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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들으며

TV는 언제 부터 인가 볼일이 없고 특히 종편이 나오면서 멀어졌다. 주말에도 그렇고 휴일에도 흔하게 나오는 영화를 보는 일도 특히 예능이라고 말하는 프로나 현실성 없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주로 다루는 프로에 식상한 점도 있다. 결국 출퇴근 시간이나 한가한 시간엔 라디오를 듣고 새벽에 라디오를 장기간 들을 때도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지역방송국의 방송을 주목했고 노래도 신청하고 그러면 백발백중 아나운서(서울과는 달리 연예인이 진행하지 않고 주로 아나운서가 진행)가 정성스럽게 읽어주었다. 그러면 그것을 녹음하여 다시 듣기도 했고 음반을 사기는 부담스러워 신청을 하여 노래가 나오면 바로 녹음을 하기도 했는데 상당수는 짤리기도 했었다. 또한 방송국에 보내는 엽서는 중앙방송과는 달리 예쁘게 만들지 않아도 되고..

나의 이야기 2017.04.16

야구라는 스포츠

프로스포츠 중 관중들에게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후한 써비스를 주는 경기는 아마도 야구일 것이다. 그 써비스란 바로 야구공이며 이 공을 얻기 위해 글러브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고 잠자리채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홈런볼을 얻었다면 행운이라 생각하며 파울볼을 얻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대략 10000명이 들어오는 구장에서 주어지는 것이 기에 로또 맞는 것 만큼 어렵고 힘들지만 기대를 하고 가는 야구장은 재미있는 곳이다. 축구공이나 농구공에 비하여 싸고 휴대하기도 좋고 관리하기도 용이한 이 야구공도 과거엔 참 귀한 대접을 받았다. 특히 선수들이 경기용으로 쓰는 가죽재질의 공은 일반 학생들이 동네나 학교운동장에서 쓴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고 주로 쓰던 것은 고무재질의 연식공이고 이 공은 야구연습장에서도..

야구이야기 2017.04.16

교육과 사회

과거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농업에 종사했다. 45년 해방 전 후 기초자치단체(시군구)에 공립 중고교가 생겨났다. 그러나 전쟁은 여러 학교 학생들의 학습기회를 상당부분 앗아갔다. 당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청소년은 지금에 비하면 선택받은 식자층이었고 전쟁 이후 20세가 넘어 복학한 분들도 있지만 학업을 중단한 경우도 많았다. 아예 초등학교 입학도 못한 청년들도 많았으며 문맹자들도 많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사단급 부대에 대략 문맹자는 2500여명 정도 였다. 60년대에도 줄긴 했지만 문맹자가 있었고 편지를 손수 쓸 수 없어 대필을 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군대 내부에서도 교육훈련과는 별도로 공민학교를 세워 문맹퇴치와 기본셈 교육을 시켰으며 당시 이 혜택은 공민학교 주변 민간인들에게도 기회가 있었다고 한..

교육이야기 2017.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