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가 해방 후 까지 생존했다면 자손들은 우리나라로 왔을 것이다.
선생은 국내에서 형무소에서 석방된 후 지인들의 도움과 조카 안성결이 모시고 다녔다.
편지가 오가고 그 내용을 참고할 때 선생은 일본의 감시를 계속 받고 있어 그의 가족을 귀국시키려는 의지는 있으나 몸도 쇠약하고 경제적인 능력이 안되었고 국내상황이 전쟁과 공황으로 열악하여 가족이 들어와도 미국처럼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서신으로 전한다.
미국의 가족들은 노동을 하여 학교를 다니는데 이중 차남 안필선은 형을 따라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서부에서 UC버클리 대학을 나와 유명한 휴즈항공사의 생산부문 책임자로 30년간 근무한 후 은퇴를 한다.
형과는 달리 이민2세대인 루실 (Lucile)이와 결혼 자식들을 낳고 미국에 살았다.
아버지는 독립운동과 수형생활로 이국땅과 일제치하에서 고난을 겪고 가족들은 초기 이민사회에서 살기 위해 노력했고 아버지의 뜻과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느라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인사회의 모범이 되고자 노력을 했다.
도산은 이런 가족들을 돌보지 못해 늘 미안해 했고 괴로워 했지만 그는 한가족의 아버지이기도 했지만 대한의 지도자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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