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권 율 장군에 대한 시각

lkjfdc 2020. 9. 13. 09:51

권 율장군의 초상을 보면 (실제가 아니고 상상한 것임) 무장의 느낌이 강하지만 실제는 문신출신이며 요즘으로 보면 행정고시를 늦게 준비하여 합격하고 행정관이 된 사람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광주목사로 지역을 다스리기 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자신의 지역 뿐 아니라 경기도와 한양 인근에 올라와 의주로 도망간 왕이 다시 내려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투를 했고 초기 용인전투의 패배를 교훈 삼아 독산성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뒷날 행주대첩에서 승리를 한다.


광주목사를 시작으로 나주목사 전장에서 관군과 의병을 잘 통솔하여 전라감사가 되고 당시 지상의 전투를 총괄하는 도원수에 이르니 대단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또한 옆집의 개구장이 도령이었던 오성 이항복을 사위로 삼았고 그가 병조판서일 때 하급자로 있었다. 그리고 집안의 많은 재산은 사위 이항복에게 전해지고 그 이후 독립운동의 자금으로 쓰여진다.

양반가의 모델이며 우리사회의 행정관료나 정치인 군인들이 우러러 봐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 그도 고집이 쎈 인물이라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때문에 관료사회에서 불협화음도 자주 있던 인물이다.

행주대첩이 임진왜란의 3대첩으로 큰 전과를 이뤄 냈지만 우여곡절이 있었다.

행주대첩이 일어나기 전 부관이었던 '조 경'이 성주변에 장애물 설치를 제안했으나 거절을 했다.

그러나 권 율이 자리를 비웠을 때 조 경은 성주변에 장애물을 미리 설치했고 이것이 승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한강하구를 통해온 수군의 지원도 큰 힘이 되었다.


오늘날 정치도 그렇다.

자기 소신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좋지만 주변 참모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며 반대파가 혹시 도와 준다면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한 참모들도 직언을 하고 여러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나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상대편이 권좌에 있을 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이 지나쳐 상대를 폄하하고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정치는 자신들만 하는 것이 아닌 열린 민주사회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친구들 모임도 아니고 학교동문회도 아닌데 끼리 끼리만 대화를 하며 막혀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도 중요하지만 뒷날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위기를 벗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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