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변이 일어 나기전 북한군과의 교전 중 가장 먼저 야포의 사격이 있던 건 아마 기사문리 포격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포병의 창설은 1948년 10월 25일 정부가 수립된 후 영등포의 한 공장에서 시작되었고 초대 사령관은 장은산 포병학교교장은 김계원으로 장은산의 경우는 만주군 출신이었고 김계원은 일본 학병 장교 출신으로 연희전문을 다니다 일본군이 되었던 사람으로 군경력에 있어서는 장은산이 길었다.
당시 포병훈련소에서 교육을 받은 장교중에 노재현 (훗날 국방장관 역임)중위가 포병중대장(당시는 포대장이라는 명칭도 없었음)이 되어 105mm 야포(M3)를 끌고 장은산중령과 함께 험한 강원도 길을 넘어 당시 강릉의 10연대를 지원하고자 출동하여 오늘날 3.8선 휴게소가 있는 기사문리에서 당시 3.8선을 침입하여 피해를 주는 북한군들의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방향포경도 없는 대포를 (미군들이 사건을 만들 것 같아 포경을 지급하지 않음) 직접 조준하여 북한군 초소를 타격한 것이 최초의 실전사격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노재현이 물러나고 그 이후에 강릉엔 1개 포병대대가 8사단을 지원하고자 가는데 당시 이야기를 들어 보면 부산으로 기차를 타고 장비를 이동하여 부산에서 다시 배를 이용하여 강릉으로 가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아마 베트남 원정가는 것 만큼 복잡했던 느낌이 들며 90년대 11사단 전차대대가 영서에서 영동으로 넘는 훈련을 획기적으로 보도 한걸 보면 백두대간을 가로 지르는 과정은 싶지 않고 지금도 강원도 1군사령부 지역에서 백두대간이 차지하는 부담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시 배치된 대대가 포병 1대대로 그 당시엔 그렇게 부르다 훗날 18포병대대가 되며 8을 붙인 이유는 8사단을 지원한다는 뜻이었고 당시 대대장은 장경석 소령이었고 병력의 대부분은 이북에서 월남한 서북청년단이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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