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사농공상의 문화

lkjfdc 2021. 4. 8. 08:50


개항이 되기전 우리나라는 자급자족을 하던 민족이다.
농업중심사회로 상민의 중심에 농민을 두었었고 이들이 탄탄해야 공업도 상업도 안정되고 위의 지배층인 양반과 전문가 집단인 중인들이 안정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 정신문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많은 돈을 흡수할 수 있는 직업인 무당과 광대 그리고 부패가 심하고 권력의 중심에 있던 불교를 탄압했다.
이는 일본에서도 불교의 권력이 강하고 부패하여 문제가 심했었고 유럽 또한 구교인 카톨릭이 엄청난 재력과 함께 권력의 핵심에 있어 사회문제가 되었으나 당시 평민들은 이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지적인 기반과 문화가 없었으니 동서양은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민을 기반에 둔 건 이들이 대단해서 혹은 대우를 받을 만 해서 중시했다기 보다는 세금과 병역의 원천이었고 이들이 흔들리면 귀족같은 양반들이나 지식인들 그리고 왕조의 기반까지 흔들려 중국의 경우처럼 농민반란이 발생하여 왕조가 몰락할 수 있었다.
농민 또한 이러한 속셈을 모르지 않았을 테지만 늘 상민의 중심에 놓고 사회의 다수가 되다 보니 자신의 계층에 대한 정체성 확립이 타계층에 비해 강할 수 있었지만 뭔가 각성은 늦었고 대부분은 경제적 고통과 사회모순이 극에 달했을 때 일어났고 결국은 망할 수 밖에 없었다.
산업화로 인해 대중화 되고 물량화된 현대사회는 시민혁명도 있었고 정보혁명으로 가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중요한 시기를 식민지 상태에 있었고 전쟁을 치르면서 겉으로는 공동체가 강하고 끈끈한 것 같아도 절대 남을 믿지 않고 자신의 풍요로움과 안정됨을 추구하는데 과거엔 그래도 선비나 선량한 중인들에 의해 농민이나 장인 상인을 위한 대안도 나오고 나름 자중하고 사회의 소금이 된 계층과 학자들도 있었는데 현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더 배우고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는 사람들이 독식하려 하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인간은 사회의 희소가치를 더 갖고 더 대우 받는 걸 원하는게 당연하지만 적어도 모든 걸 독식하려는 자세는 생각해 봐야 한다.
과거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글공부만 하던 허 생이 장사를 하여 돈을 벌면서 조선의 경제를 비판하고 실용주의적인 것을 생각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정세를 바라보고 외부민족을 바라보는데 결국 본인은 자신의 실속보다는 선비라는 자존심을 추구하며 서울의 '변부자' 와 인생을 즐긴다.
애초에 변부자가 빌린 돈을 다시 돌려주는데 너무 많이 받는 다는 생각에 허 생에게 반환을 하자 ' 나를 장사치로 아는가? ' 일갈을 하며 가끔 와서 술이나 사고 말벗이나 하자며 제안을 한다.
물론 오늘날 이런 지식인이나 학자가 있다면 집에서 쫓겨 나겠지만 현재 우리사회의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 다수라 생각하는 시민들 또한 민주사회 답게 기본적 참여인 ' 투표'에 참여하여 ' 허 생'같이 사회를 걱정하고 욕심이 적은 인물을 뽑지는 못하겠지만 도둑질하고 시민들을 여전히 과거의 아랫것들로 바라보는 문화를 바꿔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왜 여전히 사농공상의 뿌리가 쉽게 바뀌지 않고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성원의 '남과 북'  (0) 2021.05.01
언어의 역사성과 사회성  (0) 2021.04.26
소설 '독도함'  (0) 2021.04.06
백기완 선생의 별세  (0) 2021.02.16
해저터널 건설  (0) 2021.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