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군대의 면회가 무조건 찾아가면 되는게 아니고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과거에 집이 가깝거나 집이 멀어도 여유가 있으면 면회를 자주오고 휴일날 외출이 가능했다.
문제는 면회자들이 외출을 하게 되면 부대원들 중 누군가 근무를 대신해줘야 하는데 일반기행부대야 1~2시간 더 서면 되지만 경계부대나 병력이 없는 곳은 고난의 연속이다.
때문에 면회도 자주 오면 피해를 보는 병력이 생기고 이것 때문에 미움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난 사필요원이라는 자리에 있어 상황실에서 근무를 했는데 나의 임무를 대신 해줄 수 있은 사람이 딱 1명이라 내가 나가면 내 부사수가 다 근무를 서야 했다.
특히 밤에는 가급적 들어왔고 멀리 가지 못했다.
어떤 학군장교출신분이 전방부대인 백골부대에 근무할 때 자신의 부하중 집이 멀고 극빈자인 상병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군생활중 한번도 면회를 오는 이가 없어 의기소침하고 병력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있었다고 한다.
소대장인 그 분은 토요일 오후 부대원을 바깥에서 지인인양 불러내(소대장인 걸 알면 부대원간의 문제가 될 수도 있어서) 버스를 타고 철원의 와수리로 나와 식당에서 밥을 사주고 목욕탕에 같이가 부하의 때를 밀어주고 근처 식당에서 고기를 먹으며 술도 사주고 동생처럼 편하게 해주며 부대로 복귀를 했다고 한다.
부대로 돌아가던길 점호시간에 스트레스를 받을까?(군대에서는 점호가 끝나야 나름 편해진다.) 일부러 부대에 늦게 복귀를 하며 그 상병과 노래도 부르고 사탕도 까먹으며 편안한 시간을 만들어 주고자 애썼고 그 상병은 소대장의 배려와 정성에 그만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삭막할 것 같은 생활 아무도 찾이오지 않는 그곳에서 친형은 아니지만 그 소대장은 친형 못지 않게 부대원을 돌봐주고 배려해 주었다.
이 시기가 대략 80년대 초중반에 있었다고 한다.
나도 신병 때 부대의 선임이 상급부대로 파견을 간다고 하니 자신이 외출 외박증을 두개 신청해 시내의 식당에서 맛있는 걸 사주고 극장에서 영화도 보여주고 자신의 집이 있는 인근 도시로 데리고가 저녁을 직접해주고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게 해주서 난 행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파견을 나갔을 때 나의 사수였던 김병장은 먼길을 찾아와 P.X에 데리고가 과자와 음료수를 한보따리 사주며 부대소식과 함께 상황이 변하면 내려올 수 있을 거란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는 그에게 허락된 외출을 그렇게 나를 위해 썼다.
어쩌면 살벌하고 삭막한 곳이지만 내가 인복이 있었는지 나는 그들에게 신세를 졌었다.
특히 겨울이면 근무는 자신이 다 설 테니 목욕탕이라도 다녀오라며 돈을 쥐어주며 동기와 함께 외출을 보내주고 휴가 땐 머리를 깍아 주던 나의 사수 김병장이 보고 싶다.
김병장님... 아이가 지금 쯤 25살 정도 되지 않았나요. 보고 싶군요. 대전에서 뵌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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