무하다 보면 다양한 이력을 가진 강사들이 근무를 했다.

70년대 입시학원이 대도시에만 있을 땐 규모도 크고 학교에 몸담았던 교사들이 나와 차린 경우도 있었고 대학교 시간 강사를 하던 교수들이 나와서 학원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도 이런 분들이 있다.

또한 사관학교에서 교양과 전공수업을 하던 예비역 교수들도 있었고 전교조 문제로 학교에서 해직 당한 후 학원에 왔다가 복귀하지 않고 눌러 앉아 직업으로 이어간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80년대 과외금지 조치와 재학생 학원수강 금지가 선포된 후 학원계를 떠나 사업을 하다 다시 90년대 재학생 관련 보습학원이 문을 열자 40이 넘은 나이(지금은 내가 이 나이가 넘어서 어려 보이지만 20대 30대 땐 대단한 경력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환상적인 수업으로 학생들을 흔들었다.

생각보다 구시대의 권위나 서열을 강조하기 보다는 중고등학교 때 보던 입시학원의 스타강사의 자유로움과 멋이 있던 분들도 계셨고 이분들 중에는 60세가 넘어서 현재 70언저리에 계시면서 수업을 하는 분들도 계신다.

물론 3~5살 위의 선배들 중에선 보습학원이 만들어지면서 원장으로 시작한 강사들도 있고 1세대라는 마음으로 학원을 개척하다 보니 권위와 불합리 또한 심한 경우가 있었고 나또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이직을 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결국 나보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원로분? 들을 30살 쯤 만나 이분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수도권 이곳 저곳 학원을 다니기도 했고 다른 분들과는 연락이 안되도 대선배들과는 지금도 인연을 맺고 있다.

강사수가 많은 곳이 좋은 점도 있지만 다양한 직원 그리고 각각의 부서에 따라 알력이 있는 곳도 있고 잘하면 인정 받고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뭔가 성과가 없으면 가방을 싸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당시 스트레스도 받고 운영자와 부딪치고 사표를 낼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유쾌하고 신명나는 목소리와 긍정적인 표정으로 다가와 위로를 하던 국어강사가 있었다.


어쩌다 이야기를 해보면 권위나 전투적인 모습보다는 재미있고 긍정적인 모습에 특유의 사투리가 매력적이던 '박병희선생'은 나보다 연배가 높고 경력도 많은 선배였지만 따뜻했던 분이다.

좋을 땐 좋지만 분위기가 나쁠 땐 너무 나빠 힘들었던 시절 '초판'으로 나온 자신의 시집을 웃으며 건내줬다.

그 시집을 받은 이후 얼마 후 나는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고 박병희 선생 또한 노량진으로 진출해 이름을 날렸다.

가끔 전철을 타고 가다 광고판을 보면 웃음이 나왔고 각박하지 않고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이 떠올랐다.


만남과 헤어짐이 빈번하고 몇 년 지나면 잊혀지는데 당시의 기억들은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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