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이라는 영화
제목은 참 살벌하다. 영화관에 가서 '암살'한장 주세요. 라고 말하니 왠지 어색하고 ...
일단 화려한 출연진이 나오는데 주인공 안옥윤으로 전지현이 일인 이역이며 어쩌면 일제 강점기 우리민족의 이중적 모습을 잘 나타낸 측면이 느껴진다.
편안함과 고난 한쪽은 고대광실에서 누리고 한쪽은 이국에서 험난한 무장독립운동을 한다.
단 당시엔 도시에서 단발볼트액션총으로 저격을 하는 전술을 훈련받은 독립군이 있었다는 건 미지수이며 주로 폭탄투척이나 수류탄 투척 권총을 통한 사살이었다. 이유는 압수수색이 심하여 반입과정에서 탄로가 나며 실제 의열단 투쟁 당시 발각된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염석진으로 분한 이정재 이자는 이중 첩자로 과거 임시정부의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뒤 김창숙 선생을 밀고 국내로 압송하게 한 김달하 (김활란의 형부로 행적이 탄로나 살해된다.) 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하와이 피스톨로 분한 하정우는 실재 의열활동과정에서 쌍권총을 들고 서울 장안을 휘젖고 일본경찰을 공포에 떨게한 김상옥열사를 생각나게 하는데 실제 김상옥 열사는 변신에도 남달랐다. 아마 영화로 만들어도 부족할 것 없는 분이 김상옥 열사이다.
다음으로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라는 속사포역의 조진웅은 독립군의 군관 즉 장교 또는 당시 하사관 반도 있었다. 만약 지휘자를 뽑았다면 속사포가 되어야 했고 상등병인 안옥윤이 팀의 대장이라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팀을 구성했더라도 지휘자의 정밀한 작전 수행능력을 가진 리더가 감당해야 한다.
당시 신흥의 교과과정은 군사교육도 군사교육이지만 민족정신과 역사의식을 강조했던 것으로 안다. 때문에 생계형독립군은 설정이라 본다.
다음으로 황덕삼역의 최덕문은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열사를 생각나게 하는데 이런 의열투쟁은 20년대에 활발했다. 생각보다 당시 나석주 열사는 군사교육을 철저히 받은 전문가였다.
아무튼 이러한 의열투쟁은 20년대가 절정이었으며 30년대 당시 만주엔 한국독립군(지청천) 과 조선혁명군(양세봉)이 중국군과 연합을 하던 시기였고 공산계열에선 중국공산당 유격대가 활동을 하다 동북항일연군으로 변화한다.
이 영화에서 약산 김원봉이 암살지령을 내리고 김구는 염석진을 의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김원봉은 의열투쟁을 잠시 정리하고 군사학교에서 후배들과 공부를 하는데 신흥무관학교는 중퇴를 하고 국민당의 황포군관학교를 마치고 중국군 장교가 된다.
그는 조국의 독립이라면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협조를 구했고 전술에 있어서도 다양한 변화를 구사한 인물이다. 당시 사진을 보면 중국군복을 입은 김원봉을 볼 수 있으며 그가 만든 군대가 '조선의용대'이며 이들은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에서 한국광복군을 만들때 힘을 합치지만 선전전 포로심문에 실망을 한 병력들이 화북지방으로 가면서 분열된다.
약산이 군대를 조직하고 정신전력을 강화하려고 한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인물이 해방후 노덕술 같은 악질경찰에게 뺨을 맞고 망신을 당하여 울면서 북으로 간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북에서는 '연안파'로 숙청되고 남에선 북한공산당으로 간주한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 국사책에 잘 소개되지 않았지만 10여년 전부터 고등학교 근현대사책에서 나름 소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 대해 탐탁하게 생각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학계에선 90년대 초 육대교관도 역임하고 군단장을 지내고 육사교장도 역임한 장준익 장군 같은 분에 의해 공산권 자료와 관련자의 증언으로 연구되고 책으로 나왔다. 물론 약산 김원봉에 대한 사실을 파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나 독립군의 계보와 활동상황을 파악하고 북한군의 창설과정을 알 수 있다.
인물을 평가한 책이나 관련자료는 인터넷에도 많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아무튼 영화를 통해서 시대는 맞지 않지만 독립운동과 변절 그리고 해방 후 반민특위의 활동을 영화에 담은 점과 당시 시대상황에 따른 영화셋트장과 복장, 총기등을 실감나게 고증하려는 점을 좋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