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이라는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약산 김원봉에 못지 않은 아니 김원봉에게 영향을 준 신채호 못지 않은 유생출신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 심산 '김창숙' 선생이 있다.
3.1운동을 살펴 보면 천도교, 기독교, 불교등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유생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주 출신의 김창숙 선생은 당시 유생들의 연대서명을 받아 상해를 거쳐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파리에 우송했다가 체포되었다.
심산은 당시 유생들이 추구하던 왕조복원의 복벽주의가 아닌 공화정을 추구한 인물이며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중국에서 신채호등과 사민일보를 발간하고 임시정부 의정원의 부의장에 당선 되었고 25년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게 하여 일경과 격전을 벌인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심산은 군자금을 모금하러 다녔고 중국의 인사들과 교류를 했다.
그 후 상해에서 밀고(김달하라는 유명한 밀정이 있었고 이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의 형부이며 김달하의 후손들은 서울 동구학원의 운영자)로 국내로 압송 고문을 받다 장애를 얻고 두아들도 독립운동으로 사망한다.
해방이후 성균관대를 설립하고 초대학장이 되었으며 51년 임시정부 시절 부터 이승만의 행적을 안 심산은 '이승만 대통령 하야 경고문'을 발표 했다가 옥고를 치뤘다.
선생은 말년은 불우했고 힘겨웠다. 그래도 어느 누구의 사사로운 도움이나 호의를 거절한 선비이며 독립과 민주화라면 종교와 정파를 초월한 인물이다.
특히 남편을 잃고 일찍 홀로되어 손자를 돌보고 자신의 병수발을 드느라 고생한 며느리에게 담배를 가르친 시아버지로 유명하다.
전국엔 설립자의 동상이 사라지고 심지어는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심산의 동상은 성균관대 학생들의 모금으로 80년대 후반 만들었다고 하며 학생들은 심산 선생을 기리고 공부하며 그의 뜻을 기린다고 한다.
분단 이후 전쟁을 겪고 가치의 혼란과 이정표의 방향이 어지러운 지금...
진정한 어른은 누구이고 올곧은 선비는 과연 누구인가?
참고:명문종가를 찾아서. 이연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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