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비정규전에서 극복해야 할 부분

lkjfdc 2019. 2. 17. 07:54

 

비정규전 에서 필요한 건 강한 전투력도 필요하지만 전장을 한눈에 분석하는 시야와 토착민의 눈을 속일 수 있는 문화를 습득해야 한다.

 

특수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아무리 훈련을 많이 받고 자신감을 받고 적지에 투입되도 힘들어 하는 것이 낮선지역에서 마주치는 주민들이며 그들중에 병역을 필한 민간인들이다.

 

특히 촌락이나 지역사회의 경우는 한다리 걸치면 다알고 말투만 들어도 외지인임을 안다.

 

과거 군대 생활을 할 때 전북 익산으로 짐을 싸서 지휘조 훈련을 간적이 있었다.

 

그 동네에 함열이라는 곳이 있는데 나는 함렬이라고 발음을 했지만 이쪽 어른들은 내가 표현하기 힘든 발음을 했고 인근 김제 만경도 징게 맹게 라고 표현을 했다.

 

이곳만 그런것이 아니었다.

 

인근 화성에 요당리라는 지명이 있는데 실제 이곳 어른들은 '요댕이'라고 하고 친구가 사는 음성의 마을 지명이 소당이인데 이쪽 어른들은 소댕이라고 하며 금으로 유명한 무극리도 시골에선 '무기'라고 표현한다.

 

충북 증평에 가면 '울어바위'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우루배'라고 하니 쉽지 않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라도 강과 골짜기 마다 다르고 전라도 사투리 또한 복잡다양하다.

 

경기도 말은 어떤가? 그말 또한 엄청 어렵다.

 

그래서인지 특수전에서 그리고 정보원이나 간첩을 파견할 땐 군사적 소양만큼 중요한 것이 문화습득이 중요한 관건이며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에 고정간첩을 두기도 하는데 이런 것이 잘못 적용되어 과거 억울한 피해를 본 경우도 있다.

 

지금과 달리 80년 광주는 인구가 적었고 시가지도 작았다.

 

더군다나 광주특유의 문화적 경험을 북한에서 단시간에 체득하여 남파되어 소요를 일으키고 무기고를 습격했다는 건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트럭이나 장갑차는 어떻게 운용했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나라 성인 남자 상당수는 군대를 다녀왔고 주특기도 다양하며 그 중엔 운전병 부터 장갑차 조종수 까지 별별 주특기가 있고 커다란 대포를 운용하던 사람들과 폭약을 다루던 사람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 조용하던 사람들을 분노케 했냐는 것? 이며 그에 대한 원인 분석은 없이 무기고를 습격하고 차량을 탈취한 것에만 촛점을 맞추는 것은 사건의 단면만 보는 것이며 '그들이 별나서 지역색이 강해서 그렇다!'는 건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모독하는 것이며 그 입장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부산마산은 그냥 지나갔는데 왜 광주만 그러냐? 는 생각은 또다른 지역주의의 부각이며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자들을 옹호하는 그릇된 시각이다.

 

또한 당시 광주는 단위면적당 교육받는 군인들 그것도 초급장교가 가장 많이 교육을 받는 군사도시이며 공군비행장이 있고 한강이남에서 가장 많은 무기가 있고 훈련장이 있는 곳이기에 북한의 개입을 이야기 한다면 당시 국방부와 군당국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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