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4.19는 3.15부정선거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사건이며 이승만의 실정도 원인이지만 이기붕이라는 총리의 권력욕에 따른 부정부패와 암흑가와의 연대가 결정적 한방이었다.
또한 우리 국민들의 숭문천무 또는 학벌중심의 우대 등 ... 대통령이란 칭호도 좋아 했지만 '이박사' 로 통했었다.
이기붕의 호는 '만송'으로 충북 괴산 청천이 고향이며 어릴적 서울로 올라왔다. 그의 부인이 그 유명한 '이대 영문과'교수 박마리아였고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와 친했고 그녀의 권력욕은 대단했으며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은 이승만의 양자가 될 만큼 각별했다.
그러나 국민이 경무대에서 날아온 총으로 희생되고 정권의 말로를 예상한 '이기붕'가족은 이강석의 '총'으로 전원 살해된다.
당시 경무대 경비를 책임졌던 경무관 '곽영주'는 당시 정치깡패였던 '이정재'의 고향 후배로 단시간 동안에 요즘 말하면 벼락출세를 한 자였는데 청년시절 경찰이던 이정재의 권유로 경찰에 투신 말단의 자리에 있었으나 '귀신 같은 사격술'로 이승만의 경호경찰이 되어 사랑을 받고 경찰의 별이라고 할 수 있는 '경무관'이 되었으며 청와대 차지철 처럼 마치 자기가 2인자인 것 처럼(아니 2인자 였음)권력을 주물렀고 행정각료들도 그 앞에서는 쩔쩔매는 신세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로는 선배인데 권력의 속성을 아는 정치 깡패 '임화수'는 곽영주을 형님으로 모시고 이승만을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눈물까지 흘리며 연기하는 모습에 '진짜 배우'들도 감동?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곽영주의 고향 친구가 바로 정치깡패 '유지광'으로 당시 대학교육도 받고 전쟁시기 국군의 장교까지 한 사람으로서 암흑가의 행동대장이 되었다는 건 참으로 아이어닉 한 일이라 생각하며 그점에 있어선 고등교육도 받고 경찰을 지낸 이정재가 깡패 두목이 된 사례와 마찬가지로 당시 사회의 난맥을 보여 주는 듯하여 씁쓸하다.
어찌 됐든 이승만이나 이기붕은 서로의 이익을 챙기며 암흑가의 세력과 그들과 호형호제하는 내부권력자 곽영주등에 의해 철권통치를 하던 부패공화국이었다.
특히 노쇠한 이승만이 유고시 권력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린 이기붕은 자신이 2인자가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했고 이는 인명을 살상하고 결국 정권을 무너뜨리게 되는데...
사람들은 지금도 이승만 대통령은 잘못이 없고 밑에 있는 놈들이 죽일놈이라고 말을 하는데...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 인지...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자신이 잘못하지 않아도 그 책임을 자신이 짊어져야 하며 또한 이승만 대통령이 일반인들이 아는 것 처럼 진짜 청렴하고 민족적이고 민주적인 인사인지 묻고 싶고 그에게는 잘못이 없는지 정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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