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은 용구현의 용자와 처인현의 인자를 붙여 탄생한 지명이다. 고려시대 처인현은 처인부곡으로 불렸다.
향.부곡이라함은 과거에 농업을 하는 천민집단으로 분류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평민들 집단을 차별하는 지명으로 설명한다.
비슷한게 '소'라는 집단이 있는데 이곳은 수공업을 하는 곳으로 공주 명학소 , 충주의 다인철소가 있었다.
아무튼 처인부곡의 처인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석성이 아니며 길목에 만들어진 토성이며 예전에는 삼남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어 북이나 남쪽을 감제하기 좋은 곳이라 판단하였고 전쟁터가 되었다.
이곳에서 처인부곡의 백성을 이끌고 전투를 벌인 사람은 군인이 아니고 승려였던 김윤후였다.
당시 불교의 위세는 상당했으며 그에 따라 승려의 지위는 대단했는데 당시 처인부곡에서 불법을 전하고 있었다.
세계최강의 몽고군의 2차 침입이 있을 당시 그것도 징기스칸의 차남 살리탑이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다가 김윤후의 활에 맞고 바닦에 엎어지자 그뒤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두번죽는? 상황을 겪으며 몽고군은 패퇴하게 된다.
그 후 김윤후는 장군이 되어 혁혁한 공을 세운다.
당시의 상황에 천대받고 차별받던 사람들을 규합하여 나선 그는 승려 이전에 지금 이땅의 특권층들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토성안에 들어가 주변을 보면 왜 이곳이 격전장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6월1일이 의병의 날이라고 한다.
어쩌면 처인부곡의 전투는 그 상징성을 대표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위치: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용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인 문수봉과 마애불 (0) | 2017.06.16 |
---|---|
경안천에 내리는 비 (0) | 2017.06.08 |
용인의 경안천 (0) | 2017.05.07 |
용인 지석역 근처의 고인돌 (0) | 2017.04.29 |
용인이라는 도시 (0) | 2017.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