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구와 강서구는 과거 김포 땅의 일부였고 조선시대엔 양천이라고 불리었고 아래는 금천(시흥)과 함께 안양천 그리고 한강을 낀 습지가 형성되어 논과 밭이 많았고 부천 부평 일대까지 높은 산이 없어 공항이 만들어진다.
특히 목동신도시는 강남 개발 이후에 비슷한 개념으로 만들어져서 대규모 체육관, 야구장, 아이스링크등이 있고 대학병원이 만들어 지며 서울 원도심 주변에 있던 양정고와 진명여고가 이사를 오고 마포의 마포고도 이사를 오면서 그에 따라 강남 버금가는 사교육 기관들도 들어선다.
그러나 과거엔 빈민들이 이주해 살았고 거주시설은 열악했다.
당시 영동(영등포 동쪽)이라 불리던 강남은 나름 계획적으로 개발이 되었지만 (이곳도 주민들과의 마찰이 있긴 했다.) 늦게 개발이 이루어진 강서지역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서 대규모 시위로 번졌는데 여기엔 시민단체와 대학생들도 가세를 한다.
보통 대규모 단지나 시설이 들어서게된 배경에는 국가의 기본정책에 의한 것에 의한 것이 있겠지만 서울의 경우 국제적인 행사 특히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같은 것이 도시개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아시안 게임을 70년대 박정희정권 때 하고자 했으나 시설이 갖추어 지지 않아 개최할 수 없었고 관련체육시설이 강남 지금의 잠실종합운동장 주변이 개발되면서 강남은 변화가 가속화 되고 선수들과 기자들을 수용하고자 하는 아파트의 건설은 주거단지를 새롭게 변모시켰다.
외형적으로 주요 체육시설과 주거단지 그리고 2호선과 넓은 도로가 있는 강남은 보기가 좋았지만 같은 시기 강서구지역은 공항이 가깝고 하늘에서 내려다 볼 때 서울 뿐 아니라 나라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것이라 생각하여 정부는 일방적으로 몰아 붙어 주민들을 내쫒으려 했다.
그러나 갈 곳 없던 주민들은 많은 단체와 힘을 합쳐 시위를 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룬다.
다른 신도시에 비해 목동은 녹지의 비율, 공원이 많고 일방통행로 등이 발달되어 있고 거주지로서 장점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아무튼 신도시가 생기면 좋은 점도 있지만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개발을 하는 기관이나 주체들은 서로 협의하여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그 합의를 이루어 내야 하겠다.
참고:한종수,강희용 강남의 탄생 미지북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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