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도산 안창호의 아들 . 필립 안

lkjfdc 2018. 1. 30. 09:42

 

 

 

 

 

우리나라 사람들이 초기 미국으로 간 이유는 당시 경제 상황이 어려웠고 일본인들에게 빚을 지고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간다.

 

그리고 힘든 노역과 인종차별을 겪으며 미국사회에 정착을 했다.

 

초기 이민사회의 열악한 상황과 타국에서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것을 본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교포 사회에 들어가 단합을 역설하고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에 들어와 독립운동의 중추로 활동을 하고 미국에 다시가 교포들에게 다가선다.

 

다시 중국에서 활동을 하지만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 서대문 형무소와 대전형무소를 거쳐 수형생활을 하고 평안도에서 잠시 정양을 하고 동포들을 독려하다 체포 독립을 보지 못한채 현재 서울대 병원인 경성제국대 병원에서 눈을 감는다.

 

 

그의 가족들은 선생의 외지 생활로 경제활동이나 교육등이 힘들었으나 자수성가하여 교포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도산은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늘 가족을 생각했고 이역만리에서 편지를 썼고 가족들은 한 가정의 아버지이기 전에 독립운동가라는 것을 받아들였지만 그 생활을 쉽지 않았다.

 

특히 맏아들 필립 안은 한인 이민 2세로 처음 출생을 한 사람으로 자신의 선택이 부친과 한국인들에게 누를 끼칠까 고민을 하고 삶을 일구는데 신중했고 매사 최선을 다했다.

 

당시 경제공황이라 생계를 이어가는 건 어려웠지만 그는 자신의 적성을 살려 영화배우가 되었고 이길이 광대를 천시하는 한인사회에 안좋은 이미지로 여겨질까 고민을 하지만 아버지 도산의 조언으로 예술의 한 분야인 영화에서 최고가 되고자 열심히 활동을 했다. 그의 학교 동창이자 자신을 영화계에 입문하게 한 중국계 배우 아나 메이윙을 연모했으나 둘의 사랑은 이루워지지 못했고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영어를 너무 잘한것이 영화에 케스팅 되는데 어려움이었지만 그는 주로 동양인으로 헐리우드를 누볐고 TV드라마로 유명한 '쿵푸'에서 소림사 사부로 나오기도 했고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별표를 붙였다.

 

아쉬운 건 그의 역할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었으나 이는 당시 이민사회의 영향력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그속에서도 그는 부친과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노력했다.

 

말년에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우리나라에 도산기념관 설립을 위해 애쓰던 중 미국에서 병으로 별세를 한다.

 

아버지는 먼 곳에 있었지만 그 뜻을 받아 근면성실하게 산 '고 필립 안' 그의 열정과 행보는 먼 타국에서 힘들고 지친 한인들에게 그리고 전쟁을 겪은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사진 참조 :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