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중일전쟁을 할 때 중국군과 일본군 병력수와 교육수준을 볼 때 사람들은 중국군이 교육은 적게 받았어도 일본군에 비해 숫자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병력수도 교육수준도 일본군이 많았고 높았고 그 일본군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힘만 쎄고 건강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초등교육 정도는 받아야 병력으로 그 기능을 할 수 있고 특과병의 경우 중등교육을 받아야 교육훈련이 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당시 우리 청년들은 일본 지원병에 지원을 해보지만 탈락을 했고 훗날 징병제를 실시하는데 많은 학생들이 일본군으로 가고 징용을 가기도 한다.
1930년대 1개 면에 초등학교가 생겨나긴 했지만 40년대 중학교(지금의 중고교)는 읍정도에 생겨나며 당시 읍의 비중은 지금의 시보다 낮았다.
근대화를 이야기 하면 공립학교의 설립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실제 리단위 초등학교와 읍단위에 중등학교가 만들어진 건 해방후이며 문맹 퇴치도 해방이후였다.
특히 군에 입대한 청년들에게 문해교육을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고 입대한 청년들에게 통신강의를 실시했다.
이 혜택?은 군주둔지의 지역주민들에게도 영향을 주는데 현재 충북이나 경북북부 경기도의 주민들 중에는 이 혜택을 본 주민들이 있고 이들은 재산권의 제한을 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경제적 이익을 누렸기에 정치권 보다 대군신뢰도가 좋은 편이 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지 이들 지역(경기 북부 강원도 충북 북부, 경북 북부)에 대한 현재 자유한국당(군츨신들이 많았음)의 지지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아무튼 일본이 학교를 만든 시기를 따져 보면 우리나라의 교육발달과 학생수를 유추할 수 있고 미군정과 동란전후를 보면 그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대충 군단위 초등학교는 1910년대 ... 면단위는 1930년대 ...
공립중학교(중고등학교)의 경우 군단위(읍에 군청이 있는 군과 면소재지에 군청이 있는 군이 다른데)의 경우 인구가 많고 교통이 좋은 거점은 30년대 말에서 40년대 초 일반군은 해방 이후 중학교가 만들어 진다.
도청소재지나 산업이 발달한 지역엔 20~30년대에 일반중학교와 농림학교, 상업학교, 농잠학교등이 만들어지는데 일반중학교는 주로 일본인들이 입학을 한다
밀양이나 상주 같은 곳에는 농잠학교가 대도시엔 서울 평양 대구 같은 곳엔 사범학교가 만들어 진다.
결론적으로 국민대중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 진건 해방 후이며 일제강점기에 줄지 않았던 문맹률이 이 때 감소했다.(여기엔 조선어를 선택과목 일본어를 필수로 훗날 조선어를 못쓰게 하는 만행이 존재하며 예전 아버지는 구구단도 일본식으로 하셨다.)
근대화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고루 이루워 져야 한다.
하긴 우리나라보다 일본은 민주화 된 나라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며 여전히 군국주의의 망령이 존재하는 이상한 나라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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