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탁기의 보급이 잘되어 있어 옷을 그날 그날 빨아서 말려 입는 것이 편해졌다.
특히 말리는 기능은 장마철이나 추운 겨울날 절실한데 과거 말리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세탁물의 수분을 빼기 위해 별도의 기능을 부여한 기계가 나왔었다.
모터를 만드는 회사 한일에서 서수남 , 하청일 아저씨의 로고송으로 알려진 '짤순이'는 서민들의 집에 하나씩 들여 놓은 가전제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집에는 70년대 말 세탁기가 있었다.
당시 부자들만 있던 세탁기가 있던 이유는 아버지가 직업군인이라 면세품 쿠폰이 지급되어 장만을 했고 이웃에서 신기하다고 구경을 왔었다.
믹서기도 있었는데 옆집에서 빌려간 후 망가져서 왔었고 카셑트 라디오 또한 빌려줬다가 망가져서 왔다.
아무튼 세탁기가 있었지만 주로 탈수기능을 썼는데 이유는 수도가 없는 시골로 이사를 간 후 더 그러했다.
또한 이사간 곳의 전압이 안맞아 변압기(시골에서 트랜스를 도란스라고 말함)를 설치한 후 사용했었다.
그리고 조금 지났을 쯤 이 짤순이란 탈수기가 유행을 했고 비슷한 것이 나왔었다.
특히 군대를 가서 빨래의 물을 빼는데 있어 탈수기는 아주 좋은 장비였고 말단 부대에도 돈을 거두워 산 것이 있었다.
어느날인가 모포를 무리하게 탈수를 한 바람에 기능에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작은 빨래들은 늘 돌려서 널었고 특히 한겨울엔 고마운 존재였다.
특히 야전상의라는 방한복이 한벌 밖에 없어 이거 세탁하면 공유물인 특수방한 외피(스키파카)를 입거나 체육복을 입고 하루를 보내야 하는데 보통 그 시간이 긴게 아니었다.
어느날인가는 사단사령부에서 모포와 동계피복을 세탁해 준다며 말단부대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대낮에 수거해갔다.
이웃동네도 아니고 차로 왕복 3시간 거리 ...
문제는 한 부대를 들리는 것도 아니고 수거는 했는데 저녁이 되도 사단으로 간 세탁물은 돌아오지 않고 근무자들은 창고에 있던 옷들 휴가를 나갈 때 입는 옷을 입고 업무를 보는데 문제는 모포가 없으니(당시 침낭이 막 보급되기 전)내무반은 메트리스만 깔려있고...
아무튼 저녁늦게 트럭이 와서 세탁물을 받았으나 탈수가 잘 되어있지 않아 축축한 상태로 보관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추운 그 겨울을 덜덜 떨면서 보냈던 기억이 있다.
'아이씨... 다음엔 보내는 시늉만 하자구!'
'어느 새끼가 다 싸서 보내자고 한겨? 다음엔 모포 몇장만 보내...'
' 아 그게 군수과 보급관인가? 2.4종계 새끼가 다 보내야 된다고 어쩌고 해서...'(2.4종계란 피복 보급관련 업무 )
'아 지랄들 말구 짤순이에 한 번 더 돌려봐!.... 추워 디지겠네...'
당시 멀리 있는 대형세탁기 보다 우리에겐 가까운 곳의 탈수기인 '짤순이'가 더 필요하고 절실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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