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이야기

도시의 그림자

lkjfdc 2021. 3. 1. 09:38


과거나 현재나 서울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은 편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말이나 80년대 꼭 그렇지는 않았고 덜 집중했었고 서울에서만 유명한 가요제가 있지는 않았다.

광주에서 전일 가요제를 개최했으며 정확한 지역은 모르나 박달가요제(충청권일듯)가 있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가요제를 했으나 서울과 수도권(당시엔 경기도의 위성도시나 외곽에 캠퍼스의 조성이 진행중이거나 정착단계)대학이 지금처럼 집중하지 않았었다.

동남권이나 서남권 충청권 나름 특성이 있었던 것 같고 경부선이나 호남선을 타고 마음을 먹으면 가요제에 참석을 하고 밤에 내려가 아침을 맞던 시절이 70년대 말에도 있었고 어찌 보면 당시의 사람들은 서울로만 집중하고 모이지는 않았다.

부산도 대구도 광주도 그리고 인구가 작지만 지방방송국의 공개홀에서는 공연과 함께 별도의 프로가 있었다.

신군부에 의해 80년도 여의도에서 행사가 이뤄지고 미스유니버스 행사도 있었고 프로스포츠도 활성화 된다.

한쪽에선 탄압을 또 다른 쪽에선 축제를 했다.

무식하고 권위적인 군인들인 줄 알았는데 이들의 정책은 생각보다 치밀했고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들의 모습과 숨은 모습을 모르는 이들은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며 특히 청년시절이나 지역에서 조용히 살던 이들에겐 좋았다는 인식이 컸다.

일제강점기 때도 일본이 전쟁을 크게 확대할 때 까지는 다수가 '태평천하'라고 생각했다.

대학가도 그런 모습이 펼쳐진다.

다양함을 이야기 했지만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지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당시는 복잡 다양했고 자유로운 것 같았지만 대학내엔 사복경찰과 군기무사의 병력들이 학교에 들어와 있던 시절이었다.

젊은이의 가요제나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는 요즘의 오디션 프로 처럼 활성화 되어 TV화면을 빛냈고 가요계의 신데렐라들이 탄생했고 음반도 나왔었다.

특히 부산의 대학생들이 약진을 했었다.

당시 부산은 일본의 방송을 직접시청을 할 수 있었고 춤이나 음악이 이곳을 거쳐 경부선 라인을 타고 서울로 올라갔었다.

그리고 대학가에는 연합음악모임이 있었다.

바로 '무드'라는 모임이고 이들은 주로 중창단을 만들어 가요제에 나왔으니 '높은음자리'가 대상을 받기전 듀오로 나와 입상을 하고 그후 '바다새' 그리고 '여운'등이 상을 받았고 무드의 구성원인지는 모르나 '작품하나' 그리고 80년대 말 '전유나'등 부산의 대학생들은 가요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가요계에 데뷔를 한다.

이상우도 강변가요제에서 혼자 나와 금상을 받는데 이상우는 중창단 쪽 보다는 '밴드'를 했던 친구들과 인연이 있었고 이들의 곡을 들고 나오며 부산지역의 연주자들이 '평균율'을 만들어 서울로 올라오고 이들은 활동을 하다 각자 연주활동을 하거나 새로운 팀을 만드는데 드럼주자 '강수호'가 유명하고 과거 베이스 주자 '박정원'이 있었다.

아무튼 86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젊음의 노트'로 유미리가 받았으며 금상을 받은 팀이 ' 도시의 그림자'인데 이 팀의 노래가 ' 이 어둠의 이 슬픔' 으로 또 다른 인기와 사랑을 받고 88년도엔 음반을 출시한다.

원래 '김영수 김종호 김화란' 세명의 구성원이 김영수 그리고 김화란으로 줄어 아쉬운 점은 있으나 기성 작곡가의 노래가 아닌 준비된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활동을 했다.

그러나 직업가수로의 활동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김화란이 활동을 접으면서 이 팀은 조용해 진다.

가끔 같은 지역에서 활동했던 바닷새의 멤버와 함께 나와 힛트곡을 선보이긴 하는데 원곡에 참여했던 '김화란'의 자리가 더 큰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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