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조선의 어보

lkjfdc 2017. 7. 21. 11:56

 

 

 

 

 

 

 

 

 

 

 

 

 

얼마전 반환된 어보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어보란 왕과 왕비의 도장으로 공무의 관인인 국새(국새 옥새) 완 다른 것이다.

 

새보라 함은 (국새와 어보) 둘을 말한다.

 

도장을 나타내는 말엔 인, 장, 새등이 쓰여 왔는데 모두 믿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중 새는 임금만 쓰게 되었는데 중국발음으로 죽을사와 같은 소리라 하여 '보'로 바뀌었고 금으로 만든 것 같지만 도금이라 한다.

 

 

도장이란 말은 도서(그림과 책)와 인장에서 나온 말로 일반인도 쓴다.

 

아마 인쇄의 시작이 도장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조선어보는 용비어천가에도 나오는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부터 마지막 순종과 비까지 (왕비,계비,48명에 세자와 세자빈까지)인장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단 폐위된 연산군 광해군은 위폐, 어책, 어보가 없으나 사도세자 (장조)나 인조를 낳은 원종이나 기타 추존한 왕들 비의 어보는 있다. 한마디로 후대로 가면서 업적을 기려 추가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광무개혁이후 황제가 된 고종이후에는 어보의 모양이 기존의 거북에서 용조각으로 바뀐다.

 

 

내가 어보전시회를 본건 95년 덕수궁 석조전에 있는 유물전시관이었는데 당시 팜플렛은 챙겼으나 태조 이성계의 금보를 찍을 기회를 놓쳤다.

 

당시 팜플렛엔 조선왕들의 계보와 능묘 위치 종묘의 배치도가 나와 큰 도움이 되고 특히 태조 이성계의 조상들의 묘가 함경도 흥남 주변에 있는 것이 눈에 뜨이고 왕의 릉중 단종만이 서울과 경기도에 없고 강원도 영월(장릉) 그것도 왕비의 릉(사릉)과 멀리 떨어져 있는게 애닮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나다 보니 바뀐 지명이 눈에 뜨이는데 지금은 남양주시가 된 미금시가 특이하다.

 

 

 

아무튼 당시 전시회가 열릴 때 수많은 사람들이 휴일날 찾아와서 줄을 섰는데 기다리지 못했다.

 

성격이 급하다 보니 기회를 놓쳤는 데 요즘은 석조전의 유물전시관도 예약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역사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훗날 평가에 따라 첨삭되기도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어보도 그것을 나타냈다고 보며 외국에 떠돌아 다니는 문화재와 함께 제자리를 찾았으면 하고 관계당국과 학계는 보다 심층적인 조사와 연구로 또다른 사실과 의미를 찾아내고 문화재는 후세에까지 잘 전해졌으면 한다.

 

 

 

참고:조선어보 강순형 팜플렛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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