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는 태릉이라는 장소에서 정규군 육군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남조선경비대 사관학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태릉은 유명한 '문정왕후의 릉'이 있지만 일본군 부대가 있던 곳이며 그곳에서 국군의 1연대도 만들어 진다.
짧은 시간 만들어진 군대는 6.25를 치루면서 증강되었고 육사 또한 4년제 군사학교의 형태를 만들어 미국의 도움으로 다시 시작한다.
강재구 소령의 동상도 있지만 미국의 밴플리트 장군의 동상이 있는데 이유는 밴플리트가 육사를 다시 키우고 확장하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는 미국의 웨스트포인트의 교육과정을 많이 따라 했다고 하며 특히 6.25사변 이후 우리군의 취약했던 장교단의 성격을 변화시키고자 미국의 군사유학을 추진하기도 했는데 이들 중에는 군사쿠테타의 주역들도 있었으며 끈끈한 연대를 자랑했다.
초기 교장을 보면 군번1번이라는 이형근이고 일본 육사 출신이며 이응준의 사위이며 이응준 또한 일본 육사 출신에 일본군 고급장교를 지냈고 육군을 만드는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2대가 원용덕이며 이 사람은 만주군 군의출신으로 만주군 출신의 장교단을 다시 우리군에 연결시키며 당시 국군의 실세였다.
그리고 3대가 정일권으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거친 군인으로 박정희의 군선배이며 동료로 6.25가 발발하자 총참모장(육군참모총장)이 되며 채병덕 이후 실권을 장악한다.
그리고 4대가 송호성인데 광복군 출신이며 군에 늦게 들어와 장군이 되었고 육군의 최고 지휘관도 역임하나 6.25때 북으로 가버린다.(자진해서 간 것인지 납북된 건지 논란)
5대가 김백일로 본명은 김찬규이며 만주군 출신으로 북에서 부터 정일권, 백선엽등과 알고 있었고 간도특설대에도 근무한다.
6대는 최덕신이며 광복군출신이며 아버지가 독립운동가 최동오선생이고 김일성과 관련이 있었다.
거창양민학살사건 당시 11사단장을 했었다.
관운도 좋고 승승장구 했으나 동베를린 사건(동백림)이후 논란이 생기고 북으로 간다.
이후 육사엔 김홍일 장군을 비교적 장기간 교장으로 있으면서 (1949.1.15~1950.6.10) 생도 양성에 주력을 하는데 당시 육사를 다닌 8~10기가 있고 특히 8기는 숫자가 2000명 가까이 되었으며 6.25 당시 전방의 지휘자로 많은 희생을 당했고 9기는 300여명이 약간 넘고 10기(생도 1기)는 1년가까이 교육을 받고 동란으로 인해 바로 임관이 되며 생도 2기는 4년제 과정으로 입교를 하나 학교가 폐교됨으로 인해 육군종합학교로 입교 여러 장교후보생과 같이 교육훈련을 받고 같은 군번을 받으면서 육사졸업생에서 제외된다.
이후 이준식장군이 잠깐 육사 교장이 되지만 문을 닫고 안춘생 장군(안중근 의사의 조카), 김종오 장군등이 다시 발전을 시킨다.
개교 초기와 동란시기 휴전직후 교장을 역임한 인물들을 보면 일본군과 만주군 광복군 등이 차례로 있었으며 일본군과 만군에 비해 광복군 출신은 고령이었다.
육사라는 상징성이 대단한 건 맞지만 당시 광복군 출신을 임명한 건 군의 실질적 권한은 일본군과 만군이 갖고 몇 안되고 미군과 소통이 잘 안 되거나 군사적 역량이 부족한 (껄끄러운)장군을 제외시켰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그것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면 할 말이 없다.
육사가 이회영선생의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을 이어 나간다고 하지만 사립대인 경희대학교가 그 의미를 해방 이후 이시영 선생(이회영 선생의 동생)의 의지에 따라 학교를 다시 설립되었다고 보며 다시 운영자가 바뀌어 이어져 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육사는 국군의 장교를 양성하는 특수대학이지만 감리신학대 터에서 시작한 군사영어학교의 영향을 더 받은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헌법 전문에 나온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정부가 다시 출발하여 그 군대의 장교를 양성하는 육군사관학교임을 강조하기 위해 지난 문재인정부는 많은 애를 썼던 것 같고 멀리 카자흐스탄에 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도 카자흐스탄 정부를 설득하여 대전 현충원으로 모셔왔다.
정권이 바뀌자 전 정권의 업적과 사업을 축소하고 논란을 만들며 북한과의 대결을 강조하면서 과거 일본과 싸운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신흥무관학교와의 연관성을 약화시키고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 그 조직들과의 관계보다는 한미일 동맹 어쩌고 하면서 뭔가 다른 방향과 가치를 정하고 문제가 많은 지금의 정국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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